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실의 알고 듣는 클래식](1)​ 의학계의 계관시인 올리버 울프 색스가 좋아했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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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실의 알고 듣는 클래식](1)​ 의학계의 계관시인 올리버 울프 색스가 좋아했던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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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환상곡 F단조 OP 49

2023년이 지나고 갑진년의 새해가 밝아오면서 불현듯 지난 4년을 돌아보게 된다. 훗날 역사는 우리가 겪었던 팬데믹 기간을 어떤 형태로 기술할는지 모르나 굳이 색을 입히자면 왠지 투명한 색깔일 거라는 느낌이 든다. 이 세상에 오로지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는 존재, 그래서 내가 이 지구에서 사라지면 그 자리에 구멍이 생긴다고 했던 뇌과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Wolf Sacks)가 문득 떠오른 것도 팬데믹과 절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펜데믹 시기에 유명을 달리한 지인들, 바로 그 구멍의 자리도 투명할 테니까 말이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주위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달라졌다. 공통으로 크게 달라진 점은 너무 바쁘게 달려가듯 살지 말고 천천히 서행하듯 살자는 태도다. 그러다 보니 많은 직장에서 두 배의 오버타임 수당을 준다 해도 사람 구하기가 힘들고 재택근무에 익숙하다 보니 이젠 나와서 근무하라는 직장은 매력이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먼저 간 주위의 지인들을 상기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과연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걸 까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아마 올리버 색스의 Gratitude(감사, 또는 고맙습니다)를 다시 읽게 된 것도 이런 생각들이 계기가 되어서였을 것이다. 읽는 내내 누가 볼세라 몇 번이나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던 이 책은 올리버 색스의 삶 중 마지막 2년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에세이 4편을 엮은 책이다. 4편의 기고문 중에 유독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글귀는 '나의 생애'에 있는 문장들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 있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 살았다. 그것이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의 순간까지 결코 초월적이거나 초자연적인 무엇을 기대하기보다는 자기 내면의 평화를 갈구했던 뇌과학자는 살면서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느낄 때 비로소 명료한 의식 속에서 평온한 안식을 누린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올리버 색스는 좋은 기억, 나쁜 기억도 있지만 대부분 감사했고 죽음이 가까워져 올수록 두렵기는 해도 사랑했고 사랑받았고 많은 것을 받았기에 감사한다고 말한다. 어떤 열정이든지 극단적으로 무절제하게 평생 소년의 열정으로 무던히도 바쁘게 살았던 82세의 뇌과학자는 아이러니칼하게도 인생에서 시간을 낭비한 점을 가장 큰 아쉬움으로 꼽는다. 그리고 세상과의 계산을 제대로 청산할 때 미련도 없고 조금의 아쉬움도 없이 약간의 두려움만 남는다면 가장 족하다고 말한다.

평생 고전음악 광이었던 그가 즐겨 들은 곡이 있다. 쇼팽의 환상곡 F단조가 그 곡으로 루빈스타인의 연주를 즐겨들었다고 한다. 쇼팽은 일생 '환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곡을 3곡 작곡했다. 즉흥환상곡,환상폴로네이즈그리고 환상곡 이렇게 3곡 중에서 오롯이 환상곡의 의미로만 작곡한 곡은 F단조 환상곡뿐이다. 특히 이 곡은 쇼팽이 조르즈 상드와 함께 기거하면서 작곡한 유일한 환상곡이며 곡 전체에 흐르는 순수한 아름다움과 신비스러움이 감도는 곡이다.

환상곡은 고전주의나 바로크 시대에는 많이 볼 수 없었던 곡의 형태로 주로 낭만주의로 오면서 모음곡, 즉흥곡 등과 함께 환상곡이 선보이기 시작했다. 약 12분 정도의 쇼팽의 환상곡은 교향곡이나 협주곡에서 보이는 악장의 뚜렷한 구분 없이 서주부터 약간 무거움으로 전개된다. 얼핏 생각하면 음 하나하나가 베토벤이나 쇼팽의 장송행진곡을 연상하게도 한다. 서주의 뒷부분에 가서는 환상풍으로 바뀌고 중간의 발전부에는 아예 새로운 주제를 선보임으로써 곡 전체의 분위기를 환기한다. 재현부에는 모든 주제가 다시 한번 나오면서 마지막의 코다에는 서로가 불평을 호소하다가 마침내 화해하는 분위기로 평화롭고 유려하게 끝을 맺는다. 일설에 의하면 쇼팽이 조르즈 상드와 다투고 화해한 후에 작곡한 것이라고도 하니 그 분위기가 이 곡과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2015년에 영면한 뇌과학자 올리버 색스가 왜 이 곡을 그토록 좋아했는지 수없이 들으면서 곰곰 생각해 봤다. 서주에서처럼 죽음이 내 방문을 노크했을 때의 심정과 약간의 두려움과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이제 할 일을 다 마치고 평온한 마음으로 안식에 드는 한 인간을 상기하게 된다. 마치 전장에서 전쟁을 끝내고 본향으로 돌아가는 노장군의 모습처럼. <정은실/ 칼럼니스트>

*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와 제휴를 맺고 있는 뉴욕일보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쇼팽의 환상곡 F단조 Op49
쇼팽의 환상곡 F단조 O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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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실 칼럼니스트 ⓒ헤드라인제주
정은실 칼럼니스트 ⓒ헤드라인제주

정은실 칼럼니스트는...

서울출생. 1986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감.

2005년 수필 '보통 사람의 삶'으로 문학저널 수필부문 등단.

2020년 단편소설 '사랑법 개론'으로 미주한국소설가협회 신인상수상

-저서:

2015년 1월 '뉴요커 정은실의 클래식과 에세이의 만남' 출간.

2019년 6월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산책' 출간

-컬럼: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클래식이 들리네' 컬럼 2년 게재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컬럼 1년 게재

'정은실의 테마가 있는 여행스케치' 컬럼2년 게재

'정은실의 스토리가 있는 고전음악감상' 게재 중

-현재:

퀸즈식물원 이사, 퀸즈 YWCA 강사, 미동부한인문인협회회원,미주한국소설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KALA 회원

뉴욕일보 고정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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