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이 슬퍼서 둘레길로 숨어든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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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이 슬퍼서 둘레길로 숨어든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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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 (3) 동생을 떠나보내며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코로나 시국으로 서로 간에 거리를 두고 온전한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지금,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길이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치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위에서 전하는 편지>는 그의 블로그에서도 볼 수 있다.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두 번의 편지를 보내고 난 뒤 블로그에 달린 정성스러운 댓글들 외에도 여러분들에게 카톡과 전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연들, 더 자주 보내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 응원을 받노라니, 문득 마음속에 고인 제 자신의 이야기도 솔직히 털어놓고 싶어졌습니다. 이런 분들에게라면 제 마음의 묵은 상처까지 드러내지 못할 게 뭐 있겠나 싶었고, 드러내서 치유받고 위로받고 싶어졌습니다. 따라서 이번 편지는 길을 내는 여자 서명숙의 이야기입니다.

제 책을 읽어보신 분들은 기억하실 겁니다. 서귀포에서 나고 자란 제가 대학 진학 후에 서울에서 30여 년을 발버둥 치며 살다가 마침내 몸과 마음이 탈탈 털리는 번아웃 상태가 되었으며, 2006년 산티아고 길을 떠났다가 이듬해 고향으로 돌아와서 누구나 다 걸을 수 있는 낮고 낮은 해안길을 내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손을 내밀고 제 일처럼 두 팔을 걷어붙인 ‘조폭’ 출신 남동생 서동철이 있었다는 것을.

​2020년이 시작될 무렵만 해도 저는 이 특별한 숫자가 겹치는 해에 대한 기대가 많았습니다. 올레길을 낸 지 만 12년이 흘렀고, 고향 제주에 대해선 알만큼 알고 할 만큼 할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물론 이게 얼마나 착각이고 오만인지 나중 깨달았지만요), 2020년 3월부터 반 년 동안은 유라시아 10개국(몽골 포함)의 유명한 트레일을 걸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2018년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서 열린 월드 트레일즈 네트워크 총회에서 첫 국제홍보대사로 위촉된 저는 해외 트레일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갈망과 호기심, 다시 한번 이 섬을 길게 떠나 있으면서 더 넓은 세계를 체험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런 경험이 다시 올레길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활용될 수 있다면, 안식이자 비상(飛上)일 테이니까요.​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사람의 운명이라고 하던가요? 1월 중순쯤 가파도에 사는 동철이가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제주대 병원에 실려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몇 년 전부터 간염, 간경화, 간암으로 진행되는 병을 앓아왔지만 워낙 건강 체질인지라 제법 오래 견딜 거라 믿었는데. 간밤에 내린 폭설로 소형 차량은 아예 통제된 5.16 도로를 281번 버스를 타고 넘어가면서 그 와중에도 눈 덮인 한라산 꼭대기 모습이 얼마나 신령스럽던지, 그리고 숲 터널의 눈꽃을 뒤집어쓴 나무들이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군락 같더군요. 병상에서 오랜만에 누이와 마주한 동철이는 배가 복수로 잔뜩 부풀어 올랐음에도 만면에 웃음을 띠고 “난 2-3년은 거뜬히 삽니다게. 걱정 맙서. 맛 좋은거 사와수과? 안 사와시민 돈이라도 줍서.” 그러더군요. 그로부터 닷새 만에 제 동생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오로지 편도밖에 없는 하늘 올레길로 떠났습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코로나가 갑자기 온 나라에 창궐하기 시작하더니, 의료진의 사투와 당국의 대처로 잠잠해지나 싶더니만 온 세계가 팬데믹 상황으로 치닫고 마침내 외부 세계로 떠나는 항공사 편이 완전히 닫혀버렸습니다. 당연히 제가 끊어놓았던 3월 5일 서울-부다페스트편 비행도 불발이 되고 말았지요.
 

​#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서 빛을 보았다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실감 났습니다. 올레 사무국 모든 직원들, 가족들에게도 한국에 3월부터 8월까지의 부재를 고지하고 모든 일정을 비워놓았던 터라, 딱히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힘들 때 늘 그랬듯이 올레길을 걸으면 또다시 힘이 생기겠지 싶어 3월 말쯤 간신히 마음을 추슬러 올레길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기대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모든 코스, 모든 길, 모든 풍경, 모든 나무와 새들이 죄다 동철이와의 갖가지 추억을 불러내고, 그 기억은 날카로운 통증이 되어 제 몸과 마음을 후벼 팠습니다. 와랑와랑한 햇빛 아래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길을 찾아냈던 곳, 갑자기 나뭇등걸 뒤에 숨어 있다가 개구쟁이처럼 불쑥 고개를 내밀었던 곳, 故 리영희 선생님을 대접한다고 후배를 시켜 막걸리를 사들고 오게 했던 수봉로 언덕. 그 애와 함께한 좋은 기억도, 슬픈 기억도, 아픈 기억도 올레길 곳곳에 숨겨져 있다가 불시에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2-3일 동안 올레길을 걷다가 더는 못 걷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그 애와 다니지 않았던 제주의 길은 없을까. 생각해 보니 동철이와 아름다운 제주 해안과 마을을 잇는 올레길을 찾아내고 길을 잇느라 순전히 바닷가 쪽으로만 걷고 또 걸었습니다. 게다가 전 어릴 적부터 폐활량이 적다는 이유로 오르막길이나 산길을 지독히도 싫어했습니다. 제주올레 길을 낼 때에도 되도록 높은 오름은 피하자, 7살 아이부터 80살 어르신까지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는 만만한 길을 내자는 게 제주올레의 조성 원칙이자 슬로건이었으니까요.

