제주 올레길, 찡찡대던 내 아이의 놀라운 변화 그리고 또 다른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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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찡찡대던 내 아이의 놀라운 변화 그리고 또 다른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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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 (30) 최연소 완주자 가족 이야기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코로나 시국으로 서로 간에 거리를 두고 온전한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지금,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길이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치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위에서 전하는 편지>는 그의 블로그에도 실려 있다.

최연소 완주자 기록이 곧 깨어질 것이다! (이제까지 최연소 완주자의 나이는 만 6세) 만 5살짜리 어린이가 그 주인공이란다. 올레 통신-길을 걷는 올레꾼들 사이에서 전파되는 올레 소식-을 통해 이런 즐거운 소식을 전해 들은 건 지난 6월 초. 그 소식을 전한 길동무 자원봉사자 김용찬 선생님은 내게 최연소 올레꾼에게 직접 완주증을 줄 수 없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당근, 그러고 말고요, 김 선생님은 반색을 하면서 당장 소녀와 함께 걷는다는 엄마에게 연락을 취했다.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6월 8일 오후 5시 제주올레여행자센터. 약속 시간에 1층 카페에 들어서니 뜻밖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었다. 완주자를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길동무 선생님, 올레지기들이었다. 나는 그 많은 이들 가운데에서 주인공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바람이 불면 훅 날아갈 듯 여리여리하고 작은 여자아이가 나비처럼 팔랑거리면서 카페 여기저기를 누비고 있었다.

2017년생 천예주. 이미 여러 사람에게서 예주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믿기지 않을 만큼 어려 보였다. 이 아이가 돌담 밭담길, 곶자왈, 돌투성이 바당길,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나타나는 오름, 지루한 농로길, 숲길, 마을길 425킬로미터를 정녕 다 걸었단 말인가. 대체 엄마는 무슨 생각으로 이 어린아이를 올레길로 데리고 온 것일까. 그 스토리가 자못 궁금해졌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 때문에 길을 시작하다

아, 완주자는 이들 모녀만이 아니었다. 2011년생 만 11살짜리 아들 천지후도 엄마, 여동생과 함께 완주를 했단다. 이들 가족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든 길동무 어른들은 이구동성으로 지후를 칭찬했다. “이 친구가 얼마나 의젓하고 얼마나 잘 걷는지 몰라요.” “아주 날아다닌답니다.” “저희가 못 쫓아 갈 지경이라니까요.” 소년은 쑥스러운 듯 빙그레 미소만 지었다.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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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가족에게 각기 완주증을 수여하면서 특히 최연소 완주자인 예주에게는 사무국에서 준비한 펭수 인형을 선물했다. 펭수 얼굴로 변장한 예주가 신이 나서 카페 여기저기를 폴짝거리고 다니는 동안, 나는 두 남매의 엄마 오은옥 씨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알고 보니 그녀는 간호사를 오래 하다가 두 남매를 키우느라고 잠시 일을 쉬고 있었다.

헌데 아들이 커가면서 사춘기에 접어들었는지 점점 엄마의 조언이나 가르침을 간섭으로 여기면서, 꼬박꼬박 말대답을 하고 짜증을 내더란다. 모자간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점점 커져갔더란다. 견디다 못한 그녀는 사춘기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초등 고학년, 청소년기 권장도서를 먼저 읽기 시작했더란다. 그중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책 몇 권이 있더란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 <티모시의 유산> <자전거 여행> <마당을 나온 암탉>. 모두 주인공들이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내면이 커가는 성장 소설들이란다.

“아, 결국은 고생을 해봐야 철이 드는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고생을 시킬 수 있을까 여기저기 검색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제주올레가 딱 눈에 들어왔어요. 게다가 올레길 완주 한 달 패키지 코스도 있어서 결심을 한 거지요.” 아들에게는 어떤 형아가 제주올레길을 6개월 만에 완주하면서 키가 10센티미터가 커졌다는데 너도 한번 도전해볼래 하고 꼬셨단다. 아빠는 직장 일 때문에 가끔씩 주말에만 합류하기로 하고, 세 가족은 제주 두 달 살이를 하러 내려왔단다.

