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의 대표시인 T.S 엘리옷은 434줄 되는 그의 장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서두에 던졌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이 부분을 왜곡되게 패러디 한 경우도 있고 끝까지 읽지 않고 4월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도 있다. 그러나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고 추억과 욕정이 뒤섞이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우는 4월은 결코 잔인하지 않다. 오히려 일년 중 4월 만큼 역동적인 생명력이 느껴지는 달도 드물 것이다.
역동적인 계절 4월에 듣고 싶은 고전음악은 필히 사랑과 관련된 곡이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는 곡이면 더 좋을 것이다. ‘피아노의 왕’이라는 닉네임이 붙은 프란츠 리스트는 헝가리 출신으로 ‘피아노의 시인’ 쇼팽과 함께 파리의 사교계를 휘어잡았던 사람이다. 특히 리스트는 쇼팽과는 달리 남성적인 그의 기질로 인해 뭇여성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최고의 테크닉을 과시하며 청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곡이 ‘사랑의 꿈’이다.
화려한 기교와 테크닉을 요하는 리스트의 곡들은 피아니스트에게 도전의 관문이기도 하고 그의 곡을 듣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감미로울 수 없는 최상의 피아노곡이다. 1850년에 리스트가 작곡한 사랑의 꿈은 3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1번은 ‘고귀한 사랑’, 2번은 ‘가장 행복한 죽음’ 그리고 마지막 3번은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이다. 여기서 마지막 세번째의 제목은 독일의 시인 프라일리그리트(Ferdinand Freiligrath.)의 시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에서 가져왔다.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할 수 있는 한, 오 사랑하라 그대가 사랑하고 싶은 한, 시간이 오리라 그대가 무덤가에 서서 슬퍼할 시간이 찾아오리라…”로 시작되는 그의 시에서 리스트는 언젠가 우리는 죽어야 하는 존재이므로 현재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고 말한다. 라틴어의 두 구절,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도 일맥상통하는 음악이다.
리스트의 여성편력은 익히 알려진 바이지만 여성 뿐 아니라 그는 무대 매너가 뛰어난 연주가로 관객을 사로 잡는 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때 그의 연주회에 몰려 든 팬들을 보고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리스토메니아(Lisztomania)’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리스트에게는 십대에 만난 풋사랑까지 치면 그의 일생동안 모두3명의 사랑하는 여인이 등장한다. 그의 나이 20대 초에 만난 마리다구 백작부인과는 동거의 관계로 3명의 아이를 낳았고 그 중의 둘째 딸이 바그너의 부인인 코지마 리스트다. 그의 나이 삼십대 중반에 만난 마지막 여인 캐롤라인 비트켄슈타인은 그의 음악세계를 완전히 바꿔 놓았고 처음으로 리스트에게 결혼하고 싶은 마음을 불어 넣어준 여인이다. 끝내 둘 사이는 사회적 장벽과 법적인 문제로 결혼에 성공하지 못하고 리스트는 사제의 길로, 캐롤라인은 수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특히 사랑의 꿈은 세번째 여인, 캐롤라인과의 사랑이 익어갈 무렵 작곡한 곡이라 감미롭고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한, 즉 죽기까지 사랑한 둘 사이의 곡이라 더욱 애잔한 감미로움이 더해 지는 곡이다. 마침내 리스트가 폐염으로 생을 달리하고 이 소식을 들은 캐롤라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모든 재산을 리스트에세 드린다는 유서의 끝에는 ‘캐롤라인 리스트’라고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표기해 놓았다.
4월이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고 싶은 계절에 단 하루를 살아도 죽기까지 사랑하며 살았던 리스트의 삶을 되돌아보며 사랑의 꿈을 들어보자.
-리스트의 곡에는 곡 뒤에 작품번호를 나타내는 Op대신에 S자가 붙어 있는데 이는 영국 작곡가이자 왕립음악대학 교수인 설(Humphrey Searle)이 정리했기 때문에 그의 이니셜을 따서 붙였다. <정은실/ 칼럼니스트>
*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와 제휴를 맺은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뉴욕일보>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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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실 칼럼니스트는...
서울출생. 1986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감.
2005년 수필 '보통 사람의 삶'으로 문학저널 수필부문 등단.
2020년 단편소설 '사랑법 개론'으로 미주한국소설가협회 신인상수상
-저서:
2015년 1월 '뉴요커 정은실의 클래식과 에세이의 만남' 출간.
2019년 6월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산책' 출간
-컬럼: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클래식이 들리네' 컬럼 2년 게재
뉴욕일보에 '정은실의 영화 속 클래식' 컬럼 1년 게재
'정은실의 테마가 있는 여행스케치' 컬럼2년 게재
'정은실의 스토리가 있는 고전음악감상' 게재 중
퀸즈식물원 이사, 퀸즈 YWCA 강사, 미동부한인문인협회회원,미주한국소설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KALA 회원
뉴욕일보 고정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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