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의 제주감귤 이야기] "감귤산업의 도약, 원예인으로 인격화가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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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의 제주감귤 이야기] "감귤산업의 도약, 원예인으로 인격화가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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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전 제주감귤농협조합장 ⓒ헤드라인제주
김용호 전 제주감귤농협조합장 ⓒ헤드라인제주

후진성이 높은 제주감귤산업은 선진국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터라,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온주밀감을 재배 방식으로 여러 가지 품종을 재배한 들, 품종 도입초기에는 희소성의 가치로 소득이 높았다. 그렇지만 생산량이 많아지면서 가격이 폭락한다. 그래서 계속 품종갱신이 이루어져도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어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한 상태에 있다..

썩는 시대를 살리려면 흐르게 하는 수밖에 없다. 시대가 흐른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새 시대에 맞는 어젠다를 설정하고 다수의 세력이 그 어젠다를 중심으로 모여 책임감을 가지고 끌고 간다는 것이다. 감귤은 원예園藝 분야로 예술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방향을 제시하고, 컨설턴트는 물론 농업인들을 계도하여 일거에 園藝人으로 人格化 시킨다면 디지털 시대정신에 부합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차원에서 생각한 바를 전개시키고자 한다.

후진국에서는 일어나는 일상이다. 습관이나 감을 넘어 지적으로 보자. 해방부터 지금까지 이미 나 있는 길을 남 보다 덜 자고 덜 먹으면서 부지런히 걸어왔다. 선례와 모델을 목숨처럼 섬기며 몰두했다. 훈고의 삶이었고, 훈고는 질문보다 대답을 하게 한다. 대답은 이미 있는 지식과 이론을 먹었다가 누가 요구할 때 뱉어내는 일이다. 이때 승부는 누가 더 빨리, 더 많이, 원형 그대로 뱉어 내는가가 가른다.

여기서 핵심은 원형에 있다. 대답에 빠지면, 원형만을 중시한다. 그러면 애석하게도 지식의 활동은 정지하고, 모든 논의가 과거의 틀을 넘지 못하였다. 지식을 원형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우고 있는 사람은 모든 논의를 진위 논쟁으로 끌고 가버렸다. 우리 사회가 왜 그리 과거에만 집착하면서 진위논쟁에 빠져 허우적거렸는지 알 수 있다. 대답, 원형, 진위에 대한 갈구로는 과거를 지킬 수 있을 뿐이다. 시대적 운명이었던 것이다.

대답에 익숙한 사람은 대답이 가능한 정도의 사람으로 고정된다. 질문을 시도하는 사람은 질문이 제공하는 수준으로 상승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결국 사람이 관건이다. 리더가 되겠다고 나서는 분들이 나이와 경력에 관계없이 모두 시대의식을 찾으려는 질문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내뱉는 대답에만 익숙한 정치 기능인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람이라는 각도에서 보았을 때, 그들은 모두 구태의연하다. 아직 과거에 잡혀 있다

얼마간 유효했더라도 지루하고 비효율적인 훈고의 역사에서 벗어나려면 지성을 질문으로 하는 힘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그래서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질문은 자신만의 고유한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원형을 뒤틀려는 시도다. 미래는 원형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여 창백한 진위논쟁으로부터 이탈하면서 비로소 열린다.

선진국은 사람이 다르다. 미래를 보려는 사람은 지켜야할 이념에 빠지지 않고, 사회전체에 이익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부단히 질문한다. 이 질문은 마침내 우리 시대가 나아가야할 비전을 건설하는 일에 닿을 것이다. 질문은 우리를 꿈꾸게 하고 정해진 모든 것들을 비틀어 미래를 향하게 한다. 도전적인 질문은 우리에게 선도적이고 전략적인 역량을 갖게 할 것이다.

제주감귤은 선진국 정도가 되어야 없는 길을 여는 일, 즉 창의적인 일, 즉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서 새로운 길을 열기 때문에 아직 드러나지 않는 길에 대한 상상이나 모험을 발휘할 수 있다. 새로운 길에 대한 상상이나 모험이 일어나는 단계는 감각의 차원을 넘어서는 매우 승화된 지경이다. 이 지경을 둘러싸고서야 비로소 참된 맥락에서 말하는 의미도 있고, 가치도 있고 위안도 있다. 그래서 인문학이 유행하는 오늘의 현상을 제주감귤산업의 더 나은 단계로 상승하고자 하는 염원을 내뿜는 일이다.

우리가 유학을 하는 경우에도 대부분 선진국에 간다. 흔히 철학이나 인문학을 정신적 영역에 가까운 것으로 놓고,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는 어떤 활동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 자극을 줄 수 있는 현상이다. 즉 철학 선진국이 바로 군사적·물질적 선진국인 것이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철학을 가지 고 있다. 철학이란 생각의 최고 정점이이다. 생각이 없는 지식인에 의해 감귤 경영을 하는 나라는 없다.