#선두라야 직성 풀리는 아들, 엄마와 딸은 ‘놀멍 쉬멍 걸으멍’

아들은 첫날부터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완주여행단의 선두 그룹에서 날아다녔다. 리드하는 길동무 선생님이 나중에 엄마에게 아들 속도를 따라잡느라고 힘이 부쳤다고 넌지시 고충을 털어놓을 만큼. 딸도 첫날부터 15킬로미터를 다 걷긴 했지만, 징징거리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 다리 아프다, 업어달라, 너무 덥다, 차도 있는데 왜 걸어야 하나 등등.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아들은 걷기가 체질인 듯 삼시 세끼 다 잘 먹고 올레 리본과 화살표 표식도 잽싸게 익혀서 어른보다도 더 잘 찾아갔다. 아들은 길동무 삼촌들과, 혹은 혼자서 선두를 치고 나가는 바람에 출발할 때와 점심 먹을 때, 종점에서 숙소로 돌아갈 때만 겨우 만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엄마가 간섭할 일도, 아들이 짜증을 낼 일도 저절로 없어졌음은 물론이다. (아들에게 걸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을 물었더니 ‘마음이 편안했다’고 했다. 아이들도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게다)

#찡찡대던 딸의 놀라운 변화, 아들의 또 다른 도전

왜 걸어야 하는지 딸의 불평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걸 달래기 위해 아이스크림으로 1킬로미터, 과자로 다시 1킬로미터, 한라봉 사주고 다시 1킬로미터. 과연 일주일이나 버틸 수 있으려나 자신이 없었다. 허나,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잘 걷는 오빠가 길동무 삼촌들에게 칭찬받는 걸 지켜보던 샘 많고 눈치 빠른 딸이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하더란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아이는 올레의 마스코트가 되어, 올레통신의 뉴스메이커로 사랑과 귀여움을 독차지하게 되었더란다. 오빠가 질투할 만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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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매의 걷는 스타일은 확연히 달랐다. 아들은 선두라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인지라 쉬지 않고 묵묵히 치고 나갔다. 그러다 보니 변변히 사진 한 장 없을 만큼. 반면 딸은 바당이 보이면 내려가서 게도 보고 물고기가 있나 없나 물속을 들여다보고, 꽃이 보이면 쪼그려 앉아 한참 꽃을 들여다보면서 길을 원 없이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길은 비단 풍경만이 아니었다. 엄마와 아들은 얼마 전에 한국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더란다. 그런 그들에게 올레길에서 만나는 4.3 유적지, 항파두리, 만세동산, 광해군 기착비는 너무나도 유익하고 생생한 현장이었단다. 오십견 증세와 천식성 기침에 시달리던 엄마의 증세도 길을 다 걸을 무렵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슬며시 사라지고 말았단다. 주말에만 내려와서 몇 코스를 같이 걸은 아빠가 식구들 중에는 가장 걷기에 익숙하지 않아서 고전했더란다.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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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행복한 해피엔딩 스토리인 줄 알았다. 헌데 엄마가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들내미가 시간이 갈수록 동생의 최연소 기록이 주변의 화제가 되고 관심을 끌자 “내겐 기록이 없다”면서 시무룩해지기 시작하더란다. 그러면서 완주를 끝내기 전날 엄마에게 묻더란다. 올레길 최단기 완주기록이 며칠 걸린 거냐고. 17일로 알고 있다고 대답했더니 자기가 그 기록을 한번 깨어보겠다고 하더란다. 그러더니 우리 센터에 완주증을 받으러 오기 전 날에 이미 35킬로미터를 걸었단다. 절로 입이 벌어졌다. 누구에게 강요된 것이 아닌, 스스로 세운 목표니 말릴 수도 없는 노릇. 지후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수밖에.

(그 가족들과 만남 이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후 엄마가 육지 출장 중인 내게 사진을 보내왔다. 지후가 15일 만에 올레 두 번째 완주를 끝냈다는 문자와 함께. 지후는 올레센터 완주자의 벽 앞에서 의연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에게도 드디어 기록이 생긴 것이다.) <서명숙 /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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