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날 '클린올레' 나선 희나, 그녀를 소개합니다
상태바
생일 날 '클린올레' 나선 희나, 그녀를 소개합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 (10) 가을 하늘만큼 맑은 희나와 함께 한 클린올레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코로나 시국으로 서로 간에 거리를 두고 온전한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지금,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길이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치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위에서 전하는 편지>는 그의 블로그에도 실려 있다.

사진 =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제주올레 길이 지나는 구간 어디인들 애정이 없으랴마는, 내가 제주에서 최애하는 공간을 꼽으라면 산도 바다도 숲도 아닌 서귀포 ‘이중섭 거리’다. 6코스가 지나는 길목에 있는, 마치 몽마르트 언덕처럼 완만하고 긴 오르막이 펼쳐지는 곳. 그 거리 입구에 있는 카페 ‘메이비’는 내가 제주올레여행자센터 카페 다음으로 자주 찾는 곳이다. 그곳에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오가는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을 구경하면서 햇볕을 쬐는 것이 내게는 주말 오후의 낙이자 사치다. 카페 위치는 바뀌었지만, 이 거리에 십여년 째 버티고 있으니, 단골들도 십 년 차가 대부분이다. 단골손님들끼리 마치 가까운 친척처럼, 자매처럼, 친구처럼 지낸다.

어느 날 메이비 주인인 혜연이가 날 보더니 자부심 충만한 표정으로 “언니, 우리도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올레 걷기로 했어요. 기왕 하는 거 클린올레도 하려고요”라고 말했다. 아니, 이게 웬일이라니? 맨날 모여서 커피나 마시고 맥주나 홀짝거리던 친구들이 올레길을 걷는다고? 그것도 쓰레기를 주우면서? 기특하기도 하고, 못 미덥기도 해서, 그들이 걷는 첫날은 나도 동행하기로 했다. 때마침 이웃사촌인 여성학자 오한숙희(그녀는 7년 전 혼자 올레를 찾았다가 마침내 아예 가족과 함께 서귀포로 이주했다)가 오랜만에 딸과 함께 올레길을 걷고 싶다길래, 메이비 모임 이야기를 했더니 동참하겠단다. 그러다 보니 판이 조금 커졌다.

# 쓰레기가 별로 없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시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 우리는 5코스 출발점인 남원포구 올레안내소 앞에 집결했다. 메이비 주인 혜연이, 메이비의 터줏대감인 미국 원어민 교사 크리스티나, 기상청 직원 상명이, 상명이의 유치원 친구라는 규진이, 20년째 새마을금고에서 일하는 수진이, 오한숙희, 숙희 딸 희나. 국적도, 나이도, 직업도, 성별도 다 달랐지만, 공통점은 현재 서귀포시민이라는 점이었다.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숙희가 크게 외쳤다. “아, 좋아좋아. 이런 조합 대찬성일세!”

사진 =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모범생 수진이가 차 안에서 클린올레용 쓰레기 봉투와 집게를 들고 나왔다. 각자 취향대로 일반용과 분리수거용 봉투를 나눠 가졌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역설 중 하나가 미세먼지가 사라지고 하늘이 너무도 푸르고 맑아졌다는 것인데, 이 날은 유난히도 더 청명했다. 5코스 남원포구를 지나자마자 우리를 반기는 풍경 하나. 살랑살랑한 해풍을 맞으면서 깃발처럼 나부끼는 오징어들. 이곳 앞바다에서 잡힌 오징어를 자연풍에 반건조시키는 중이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아, 오징어들도 참 행복하겠다.” 또 누군가가 되받아쳤다. “곧 누군가의 입에 들어갈 텐데.” 사물을 보는 시선은 참 이렇게도 다를 수 있구나 싶었다.

걷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모두들 눈에 불을 켜고 쓰레기를 찾기 시작했다. 앗, 여기 있네. 여기도 있다! 소리치면서 그들은 허리를 굽혔다, 폈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쓰레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상명이가 그 특유의 저음으로 혼잣말처럼 뇌까렸다. “쓰레기가 없으니 좋아해야 할지 말지 헷갈리네. 없는 건 좋은 현상인데, 봉투는 어떻게 채우나 걱정되네.”

사진 =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우리 올레 사무국에서 ‘클린올레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 올레길을 낸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당시 지역 언론에서는 올레길의 쓰레기 문제를 대대적으로 조명하는 보도를 여러 차례 내보냈고, 그중 일부 언론은 올레꾼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주범인 양 몰아붙이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크게 상처받은 나는 그해 추운 겨울 혼자서 올레길 전 구간 쓰레기 실태를 조사하면서 걸었다. 올레꾼들만 다니는 오시록한 숲길에는 거의 쓰레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그러면 그렇지!)

하지만 마을길이나 관광지가 겹쳐지는 구간에는 일상적인 생활 쓰레기나 담배 꽁초 따위가, 농로길에는 비닐이나 농약병 등 농업용 쓰레기가, 해안가에는 공해상에서 밀려든 해양 쓰레기가 넘쳐났다.