우리는 왜 교양과정을 공부해야 하는가. 교양인이 되기 위해서다. 교양인이 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교양인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서 자신의 삶 자체를 예술적 단계로 승화시키기 위해서이다. 삶을 완성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양인은 어떤 사람인가. 교양을 갖춘 사람이고, 자신이 갖춘 교양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교양이란무엇인가?

교양은 보통 Liberal Arts라고 부르기도 한다. 기원전 5세기 중엽에 나타난 소피스들이 젊은이들을 폴리스(도시국가)의 리더로 키위기 위해서 행하던 교육과정이다. 리더란 자유민으로 불리는 능동적 시민을 말한다. 피지배 계급으로서 자유가 없던 수동적인 노예들을 선도하고 끌고 나아가던 지배계급이다. 자유민들이 지시하고 노예들은 수행한다. 자유민들이 방향을 정해서 보여주면, 노예들은 그 방향을 향해 나간다. 자유민들은 이끌고, 노예는 따라간다.

교양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잉태되어 자유민으로서 능동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고안된 교육 장치였던 것이다. 교양은 주로 얼마나 많은 사실을 아는가 하는 것 보다는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이 방향성과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진다. 이처럼 교양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자유민이 자유민으로서 활동을 하는 데에 필요한 내용으로 되어 있어서, 세계를 지배하고, 이끄는 일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이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부라는 것은 직업을 찾는 일에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과 관련되지만, 교양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공부를 하는 목적은 바로 그런 지식들을 기반으로 하여 삶과 세계의 방향을 결정하고 이끌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하려는 것이다. 지배적인 시선과 활동력을 갖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말로 바꾸어도 된다.

노예와 같은 수동적인 지식으로 채워서 살 것인가. 아니면 한 단계 상승하여 오히려 지식을 지배하고 관리하며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것인가가 여기서 갈린다. 교양인은 바로 여기에 처한다. 그 나라 산업이 다른 나라를 선도하는 입장에서면 선도하는 역량을 발휘하는 데에 필요한 교양과목이나 내용이 중시된다. 그 나라 산업이 다른 나라를 따라가는 입장에 있으면 따라가는 일을 잘 할 수 있게 해주는 전공과목이 중시된다.

따라가는 수준에 있는 사회에서 교양은 실제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대접을 받지 못할뿐더러, 감각적인 정도 차원에서 위로와 쾌락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취급되거나 개인적인 삶의 향유를 제공해 주는 것 정도로 취급되기 쉽다. 인문학은 다른 분과 학문과는 매우 다르다. 기본적으로 인문학은 그 학문을 채우고 있는 내용으로 규정되거나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유의 높이로 자신의 존재성을 드러낸다.

즉 인문학의 목적은 인문적인 높이에서 사유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완성된다. 다른 분과 학문들도 이해가 심화 되면 심화될수록 그 학문이 제공하는 학문의 내용을 넘어서서 인문적인 빛을 보여주는 단계로 상승한다. 즉, 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생산하거나 문학적인 감동으로 인간의 의미와 가치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학문 자체의 의미를 보여주는 철학적인 질문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발생한다.

즉 우리가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길은 논쟁이나 인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세계 안에서 자신의 주인으로 서 있어야 함을 아는데서 출발한다는 의미다. 인식은 항상 자신을 대상과 분리시킨다. 이 분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비판과 지적과 한탄을 한 후, 할 일을 다 한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자신이 자신의 주인으로 존재하고 있으면 지적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변화한다. 외부를 향해서 자기가 한 비판이 자기에게도 적용될 수 있게 할 수 있는 자, 성공기억에 갇히지 않고, 실패한 경험은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는 사람이다. 교양은 얼마나 많은 사실을 아는가 하는 것 보다는 어떻게 생각을 해야 하는가와 같이 방향성과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진다.

원예인으로 인격화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작동시키자. 그러면 모두가 제주감귤의 현 주소를 알게 될 것이고, 문제가 보이고, 어떻게 하면 해결될 것인가 또는 방향을 트는 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감귤산업은 저절로 굴러 갈 것이다. <김용호 전 제주감귤농협 조합장>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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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 2023-07-17 12:02:37 | 1.***.***.37
무슨 말 하는지 잘 안 읽혐수다
박사님이 문제꽈 제가 문제꽈??

돌하루 2023-07-14 19:33:04 | 112.***.***.108
어이
짐박사가
머라카는지
도대체 몬알아묵겠다.
나대가리가
닥대가리라서그런가
에이 퉤

늘친규 2023-07-07 14:05:41 | 223.***.***.200
첫 문장부터 비문이라 읽을 가치가 없는 글이다.
인문학을 말하나 인문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원예인의 인격화....ㅋㅋㅋ 웃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