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는 철학적 시선 높이에서 대응해야
상태바
지구온난화는 철학적 시선 높이에서 대응해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용호의 제주감귤 이야기] 기후온난화와 제주감귤 품질관리
김용호 전 제주감귤농협조합장 ⓒ헤드라인제주
김용호 전 제주감귤농협조합장 ⓒ헤드라인제주

8월 여름 날씨가 한 달 이상 앞당겨진 느낌이다. 6월말에 초열대야가 발생하여 7월에도 이어짐으로 인해 과거와는 달리 장마가 심하지 않았음에도 제주시 지역에 2차 낙과가 심했다, 특히 수세가 약한 감귤원에서 그렇다고 하니 수세가 약해지면 이상 저온이나 고온 환경에서는 감귤 나무는 열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열매가 없는 나무는 과거의 공과가 어떻든 언제 잘릴지 모르는 형국에 처하고 있다. 한 때 그렇게 각광을 받던 하우스 밀감도 고온다습한 환경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이 경험에 의존하다 보니 열매가 커지고 산이 낮아져 당이 증가되지 않는 현실이다.

수량이 많을지는 모르지만 품질이 낮아져 받고 싶은 가격이 아니라 그 이하로 거래되고 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노지밀감은 화아분화가 안되거나 꽃이 피어 열매가 달려도 떨어져 버리고. 하우스 감귤은 잘 달려도 상품가치가 없는 열매가 되어 버리는 상황인데도 왜 이와 같은 사태가 발생했는지에 대해 면밀히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인재는 없고,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경험에 의존한 과거지식으로 해결하려고만 하니 앞길을 예측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코로나나 감기도 원기왕성한 사람에게는 그냥 스쳐갈지는 모르지만 기저질환과 같은 병이 있는 심신 쇠약 자에게는 치명적이다. 감귤나무도 수세가 쇠약하면 열매가 달리지 않아도 문제, 왕성하여 달려도 품질이 낮아 팔리지 않아도 문제이다. 게다가 옛정을 생각해서 간벌도 하지 않은 감귤원도 수두룩한데 가치가 떨어졌다고 해서 맨 정신으로 이들을 베어내기란 쉽지 않다. 감귤산업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웠다고 하더라도 세계는 변하고 있어 고정된 과녁을 겨냥한 계획이 아니라 유동하는 과녁을 겨냥한 기술이 갖춰진 계획이 되어야한다. 세계는 변하면서도 전체성을 갖추고 있어서 유동적 전체성을 관찰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전술적으로 움직이는 과녁을 향해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 될 수 있다.

현재의 계획은 한계를 지닌 계획일 뿐 전략을 마련하는데 참고할 정도가 될지도 의문이다. 감귤산업의 전략을 마련하는데도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마련된다고 해도 시행되고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 소요된다. 따라서 그 10여 년간에는 농업인을 비롯한 관계자는 응급처치에 필요한 지식을 추려내고, 각자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높이에서 사유하는 철학적 시선을 갖추려고 몸부림 쳐야 할 것이다. 철학적 시선을 갖는다는 것은 나와 세상을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인 철학적 시각에서 본다는 뜻이다. 철학적인 높이의 시선이야 말로 나와 감귤세계를 한 단계 더 상승시킬 수 있다. 무엇이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안목의 높이만큼만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선진국은 각각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철학적인 높이의 사유능력을 가지고 있다. 통상 우리는 어떤 하나의 철학이 가지고 있는 이론 체계나 내용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만 묻고 따지는데 더욱 중요한 것은 내용이 각기 다르더라도 그런 내용을 산출하는 철학적인 높이의 시선을 가지고 있느냐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철학적 차원에서 사유한다는 말은 다른 방식으로 비유하면, 전략적 차원에서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한층 더 높은 곳에서 내려 본다는 뜻이다. 그렇지 못하면 그들의 움직임에 종속적으로 반응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지금과는 전혀 다르면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그 시선이 인문적 시선이고 철학적 시선이고 문화적 시선이며 예술적 시선이다.

이 높이에서는 기능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 도전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춰져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 차원의 시선을 우리의 것으로 가져야만 따라 하기에서 선도하기로 바뀌고, 훈고의 습관이 창의의 기풍으로 바뀔 수 있다. 동양에 철학이 들어온 것은 아편(opium)전쟁이 시작되면서 부터다. 1840년에 발발한 아편전쟁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완전한 승리, 서양에 의한 동양의 완전한 패배를 의미한다. 아편전쟁을 계기로 서양과 동아시아 사이는 힘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다. 아편전쟁이 끝나자마자 중국에서는 오랑캐들의 좋은 기술을 배워서 오랑캐들을 제압하자는 사이장기이제이 師夷長技以制夷 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서양을 배우기 시작했다. 중국인들 입장에서 왜 서양에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장 구체적으로 대포와 군함이 떠올랐다.

