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실의 문학산책] (10) 그녀에게 난, 쏠쏠한 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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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실의 문학산책] (10) 그녀에게 난, 쏠쏠한 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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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가 아닌, 어떻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글을 통해 내가 몰랐던 내 얼굴을 보기도 하고, 그려 내기도 한다. 그래야 좀 더 따뜻하고, 성숙 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에서의 풋풋한 삶을 사랑스런 언어로 그려내는 글을 쓰고 싶다." <수필가 최연실>

언제였을까, 족히 7~8년은 되었나 보다. 어머님과 이별하고 한동안 방안 통수로 지내고 있을 때, 남편이 말을 걸었다.

“당신 글 쓰고 싶어 했잖아, 어떻게 됐어?”

“봄 학기 강좌 신청했어요.”

“잘했네.”

배꽃이 만개한 교정, 따사로운 봄볕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개강 첫날, 다홍색 재킷이 유난히도 돋보이는 그녀를 보았다. 더불어 그녀를 화려하게 빛나게 해 준 것은 고양이 모양의 브로치였다. 야옹이 몸통은 투명한 크리스털로 반짝이고 있었고, 루비가 박힌 고양이의 눈은 그녀의 심상치 않은 카리스마를 말해주듯, 정열적이고 도도해 보였다. 그녀의 얼굴도 화사했다. 문우들이 하는 대화를 살짝 엿들으니, 그녀는 관직에서 퇴임한 지 얼마 안 된 백수 초년생이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사무적이었지만 나름대로 부드럽게 느껴지는 게, 꼭 쓴 커피에 위에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듬뿍 얹어 나온 비엔나커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웃는 모습도 예뻤다.

두 번째 수업이 있던 날, 나는 수필 한 편을 겁 없이 내놓았다. 단락도 구성도 모르지는 않았지만, 내 일상의 대부분이 카톡으로 하는 문장이었기에 나의 무지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문법도, 맞춤법도 다 틀린 작품을 문우들 앞에 나와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포도주로 세수 한 것처럼 붉어졌다. 그것은 작품 속의 나란 여자는 사차원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엉뚱하고, 맹한 구석이 많은 여자다. 우호적으로 말하자면, 재밌는 성격의 소유자다. 내 작품 속에 “소주 각 1병”이란 대화가 있다. 그날 이후로 나하고 눈이 마주칠 때면 그녀는 내게 “연실이! 소주 각 1병.”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나를 놀리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교제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녀와 나는 절친한 선후배 사이가 되었다.

그녀의 글은 정감이 있었다. 시골에서 성장한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향수를 불러왔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구수한 청국장을 곁들인 보리밥 한 상을 대접받는 기분이 들곤 했다. 동구 밖 시골길을 달리는 자동차의 차장 너머로 이제 막 모내기 한 논에서 풋풋한 물 냄새가 솔솔 풍겨오는 듯했다. 그녀가 쓴 글 속에 느닷없이 남도의 사투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때면, 맏언니 같은 깊은 정이 느껴져 기대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곤 했다. 그녀의 진솔하고 푸근한 마음이 내가 시골 생활을 동경하게 하는데 한 몫을 했다. 아마도 나를 제주에 내려오게 만든 불쏘시개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머리부터 뼛속까지 서울 여자다. 특별시를 벗어나면 크게 잘못될 것이라고 그리 생각하며 살았다. 아스팔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전형적인 도시의 여자로, 내 뿌리는 양분이 부족하여 메마른 감정이었기에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것이 전부였다. 내 글은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것이었다. 오히려 싱거운 맛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알 수 없는 삭막함과 독자에게 잘 보이려는 허영심만이 가득했다.

그녀와 내가 닮은 것이 있다면, 자연으로 돌아가 순응하는 삶을 살아보는 것. 그 삶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들며, 반추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둘은 배움에 대한 욕심도 닮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소화능력이 뛰어났고, 나는 저장능력만 뛰어났으니 매번 급체하여 약을 대령해야 했고, 그것도 효과가 없으면 빵빵한 배를 움켜잡고 며칠을 고생하는 게 다반사였다. 소화능력이 부족한 나였기에 내가 가는 길이 운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몇 년 전, 그녀를 광화문에서 만났다.

“언니, 걱정이야.”

“왜?”

“청탁받았는데, 잘 안 써지네요.”

“내게 없는 것이 너한테는 있고, 너는 점점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거야?”

그녀를 만나고 온 날, 나는 새콤한 석류 씨 몇 알 입안에 터트린 것처럼 새콤달콤한 소설을 쓰게 된다. 나를 기분 좋게 하는 말 때문이 아닌, 내 안에 숨어 있는, 1퍼센트도 안 되는 예술혼을 꺼내게 해주기 때문이다.

앞마당에 핀 유채꽃밭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녀가 찡긋 웃으며 날린 한 마디가 생각난다.

“너는 나에게 쏠쏠한 재미를 주는 후배야! 언제 우리 소주 각 1병에 도전 해 볼래?” <수필가 최연실>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 미국으로 이민 간 언니를 대신해서 시상식에 갔다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생활수필반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2018년 수필가로 등단했다.

- 2018년 수필과 비평 등단
- 한국 언론인 총 연대 편집기자
- 서울 서부지부 원석문학회 회원
- 제주 백록수필 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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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2022-07-23 11:39:53 | 112.***.***.220
작가님 글도 쏠쏠한 재미를 주는 것 같습니다. 이번주도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