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올레시장 내 단돈 3000원 보리비빔밥 식당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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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올레시장 내 단돈 3000원 보리비빔밥 식당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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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 (28) 금복식당 이야기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코로나 시국으로 서로 간에 거리를 두고 온전한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지금,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길이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치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위에서 전하는 편지>는 그의 블로그에도 실려 있다.

사진=사단법인 제주올레
사진=사단법인 제주올레

간 만에 길 이야기 말고, 식당 이야기를 하련다. 보기보다 까다로운 나는 식당을 자주 찾지 않는 편이다. 위생은 그다지 따지지 않는 편인데 소리와 분위기에 민감해서 텔레비전 소리가 나는 식당은 일단 피하는 편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심지어 코드가 잘 맞지 않는 사람과 회식하고 나면 먹은 게 얹히곤 한다. 기자 생활할 때는 아무나 만나야 하고, 뉴스가 생기면 어떤 자리라도 가야 하니 불편한 식사 자리도 꾸역꾸역 가야 했다. 그래서 기자 생활을 때려치우고 고향 제주로 길 내러 내려오면서 결심한 것 중 하나가 ‘밥맛없는 사람들과는 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람 가리고 식당 분위기 가리다 보니 고향 제주로 돌아와서 10년 넘도록 가본 식당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내가 처음 소개해서 올레꾼들에게도 제법 알려진 ‘고향생각-고기국수집’ ‘안거리밖거리’ ‘돌아온 천지연’ ‘새섬 갈비’ 같은 식당 정도랄까.

# 시장에 그런 집이 있다고라? 세상에나 대박! #

헌데, 어느 날 이중섭 거리 이중섭 미술관 전은자 큐레이터가 내게 말했다(참고로 그녀는 나처럼 제주 토박이가 아닌 육지 여자다). “금복식당 아시죠?” “모르는데요.” 그랬더니 평소에는 매우 조용하고 과묵한 그녀가 폭풍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 집은 정말이지 너무 좋은 재료를 너무 맛있게, 너무나 싸게 파는 ‘가성비 최고 맛집’이다, 시장 주변 어지간한 주머니 사정 가벼운 분들은 다 아는 향토 맛집인데, 먹는 걸 좋아해서 ‘식탐’ 책까지 쓴 선배가 모르시다니 참 안타깝다, 다음에 꼭 제가 한번 뫼시겠다’, 등등

사진=사단법인 제주올레
사진=사단법인 제주올레

하지만 그런 날은 서로 어지간히 바쁘기도 하고, 이상하게도 서로 날짜가 안 맞기도 해서, 한동안 그냥 흘러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올레시장에 갔다가 살짝 시장기가 돌아서 그 이야기가 생각나서 주변에 물어물어(거기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난 그녀가 말한 금복식당을 만복식당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 시장통 사람들이 알 리가 만무했다. 살짝 눈치 빠른 어떤 분이 금복을 만복으로 착각하나 보나 싶어서 거기를 가르쳐줬길래 망정이었다) 찾아갔다.

사진=사단법인 제주올레
사진=사단법인 제주올레

아, 그 식당은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했더라도 찾기 어려운 가게였다. 올레시장 골목에서도, 더 들어간 골목에 위치한, 간판조차 제대로 없는 식당이었다. 기냥, 아는 사람만 알아서 찾아오라는 듯 숨어 있는. 입구에는 작은 입간판으로 ‘보리밥 정식 3천 원’이라는 글씨만 씌어 있었다.

헌데 반전이었다. 식당 안은 넓었고, 엄청 깔끔한 분위기였다. 주방 홀을 맡은 서빙 아줌마(나중 알고 보니 80대 초반 할머니였지만)는 요즘 시쳇말로 뜨는 아줌마 ‘패셔니스타’ 같은 복장이었다. 음식은 더했다. 단돈 3천 원짜리 정식인데 반찬이 대여섯 가지에(양은 아주 작았다. 남기는 게 싫어서 적게 담을 뿐, 더 달라면 밥도 반찬도 얼마든지 더 준다) 그릇도 어찌나 앙증맞은지. 아, 그 비벼 먹는 맛은 묻지 마시라. 일단 기본적으로 맛있고, 더한 맛은 그대의 손맛에 달려 있으니.

나는 기자 본능을 발휘해 그 서빙 아주머니에게 틈틈이 갈 때마다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기사를 쓰거나 책에 쓸 요량은 아니었다. 그냥 궁금했다. 이렇게 맛난 보리비빔밥을 라면값 단돈 3천 원에, 그것도 이렇듯 깔끔한 상 차림새로 이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건지, 아주머니와 주방 아주머니의 관계는 뭔지, 아주머니는 본래 제주도분인지 아닌지 기타 등등.

그래서 알게 된 사실은 놀라웠다. 60대, 많아야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 아주머니는 80대 초반. 주방에서 모든 음식을 맡아서 하는 아주머니의 친언니는 80대 중반이란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왕년에 춘천에서 7080 시대에 가장 잘 나가는 음악 카페 사장님이었단다. 당시 시장님인가 강원도지사에게 여성 기업인상을 받았을 만큼 호황을 누리던.

사진=사단법인 제주올레
사진=사단법인 제주올레

허나 그것도 한 때, 한 시절의 일이었더란다. 흘러 흘러 서귀포 올레시장에 정착하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밥 한 끼 해먹이고 맛있다는 이야기 듣는 일이 참 좋고 행복하단다. 그 식당을 드나든 지 한두 해 뒤에, 나는 ‘백반 기행’을 진행하는 허영만 화백에게 그 식당을 추천했다. 허화백을 통해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작가들은 좋아라 하며 사전답사를 오겠다길래, 그 자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앞으로 이 식당 대박 날지도 모른다면서.

그랬더니 이게 웬일? 그 동생분이 낯빛이 싸늘해지면서 그러지 말란다. 자기네는 이미 나이 들어 대박 나서 더 많은 사람들 받기도 힘들고, 오랜 단골들 줄 서서 기다리고 제대로 못 먹는 것도 싫다면서.

사진=사단법인 제주올레
사진=사단법인 제주올레
사진=사단법인 제주올레
사진=사단법인 제주올레

얼마 전 출장 다녀오는 길에 그 식당을 찾았다. 오랜만에 가서 너무나도 즐겁게, 허겁지겁 탐스럽게 보리비빔밥을 해치웠다.

그랬더니 그 동생분(아직까지 그 언니는 주방에서 일하는 뒷모습밖에는 본 적이 없다)이 내게 쿨한 표정으로 모처럼 먼저 얘기를 건넸다. “뭐 하느라 이렇게 밥도 못 먹고 댕겨요?” “그러게요.” <서명숙 /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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