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서른두번이나 완주, 그녀에게 어떤 사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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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서른두번이나 완주, 그녀에게 어떤 사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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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 (8) 그녀, 루시아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코로나 시국으로 서로 간에 거리를 두고 온전한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지금,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길이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치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위에서 전하는 편지>는 그의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다.

루시아,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지난 시월 어느 날, 세계유산축전 ‘불의 숨길’을 걸으면서였다. 그녀는 햇살이 제법 따가운 초가을 오후에 오시록한 숲길과 숲길 사이, 갑자기 비현실적으로 나타난 아스팔트 도로 한켠에 서서 동료들과 교통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씨에 그 태고의 숲길을 걷기는커녕 걷는 이들을 위해 차량 먼지와 소음을 뒤집어쓰면서 온종일 봉사를 하는 분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해서 고개를 한껏 숙여서 감사 인사를 했다.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어머나, 혹시 이사장님 아니세요?” 인사를 마친 내 눈과 마주치자마자 그녀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왔다. 마스크로 얼굴을 절반이나 가렸는데도 알아보는 걸 보니 열성 올레꾼이거나 이미 아는 지인이겠거니 싶었다. 가뜩이나 선천적 안면인식 장애라서 사람 몰라보는 내가 마스크까지 쓴 상대방을 어떻게 알아보고 응수해야 하나. 망설이는 내 마음을 눈치챈 듯 근처에 있던 탐사국 직원이 내게 얼른 힌트를 주었다. “이분은 육지에서 오셨는데 벌써 올레길을 서른두 번이나 완주하셨어요.”

일단 지인은 아니니 안심이다. 한데 깜짝 놀랐다. 아니, 32번이나 올레길을? 정작 길을 낸 나조차도 수십 번 다닌 코스는 있지만, 모든 길을 32번이나 걷지는 못했는데. 다음에 제대로 만나서 그 사연을 들을 생각으로 그분의 전화번호를 메모했다. (요즘 올레길 편지를 매주 올리다 보니 이런 특별한 이력을 가진 분을 보면 잃어버린 줄 알았던 취재본능이 되살아난다).

언젠가 한가해지면 취재하려던 계획이 휙 앞당겨진 건 그 며칠 뒤 사건 때문이었다. 같은 구간을 다른 일행들과 다시 걸으러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같은 도로에 그녀가 서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알아보고 다른 일행들에게 그녀의 존재를 큰소리로 알렸다. 32번이나 완주한 분이라고. 그랬더니 일행 중 한 명이 그녀에게 ”실례지만 몇 년 생이세요?“ 라고 물었다. 아니, 처음 보는 사람, 그것도 여성에게 나이를 묻다니. 하지만 그녀는 주저 없이 자신이 태어난 연도를 말했다. ”1947년생이요.“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이런, 정말 놀랐다. 나랑 비슷한 또래이거나 많든 적든 두세 살 위아래이겠거니 했는데, 무려 열 살이나 위라니. 올레길 완주에서도 지고, 동안에서도 진 셈이었다. 서른두 번이나 완주한 그녀의 특별한 사연을 듣고 싶은 마음에서, 동안 비결을 듣고 싶은 욕심까지 겹치면서 서둘러 만날 약속을 잡았다. 아, 직접 만나서 들은 그녀의 사연은 상상 이상, 기대 이상으로 드라마틱했다. ‘인생 도처 유상수(세상 곳곳에 고수들이 있다는 옛말)’라는 말이 실감이 날 만큼.

# 10년에 한 번씩 찾아온 위기, 끝판왕은 63살 때 폐암 2기 선고

서두에 언급했듯이 그녀의 천주교 세례명은 루시아. 비교적 평탄한 서울 중산층 주부의 삶을 살던 그녀에게 첫 시련이 닥친 건 33살 때. 너무나도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한 귀여운 아들아이가 3살 때 급성백혈병으로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났다. 본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녀는 더더욱 신앙에 의지해 그 고통을 이겨내려고 성당의 궂은일, 어려운 봉사를 도맡았다. 소속 성당의 일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봉사의 손길을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고 단숨에 달려갔다.