대포와 군함에 당했으니까 이를 가져야 되겠다고 싶어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을 따라 잡으려는 양무운동洋務運動이 30년간 진행되었다. 일본도 페리제독에 의해 강제 개항을 단행한 후 철저히 서양을 배우는 길로 들어섰다. 양무운동을 주도하여 북양함대를 재건하였지만 1894년 발발한 청일전쟁의 패배로 여지없이 무너진다. 양무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 철저하고 근본적인 개혁을 시도한다. 서양의 힘이 과학기술 문명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들은 과학기술 문명을 가능하게 해주는 더 큰 힘이 제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1898년부터 변법자강운동變法自彊運動을 일으킨다. 변법이라는 것은 제도개혁을 말한다. 변법유신개혁이 시행되면서 과거시험이 폐지되고 학교가 설립되었다.

이로써 중국인들은 과학기술도 중요하지만 그 배후에서 강한 힘을 발휘하는 정치개혁이나 제도 개혁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할 정도로 사유의 높이를 상승시켰다. 중국에는 정치제도 너머에 있을 더 근원적인 힘을 찾아 나선다. 그렇다면 더욱 큰 힘은 무엇이겠는가? 중국인들은 그 것을 문화, 사상, 철학으로 보았다. 그래서 이때부터 신문화, 신사상, 신철학 운동을 일으킨다. 새로운 문화, 새로운 사상, 새로운 철학을 가져야만 건강한 정치제도가 가능하고, 이 강한 정치제도가 가능해야만 과학기술문명이 발전하게 된다고 인식한 것이다. 이에 모두가 정치개혁도 지엽적인 것이며 배후에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단순히 정치제도의 채용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면, 반드시 근본 기반을 바꿔야 하는 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윤리사상-인생철학이다.

각종 개혁이 통용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윤리사상에 있음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이 근본을 개혁하지 않으면 모든 개혁도 효과가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사상의 개혁·문화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당시 중국인들이 표현한 윤리, 사상 그리고 문화라는 표현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바로 철학이다. 부국강병의 근저에 문화가 있다는 것, 사상이 있다는 것, 철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중국인들은 가장 높은 곳에 문화가 있고, 사상이 있고 철학이 있다는 것을 역사적인 경험과 극복과정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철학이라는 용어는 중국이 아닌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고, 철학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학문자체가 없었다. 1874년에 니시야마네가 철학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이미 일본은 철학의 생산단계에 들어갔다. 철학의 생산은 곧 사유의 독립을 의미한다, 일본은 1919년대와 20년대 사이에 큰 성과를 냈다 사유의 정점인 철학에서부터 이미 일본을 쫓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안게 되었다. 철학적인 시선은 분명 세상을 바꾸는 힘을 제공한다. 세상 속의 잡다한 변화를 마치 수학자가 수를 가지고 압축해서 포착해버리 듯 철학자는 관념으로 압축해서 다룬다. 이것은 매우 높은 지성적 활동이기 때문에 거대한 세계의 변화를 감지하여 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거나 새로운 방향을 생산한다. 세상에 다른 흐름을 제공하기도 하고 세상을 새로운 방향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철학은 이처럼 세계를 바꾼다. 아니면 철학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철학적 시선이 가장 앞서 포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든, 아니면 세상의 변화를 높은 차원에서 먼저 인지하든, 철학은 적어도 우리에게 세계의 변화 자체를 인지시키고, 거기에 반응하도록 하는 힘을 갖게 한다. 그래서 철학적인 시선은 새로운 세계를 여는 도전이다. 철학적인 삶은 분명 또 하나의 세계를 생성한다. 판 자체를 보기 때문이다.

새판을 짜야하는 시대임에도 우물 주물 하다가 시기를 놓쳐 유동적 세계의 변화에 주도적으로 동참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세계로 전락하고 새판을 짜기는커녕 능력이 떨어져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스스로 생산할 수 없는 지경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판 자체에 대해서 사유하지 않기 때문에 새 판짜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기존의 판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 전략의 부재 시대에 철학적 시선의 높이에서 감귤 세계의 흐름을 관조하려고 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는 자세를 갖추려고 노력해야한다. <김용호 전 제주감귤농협조합장>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