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실의 알고 듣는 클래식](2)신년의 곡, 요한 스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상태바
[정은실의 알고 듣는 클래식](2)신년의 곡, 요한 스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왠지 2024년의 신년은 예년의 신년과 느낌이 많이 다르다. 마치 놓쳐버린 지난 4년을 보상이라도 받듯 시내 곳곳은 차량과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에 비해 공원이나 정원은 좀 한산한 편이지만 이 또한 지난 3~4년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활기가 돈다. 그동안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여러 모양으로 상처받고 찢기고 때로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로 움츠러들었다. 지인의 죽음을 경험했고, 자신이 죽음의 문턱까지 간 적도 있었다. 결국 본래의 궤도로 돌아오면서 비로소 그동안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고 그중에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삶과 죽음이 한 선상에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나온 4년이 앞으로 다가올 40년보다 더 길고 곤고한 날들을 지내면서 우리는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비로소 사람이 되어간다.

신년에 듣는 고전음악이 필히 희망적이어야 한다는 명제는 사실 좀 진부한 논리다. 언젠가 정명훈 지휘자는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신년 음악으로 들고나온 적도 있고 무겁고 어두운 말러의 교향곡이 신년음악으로 안 된다는 법도 없다. 그러나 2024년 새해만큼은 꼭 명랑하고 경쾌한 곡으로 시작하고 싶다. 그 의도는 그동안 모두가 힘들었는데 이젠 좀 쉬고 싶은 단순한 마음 한 가지다. 그래서 고른 곡이 요한 스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이다. 1세라고 굳이 붙인 이유는 그의 아들 요한 스트라우스 2세가 있기 때문에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다. 우리에게 봄의 소리 왈츠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등, '왈츠의 왕'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는 요한 스트라우스 2세다.

이 곡은 빈 필하모니의 신년음악회 때마다 연주되는 곡으로 '신년의 곡'으로 자리매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곡이다. 라데츠키는 나폴레옹 전쟁 시 활약했던 오스트리아 장군의 이름이다. 이 곡은 전쟁 시 아군(정부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작곡한 곡으로 처음 작곡되었을 당시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들어있었다. 따라서 애국적인 곡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히 행진곡의 차원을 넘어서 파티곡, 축하곡 등으로 연주되고 있는 경쾌한 곡이다. 이 곡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기립박수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고전음악 연주 시 전 악장이 모두 끝나야만 박수를 치고 그것도 점잖게 앉아서 치는 관례가 있는데 1848년 8월, 이 곡의 초연 시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가 크게 감명받아 기립박수를 쳤고 3번이나 앵콜을 받은 일화가 있는 곡이다. 따라서 지금도 이 곡을 연주할 때는 약간 코믹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악장 사이에서도 박수를 치고 또는 곡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는 곡이다. 이 정도로 자유스러운 분위기는 고전음악 연주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전체 3~4분에 해당하는 짧은 곡으로 곡의 구성은 행진곡답게 4분의 4박자로 금관악기가 주도하는 오케스트라가 주제 음을 연주하면서 시작된다. 중간 부분에 오면 현악기와 드럼이 멜로디를 연주한다. 미뉴엣이나 춤곡 등 바로크 시대부터 내려오면서 곡의 구성 중 a-b-a 또는 a-b-a-b-a의 구성에서 가운데 속하는 b 부분을 트리오라 호칭하는데 바로 이런 트리오 부분에서 다시 금관악기가 출현하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첫 부분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곡이다.

누구나 들으면 한 번쯤은 다 들어봤던 익숙한 음률의 곡으로 축 쳐진 어깨를 반짝 올려주는 묘약 같은 곡이다. 단순한 음률이므로 충분히 허밍으로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고 중간에는 왈츠풍의 음률도 섞여 있어서 한번쯤 곡에 맞춰 춤추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곡이 될 수 있다. 유난히 쇼맨쉽이 강한 지휘자는 일부러 청중의 가운데로 들어가서 청중들을 부추기고 박수를 끌어내는 묘미와 익살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박수도 연주의 하나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므로 사실은 청중과 오케스트라가 모두 어우러져 협연한다고 볼 수도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2024년, 경쾌한 마음으로 새해를, 그리고 하루를 시작해 보자. <정은실/ 칼럼니스트>

*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와 제휴를 맺고 있는 뉴욕일보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요한 스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요한 스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큐얄(QR)코드

정은실의 '알고 듣는' 클래식에서는 음악을 바로 들으실 수 있도록 큐알(QR)코드가 함께 게재됩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QR코드를 인식하고 화면에 나타나는 주소를 클릭하면 유튜브로 연결되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음악이 재생됩니다.

 

 

정은실 칼럼니스트
정은실 칼럼니스트

정은실 칼럼니스트는...

서울출생. 1986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감.

2005년 수필 '보통 사람의 삶'으로 문학저널 수필부문 등단.

2020년 단편소설 '사랑법 개론'으로 미주한국소설가협회 신인상수상

-저서:

2015년 1월 '뉴요커 정은실의 클래식과 에세이의 만남' 출간.

2019년 6월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산책' 출간

-컬럼: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클래식이 들리네' 컬럼 2년 게재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컬럼 1년 게재

'정은실의 테마가 있는 여행스케치' 컬럼2년 게재

'정은실의 스토리가 있는 고전음악감상' 게재 중

-현재:

퀸즈식물원 이사, 퀸즈 YWCA 강사, 미동부한인문인협회회원,미주한국소설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KALA 회원

뉴욕일보 고정 컬럼니스트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오솔길수니 2024-01-17 20:39:45 | 223.***.***.166
옆에서 얘기하듯 편안하게 일러주는 클래식야기,
친해지기 딱 좋은 글입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 알고 들어볼께요.
격조있는 글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