남은 두 자녀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을 만큼 봉사에 죽자사자 매달렸던 나날들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두 남매는 늘 새벽에 성모상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던 엄마 얼굴이 떠올라서 나쁜짓은 못하겠더라며 사춘기조차 다들 무사히 넘어갔다. 그러나 시련은 주기적으로, 10년에 한 번씩 그녀에게 찾아왔다. 43살에는 유방암 선고를 받아서 여성의 상징이라는 가슴을 절제해야만 했고(더 기막힌 건 나중 알고 보니 암 진단이 오진이었단다), 53살에는 자궁 근종이 많다고 해서 자궁을 통째로 들어내야만 했다. 그럴수록 더더욱 성당 봉사 일에 죽자사자 매달리면서 위로와 평안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시련의 끝판왕은 2009년 나이 63살에 닥친 폐암 2기 선고였다. 수술을 하고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견디면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단다. 내 인생은 무언가 하는...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남을 위한 봉사 대신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위해 쓰고 싶어졌단다. 평소 걷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우연한 계기로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단다. 차츰 익숙해지고 좋아져서 여행차 자주 찾던 제주의 천주교 순례길을 걸으러 왔다가, 길가에 푸른색, 오렌지색 리본이 자꾸 보이더란다. 누군가 그 유명한 올레길이라고 귀띔해 주었더란다.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그런 인연으로 올레길에 처음 발을 내디딘 건 2016년. 처음엔 2~3일 걷고 나면 하루씩은 쉬곤 했지만, 조금 지나니 4~5일은 연속으로 걷게 되었고, 나중에는 매일매일 걷게 되었더란다. 이듬해인 2017년 평생 가정주부로 살아온 그녀는 가족들에게 폭탄선언을 했단다. 제주 내려가서 딱 5년만 살다가 돌아올 테니 장기 휴가를 달라고. 암에다 고지혈증에 당뇨 수치까지 높은 부인과 엄마를 혼자 내려보낼 수는 없다고 가족들이 만류했지만, 그녀는 무슨 용기가 나서인지 강행했더란다. 제주에 년월세로 방을 얻으면 중간에 맘이 흔들릴까 봐, 아예 서귀포 월드컵경기장 근처 원룸 오피스텔을 구하면서까지.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그녀에게 물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열 번 스무 번도 아니고 32번이나 완주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녀는 조심스레 정정해 주었다. 실은 33번 하고도 반을 완주했다고. 한번 반은 ‘아카자봉 함께 걷기’ 자원봉사자로 완주했다고. 코로나로 함께 걷기가 중단되면서 34번째 완주가 절반에서 멈추고 말았다고. 그러면서 그녀는 대답했다. 말없이, 늘 그 자리에 있는 자연이 늘 자신에게 엄청난 위로와 힘이 되어 주었다고. 바람조차도 자신을 반겨주는 존재였고, 같은 자리에 어김없이 피어나는 들꽃이 그렇게 기특하고 신기할 수가 없었다고. 바람에 날리는 파란색, 오렌지색 제주올레 리본은 언제나 다정한 친구 같아서 친구를 만나러 가는 마음으로 올레길을 걸었노라고.

그녀에게 70대 중반인데도 소녀 같다고 했더니, 그녀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사실 자신은 지금 나이가 실감 나지 않는단다. 아들이 죽은 뒤 봉사로 지샌 30년 세월 동안 자신이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기에, 걸으면서부터 비로소 자기로 돌아와서 나이를 먹기 시작했기에, 이제 비로소 40대 중반이 된 기분이란다. 동안의 비결이 그럼 봉사였던가, 아들 때문에 잃어버린 세월 덕분이던가, 잠시 헷갈렸다(해석은 각자 알아서 하시기를).

