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코로나 시국으로 서로 간에 거리를 두고 온전한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지금,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길이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치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위에서 전하는 편지>는 그의 블로그에도 실려 있다.
산티아고 길을 걷고 난 뒤에 고향 제주에 걷는 길을 내기로 결심하고 돌아온 것은 14년 전인 2007년. 그러나 내가 나고 자란 서귀포 구도심으로 돌아온 건 그로부터 2년 뒤인 2009년. 중문 대포포구 근처 빌라에서 전세를 살다가 중문의 바람과 추위를 견디지 못해-이런 이야기를 하면 육지 사람들은 이해를 못하지만-다시 이사를 결심한 것이었다. 마치 남불 프로방스처럼 따뜻하고 바람이 덜 부는 서귀포 외돌개 안쪽, 정방폭포 윗동네로 이사하니 살 것 같았다.
그때부터였다. 정방폭포에서 외돌개까지 서귀포 원도심 구석구석을 날마다 산책 삼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 늘 친구들과 물놀이를 했던 자구리 바당은 아름다운 섶섬, 문섬을 거느린 채 여전히 푸르렀다. 헌데 뭔가 이상했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 비해 바당으로 가는 길목이 너무도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그렇다. 굿당, 고아원, 돼지 도살장이 나란히 있었는데 그 자리에 잘 가꿔진 잔디밭이 깔린 공원이 들어서 있었던 것이다. 추억의 장소가 사라진 건 살짝 아쉬웠지만, 그 자리에 요란벅쩍지근하고 높은 건물 대신에 바다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수변공원이 들어서다니. 그 풍경은 유럽 어느 해안 도시보다 아름다웠다.
그뿐이 아니었다, 외돌개 돔베낭길, 칠십리시공원, 걸매생태공원, 정모시쉼터공원, 불로초공원, 서복공원, 태평소공원, 솜반천공원.... 구도심 외곽에는 어김없이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우러진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당시 서귀포 신시가지 월드컵경기장에서 월드컵 경기 예선전이 열리는 것을 계기로 당시 강상주 시장이 중앙 정부를 설득해서 조성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기억 속의 옛 모습보다도 더 아름다워진 고향 서귀포의 원도심을 날마다 산책하는 기쁨을 누리면서, 나는 이 공원에 사람이 너무 없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독점의 기쁨보다는 이런 공원이 그 가치만큼 공유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훨씬 컸다.
그래서 돔베낭길과 칠십리시공원은 7코스로, 걸매생태공원을 7-1코스로 편입시켜서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제주를 걸어서 한 바퀴 도는 올레길의 특성상 서귀포의 원도심 구석구석을 모두 연결하기는 난망할 일이었다. 그래서 재작년에 <서귀포를 아시나요>라는 책을 펴내면서 서귀포의 숨겨진 보물인 공원들과 그 풍경들을 자세히 언급했다. 길로 연결하지 못한 아쉬움을 이렇게라도 달래려고.
# 김태엽 서귀포시장이 제안하고 제주올레 탐사팀이 투입되다
책이 발간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김태엽 서귀포 시장이 어느 날 의논할 일이 있으니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그는 다짜고짜 5-6개의 공원과 시장통과 원도심을 연결하는 산책길을 조성할 터이니, 올레라는 길 명칭을 붙이도록 해달란다. 제주올레길이 전국적인 걷기 열풍을 불러일으키자 여러 지자체와 길 단체에서 자신들이 조성하는 길에 이름을 쓰도록 해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개중에는 꽤나 많은 액수의 명칭 사용료를 준다는 지자체도 있었다. 하지만 한 시민단체가 만든 ‘대구 올레’ 외에는 그 어느 곳에도 허락한 적이 없었다.
허나 내 고향 서귀포 원도심의 알려지지 않은 속살을 보여주고, 상권을 신도심과 신시가지에 다 뺏긴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시장의 호소를 그냥 외면할 수는 없었다. 사무국 스태프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할 결과, 우리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서귀포시와 원도심 올레길을 공동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행정과 민간이 각자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공조하기로 한 것이다.
# 할아버지 손 잡고 걸은 그 길을 찾아내다
코스 탐사와 길 표식 디자인은 우리의 몫이었다. 이름은 ‘하영올레’로, 모두 3구간으로 결정되었다. 하영올레는 (‘하영’은 ‘많다’를 뜻하는 제주어이다). 흐르는 물도 많고, 그 물이 낙폭 큰 절벽을 만나서 천지연과 정방폭포를 이루고, 공원도 많고, 공원 주변에는 나무와 꽃도 많고, 도심에는 가게들도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도심을 비껴가거나 작은 시골마을들을 지나고 오름이나 곶자왈을 통과하는 여느 올레길과는 다른 원도심 길을 뜻하는 명칭인 셈이다.
