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실의 문학산책] (5) 나란 여자, 너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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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실의 문학산책] (5) 나란 여자, 너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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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가 아닌, 어떻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글을 통해 내가 몰랐던 내 얼굴을 보기도 하고, 그려 내기도 한다. 그래야 좀 더 따뜻하고, 성숙 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에서의 풋풋한 삶을 사랑스런 언어로 그려내는 글을 쓰고 싶다." <수필가 최연실>

나란 여자

“남편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지. 내 팔자야.”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자주 하던 말이다. 그러면서 아비한테 시집 잘 온 줄 알라고….

“당신 뭐라고 했어?”

자는 내 귀에다 속삭이고 있었다. 잠결에 잘 들리지 않아 엎드린 몸을 비스듬히 했다.

“못 들었으면 주무세요.”

그리곤 돌아 나가다가 다시 남편이 얼른 내 옆으로 왔다.

“말해줄까?”

새벽녘 무슨 일일까. 귓속말해 주는 것이 얼마 만인가.

“당신 너무 지저분해, 돼지우리도 아니고….”

그러면서 베개로 말대꾸를 못 하게 입을 막았다.

식전 댓바람부터 물세례를 받은 기분이었다. 마음은 상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본디 나란 여자는 정리 정돈을 잘 못 했다. 집 정리는 어머님과 남편의 몫이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치우고 살고 있다.

제주에 내려오니 간섭할 사람도 없고, 항상 누웠던 자리에, 화장실에, 소파에 보던 책이 있어야 했다. 입었던 옷은 방향제를 뿌려 여러 번 우려냈다. 빨랫감은 물 부족 국가에 사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절수하는 차원에서 쌓아놓았다. 여자는 뒤죽박죽된 곳에서도 찾고 싶은 물건을 잘도 찾아냈다. 오히려 정돈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 감각을 잃어버릴 때가 많았다. 여자의 어릴 적 머릿속 교육은 너무 쓸고 닦으면 복이 나간다고 배웠기에 삼시 세 때 걸레질하는 어머님이 이상스레 보였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도 닦고, 닦으셨다. 나는 따라다니면서 한 마디도 쉬지 않았다.

“어머니, 너무 쓸고 닦으면 복 나간대요.”

“너처럼 살다 간 오던 복도 지저분해서 도로 도망가겠다.” 말씀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나란 여자한테 벌써 복은 와 있었다. 잠깐 외출했다 들어오니 너란 남자가 말끔히 치워 놓았다.

너란 남자.

아내 아닌 다른 여자들한테 무척이나 친절한 남자다. 여자의 말에 토를 달지도 않지만, 반박하면 위신이 깎인다고 생각하는 남자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약속 시각에 늦어 본 적이 없다. 웬만해선 본심을 드러내는 적이 없어 가끔은 저 남자 속이 궁금하기도 했다.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드물었고, 나이가 들어도 아내한테 어찌나 쌀쌀한지 마음이 종종 시렸다.

어느 해 여름, 나는 욕실에서 나오다 미끄러졌다. 그 광경을 본 남편은 걱정보다는 실소를 쏟아냈다.

“마루에 금 안 갔어?” 하며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들것에 실려 가는 나를 보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당신, 걱정하지 말아요. 말은 할 수 있잖아.”

그 말인즉슨 입은 무사하니 의사 전달은 할 수 있고, 팔은 멀쩡하니 괜찮다는 건가. 거친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을 간신히 참고 나는 최대한 품위를 갖춰서 말했다.

“오늘 당신 약속 있다고 했잖아, 죽을병도 아닌데요.” 말은 그리했지만, 막상 들것에 누우니 눈가가 촉촉해져 왔다. 병원에서 수술해야 한다며 보호자를 찾았다. 나는 의사 선생님께 눈을 부릅뜨며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조금 전에 이혼해서 보호자가 없어요.”

수술을 마치고 나는 병실로 옮겨졌다.

“환자분! 눈 좀 떠보세요.”

마취가 덜 깬 상태에서 나는 아줌마는 누구냐고 물었다. 이 집 아저씨가 보낸 간병인이라고 했다. 남자는 저녁 느지막하게 지원군을 거느리고 등장했다. 호두과자를 들고 와서는 여자의 입에 넣었다. 이 달콤한 행동에 여자는 또 한 번 발등을 찍는다. <수필가 최연실>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 미국으로 이민 간 언니를 대신해서 시상식에 갔다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생활수필반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2018년 수필가로 등단했다.

- 2018년 수필과 비평 등단
- 한국 언론인 총 연대 편집기자
- 서울 서부지부 원석문학회 회원
- 제주 백록수필 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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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2022-05-08 16:42:12 | 221.***.***.74
무심한듯 사랑이 녹아있는 부부이야기, 요즘말로 그런 남편을 츤데레라 하던가요.
위트있는 글,
참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애독자2 2022-05-08 12:19:03 | 119.***.***.32
어느덧 애독자가 된 시민입니다. 소소한 일상속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무겁지않은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최 작가님의 글이 너무 좋습니다. 벌써 다음 글이 기대가 됩니다.

애독자 2022-05-06 23:26:15 | 112.***.***.220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나이들수록 부부밖에 없다던데 언젠가는 참고 견딘 보람이 있겠지요 호두과자가 먹고싶은 밤입니다

갱년기 2022-05-06 11:42:38 | 175.***.***.69
부부가 서로 대면대면하고 무덤덤해지는 나이에 맛갈나게 스며드는 첨 재미있는 글이네요. 저도 오늘부터 이혼 1일차 하려고 합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