# 담당 의사도 놀란 그녀의 반전 건강

그렇게 길을 날마다 걸은 지 1년 반 만에 서울의 수술 담당 의사에게 검사를 받으러 올라갔더니 차트를 보던 의사가 너무나 놀라워하더란다. 암도 암이려니와 당뇨와 고지혈 수치가 워낙 좋지 않아서 회복에 대한 기대가 힘들었는데 이렇게도 결과가 좋을 수가 없다면서. 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묻자 “역시 걷기가 최고네요”라고 답했더니 의사조차 고개를 끄덕이더란다. 제주행에 반대했던 가족들도 그 결과가 나온 뒤로는 더 이상 서울로 올라오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더란다. 그뿐 아니라 40대 딸과 10대 외손주 남매 둘이 엄마, 할머니를 찾아 제주에 내려오면 절로 올레길을 같이 걷게 되었고, 심지어 손주들은 클린올레에 올인하게 되었단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중단되긴 했지만.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자신감이 붙은 그녀의 걸음은 제주 안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2018년에는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800km에 이르는 해파랑길을 세 번에 걸쳐서 완주했고, 이듬해인 2019년 4월부터 6월까지 60일 동안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완주하기에 이르렀다. 같이 출발한 지인 6명 중 3명만이 무탈하게 걸었던 길을, 오롯이 자신만의 힘으로 걸었단다.

# 다시 봉사의 길에 나선 루시아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자신을 위해서만 걸은 건 아니었다. 길에서 자신을 찾고 나니 봉사 본능이 되살아난 걸까. 그녀는 자신이 길에서 누린 위안과 행복, 감사를 누군가에게 전파하고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졌다. 봉사를 하려면 제주올레 아카데미 과정을 이수하는 게 좋다고 누군가가 조언하길래

2018년 3월 아카데미 26기 과정을 신청해서, 치열한 손가락 경쟁을 뚫고(당시 아카데미는 선착순으로 신청받을 때라 공지하자마자 신청이 마감되곤 했다) 그 과정을 이수했다. 그런 뒤에 ‘제주올레 함께 걷기’에 자원봉사자로 축제도 자원봉사로 참가했다.

딴에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처음 길에 발을 내딛거나 혼자 걷기 두려워하는 올레꾼들의 벗이 되어 주었지만. 그녀에 대한 평가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엄마 같은 심정으로 올레꾼들의 간식을 챙겨주는 그녀에게 올레꾼들 버릇을 잘못 들인다고, 지나치게 마음을 쓴다고 내놓고 지적하거나, 뒤에서 험담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 위축된 나머지 그만둘까 생각도 했지만, 엄마 같은 늙은이 마음이니 이해해달라고 사정을 구하고, 참가자들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걸 당연하게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미리 다짐을 받으며 간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혼을 앞두고 이별 여행을 왔다가 그녀와 걸은 뒤 남편과 다시 화해했다는 편지를 보내오거나, 제주 여행을 마치고 자살을 하려고 약까지 준비해두었다가 그녀에게 맡기고 가면서 다시 용기를 내서 살아보겠노라고 말하고 가는 올레꾼이 있어서 너무나도 보람된 나날이었다.

본디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면 올가을에는 외국의 어떤 길을 오래 걸으러 가든지, 올레길을 다시 서귀포의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산티아고에서처럼 길에서 먹고 자면서 주욱 다시 한번 걸어볼 생각이었단다.

# 따로 함께, 제주올레걷기축제를 걷다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그러던 중에 제주올레 홈페이지에 코로나 19시대에 맞춰 올 축제는 23일에 걸쳐 제주 본섬의 모든 코스를 도는 장거리 분산형 축제를 할 것이며, 날마다 매 코스 15명의 소규모 걷기단을 23일간 이끌 자원봉사대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더란다. 읽는 순간 ‘아, 이건 딱 나를 위한 축제이고 날 위한 프로그램이구나’ 싶더란다. 아카데미 신청 때처럼 발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그녀는 23일간 난생처음으로 반장이 되어 걷게 되었다. 올해 가을, 제주올레 걷기축제가 끝날 무렵이면 그녀는 34번째 반을 완주하게 될 것이다.

그녀의 세례명 루시아는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는, 눈이 나쁜 사람들을 수호하는 성녀에서 따온 이름이다. 생각해보면 그녀에게 딱 맞는 이름이다. 자신을 잃고 살던 건강마저 잃었던 그녀는 길에서, 자연에서 빛을 찾았고, 그녀 역시 이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빛을 비추는 사람이 되었으니. <서명숙 /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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