​그래, 숲으로, 산으로 들어가서 걷자. 생각했습니다. 그곳에선 동철이를 떠올리게 될 일은 없을 테니. 제주를 얼추 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모르는 제주가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니. 하지만 그때만 해도 두어 곳이나 다녀올 생각이었지 제주의 숲에, 산에, 둘레길에, 마을 숲길에 그토록 푹 빠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곳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더군요. 마을은 아예 없고, 걷는 이들도 드물고, 대신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만나게 되는 겁 많은 노루들과 이름도 다 외울 수 없는 수많은 종류의 나무들과 이름을 다 불러줄 수 없는 다양한 울음소리를 가진 새들이 그 공간의 주인인 세상 말입니다. 물론 올레 구간에도 바닷가 숲길이나 낮은 오름은 더러 있지만, 한라산 둘레길이나 중산간 마을 숲길은 좀 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더 깊고, 더 그윽하고, 더 원시적이라고나 할까요. 더군다나 제게 숱한 고통과 기쁨과 우정과 연대의 기억을 선사한 동철이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이 없어서 오랜만에 평화와 고요가 찾아들었습니다. 역시 올레길도, 둘레길도 풍경과 정취는 달라도 치유를 가져다준다는 점만은 같았다고나 할까요.​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4, 5월 두 달은 한라산 둘레길(천아숲길, 돌오름길, 동백길, 수악길), 추억의 숲길, 치유의 숲길, 교래 휴양림, 절물 휴양림, 머체왓 숲길을 눈만 뜨면 나가서 걸었습니다. 어떤 길은 5-6번도 더 가서 구간마다 달라지는 숲, 바위의 형상이 저마다 다른 계곡의 풍경을 눈을 감고서도 떠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6월에 접어들자 산길에서 쌓은 체력을 바탕으로 급기야 한라산에도 올라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한라산 정상 등반길은 오르막을 힘들어하는 제게 ‘넘사벽 길’이었던 지라 제주 귀향 이후 지난 12년 동안 딱 세 번, 그것도 입술을 깨물면서 오로지 제주를 만든 설화 속 여신 ‘설문대할망’을 만나기 위해 때로는 간절한 기도를 위해 올랐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6월 한 달에만 5번을. 등반로 중에서도 가장 힘든 깔딱으로 알려진 관음사 등반로도 2번이나 올랐습니다(나중에 기회가 되면 제가 걸은 둘레길과 마을 숲길과 한라산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드리겠으니 기대하시길).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사진= 사단법인 제주올레. ⓒ헤드라인제주

저는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올레길 구상을 처음 들려주었을 때 단박에 ‘정말 멋진 생각이다. 모든 걸 다 바쳐 누나의 프로젝트를 돕겠다’고 했고, 실제 그렇게 했던 동생 동철이가 하늘올레로 떠나면서 누나에게 큰 선물을 남기고 갔다는 것을. 바닷길밖에, 평지길 밖에 모르는 누이에게 한라산과 그 둘레길과 숲길을 선사했다는 것을.

그리고 코로나19가 제게 역설적인 기회를 주었다는 것도. 코로나가 아니었더라면 저는 제주를 절반밖에 몰랐으면서도 다 안다는 자부심을 갖고 지금쯤 유럽이나 러시아의 어느 길 위에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코로나19에 발목이 잡히는 바람에 전 더 늦기 전에 제주의 나머지 절반의 길에 서서 제주를 더 넓게 더 깊이 느끼게 되었으니, 예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저와의 <시사저널> 인터뷰 때 들려준 말을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제 인생 경험에 비추어보면 행운의 여신은 대부분 아름답고 황홀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은 마주 보기도 힘들 만큼 끔찍하고 추악한 모습을 하고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지요. 나중에 그 위기를 다 넘기고 나면 그제서야 그 끔찍한 존재가 행운의 여신이었음을, 위기가 기회였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이죠.” <서명숙 /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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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021-03-04 08:31:44 | 223.***.***.210
좋은글입니다 이어도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