본격적인 1코스 답사를 하면서 가장 걸림돌로 떠오른 것은 걸매 생태, 체육공원을 지나서 칠십리시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4차선 도로와 횡단보도 신호등이었다. 매번 내가 아침 산책을 할 때마다 발길을 한참 멈추고 기다렸던 그곳. 육교로 연결하는 방안도 아이디어로 나왔지만, 대형 화물트럭까지 오가는 도로이니만큼 꽤나 높은 육교가 필요한 데다 되도록 대형 토목사업을 되도록 하지 않는다는 올레길 조성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었다.
이럴 때에는 무조건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다! 무조건 찾고 또 찾아보는 수밖에. 예전 올레길 조성 초기에 초대 탐사대장 서동철과 내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방식이었다. 탐사를 맡은 임연택 위원에게 걸매공원과 시공원 주변을 샅샅이 뒤져서 어떻게든 연결 고리를 찾아내라고 주문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만 해도 걸매공원 위 고가도로는 없었다, 그러니 그 밑으로 주민들이 오가던 길이 있었을 거라고. 물론 내게도 확신은 없었다. 어린 시절 걸매공원 근처는 내가 살던 아랫동네에서는 아득히 먼 곳이었는데다, 그곳에는 서귀포읍의 유일한 산업시설인 포도당공장이 들어서 있어서 가까이 갈 엄두를 못 냈던 곳이므로.
1주, 2주가 지나도 탐사팀으로부터는 아무런 보고도 없었다. 그냥 차들이 씽씽 달리는 대로변에서 푸른 신호등이 켜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칠십리시공원으로 건너가는 수밖에 없나 보다 포기할 무렵, 임 위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무척 흥분한 목소리로. “드디어 찾아낸 것 같습니다. 길이 어렴풋하게 보입니다. 조금 보완 작업만 하면 연결할 수 있겠습니다.!”
탐사팀이 길을 찾아낸 이 지역은 천지연으로 가는 물길이 흐르는, 원앙과 무태장어 서식지여서 문화재청의 형질변경 허가도 받아내야만 했다. 문화재청의 허기가 떨어진 건 1코스 개장 이틀 전이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알 리 없는 하영올레 개장식 참가자들은 코스의 아름다운 비경과 물소리에 저마다 감탄사를 연발했다. 나이 지긋한 한 참가자는 갑자기 이 길 중간 즈음에서 큰소리를 질렀다. “우리 꼬맹이 때 여기 왕 몸 감아난 디여게! (우리 어릴 적 여기 와서 수영했던 곳이다)”
문득 2008년 4코스 개장식 때 기억이 떠올랐다. 동철이와 내가 탐사를 하면서 가시덤불로 뒤덮인 바닷가 앞에서 근처 해녀 삼촌들에게 길을 묻었을 때다. 삼촌들은 바당 쪽으로는 길이 없다면서 마을로 난 큰 도로를 가리키면서 그쪽으로 가라고 했다. 옛날 길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완강하게 손사래를 쳤던 그녀들. 하지만 우리가 그 가시덤불 사이를 뚫고 들어가자 긴 세월 숨겨져 있던 길이 오롯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코스 개장날 참석한 그 해녀 삼촌들은 가시덤불 걷어낸 그 길을 보자마자 각자 자신들의 추억을 소환해냈다. 바닷가 감자전분 공장으로 일하러 가던 길이었다는 둥, 무서운 부모의 눈을 피해 밤마다 지금의 아기 아버지와 바닷가 데이트를 했던 곳이라는 둥. 가마리에서 그랬듯이, 이번 하영올레 1코스도 여행자들에게는 신비의 ‘이색구간’이지만, 어릴 적 이곳에서 살던 주민들에겐 기억이 다시 소환되는 ‘기억공간’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개장식이 끝난 뒤 임연택 탐사전문위원에게 그 길을 잘 찾아냈다면서 앞으로 엄청난 명소가 될 것 같다고 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68년, 가을지나 입학 전 7살 때 할아버지를 따라 포도당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길을 찾아서 이리저리 헤매던 중 문득 어느 공간에선가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고, 그래서 마구 그 기억을 더듬으면서 길 없는 길을 올라갔더니 공장에서 매설한 파이프라인 보이길래 아 맞구나 싶었노라고.
“아니, 임 위원은 육지 출신이잖아요?” “전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제주시, 할머니는 종달리 분이셨어요.”
아하, 그렇구나. 나는 여태껏 임 위원이 올레길을 걸으러 왔다가 제주에 반해서 정착한 육지 사람인 줄 알고 있었는데, 제주의 손자였구나. 손주의 손을 잡고 지인을 만나러 포도당공장에 왔던 할아버지 덕분에 손주는 하영올레 1코스의 하이라이트인 ‘이색구간’을 개척하게 되었구나. 길은 이처럼 기억을 줄줄이 소환해 내고, 길은 이처럼 길의 기적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구나. <서명숙 /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