쓰레기 실태조사를 끝낸 나는 사무국에 제안했다. 누가 버린 쓰레기든 올레길을 행복하게 이용하는 우리가 먼저 나서서 줍도록 하자, 그러다 보면 마을 분들도 관광객들도 따라 주울 것이라고, 최소한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해서 시작된 ‘클린올레 캠페인’은 올레아카데미 동문회가 주도적으로 전개했지만, 동호인별로 마을 자생조직 단위로도 다양하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오늘 메이비 단골들의 클린올레도 그중 하나인 셈이다. 상명이도 쓰레기가 생각보다 적다고 탄식(?)했지만, 확실히 클린올레 캠페인이 시작된 뒤로 올레길의 쓰레기가 줄어든 것만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 증명하듯, 사람들은 지저분한 곳을 더 지저분하게 만들고, 깨끗한 곳은 더 깨끗이 유지하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깨진 유리창 이론: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를 거리에 방치하면 법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로 읽혀서 더 큰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이다.

그들이 각자 쓰레기를 주우려고 중간중간 걸음을 멈추는 동안, 희나는 그들 사이를 나비처럼 날아다니면서 혼자 오롯이 올레길을 즐겼다. 그런 딸을 쳐다보는 엄마 오한숙희의 눈길이 마냥 흐뭇하기만 하다. 그녀가 말했다. “언니. 그동안 쟤가 얼마나 갑갑했겠어? 그 좋아하는 학교는 문을 닫아서 선생님도 친구들도 못 보고, 마음대로 학교 마당에서 뛰어놀지도 못하고 빌라 좁은 공간에 짐승처럼 갇혀서 살아야 했으니. 오늘이 정말 모처럼 오랜만에 행복한 날이야. 희나에겐.”

사진 =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 희나가 사람들 사이를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녔다

장희나. 올해 만 29살인 희나는 오한숙희의 둘째딸. 중증 발달장애인이자 얼마 전에 개인전까지 가진 그림 그리는 화가다. 화려한 원색의 컬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내는 그녀. 보통 사람들과는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희나에게는 날마다 가는 학교가, 늘 웃는 얼굴로 반겨주고 그녀의 말을 잘 이해해주는 특수 교사들이, 자기랑 엇비슷한 나이 또래의 장애우들이, 친구들과 함께 하는 야외 현장 학습이 삶의 윤활유이고 통풍구이고 해방구였을 터. 하지만 계속 상향조정된 코로나19 경계 상황이 그녀 학교의 문을 닫게 만들고, 선생님과 친구들을 못 만나게 만든 것이다.

숙희가 말을 이었다. “쟤네들이 오죽 갑갑하겠어. 갇혀 있으니 더 공격적으로 되거나 아예 축 처지고 말지. 그러니 그런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도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그러다 보니 자포자기하는 마음까지 드는 거지.”

실제로 이 지역사회에서도 얼마 전에 발달장애 아이를 둔 엄마가 자식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가 있었다.

그전에도 엄마 또래의 중년 여성들과도 가끔 걸은 적이 있었지만, 자기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30대 청년들과 걸으니 희나는 더 신이 나는 듯했다. 그 친구들도 희나와 격의없이 어울리면서 즐거워했다. 숙희는 또 한 번 크게 외쳤다. “저, 이런 조합, 격하게 찬성합니다!”

이제는 일반 관광객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큰엉 산책로를 지나서 올레꾼들에게만 살짝 속살을 내보이는 절경의 바닷길 구간에 이르렀다. 관절이 안 좋고 체중이 많이 나가는 크리스티나는 울퉁불퉁한 바위틈새를 오르내리는 이 구간에서 엄청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곧 이 구간이 끝난다고 격려했는데, 웬걸 또다시 그런 구간이 나타나자, 크리스티나는 눈을 잔뜩 흘기면서 “올레마마, 거짓말쟁이!”라고 소리를 쳤다. “그러니까, 평소에 좀 자주 걸으라니까!” ㅋㅋ

사진 =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아, 드디어 오늘 초보 올레꾼들의 목적지인 위미항에 도착했다. 그곳 항구의 국숫집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각자 취향대로 국수 메뉴와 갈비탕을 선택했다. 오한숙희가 소리치듯 말했다. “오늘 점심은 우리 장희나 작가가 쏩니다. 언니 오빠들께 생일턱 겸 앞으로도 쭉 이 모임 멤버로 잘 봐달라는 뜻에서요.”

실제 이 날은 희나가 엄마의 선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지 딱 29년째 되는 생일날이었다. 이 날 올레길의 날씨와 풍광 그리고 나눈 이야기들은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선물이었다.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수정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제주꽃중년 2021-04-17 08:58:33 | 39.***.***.41
맛깔난 글을 읽고나니 저도 올레가 걷고 싶어져서
게으른 몸을 일으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