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고적 기풍으로 쌓은 부와 감귤산업, 새로운 추동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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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고적 기풍으로 쌓은 부와 감귤산업, 새로운 추동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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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의 제주감귤 이야기] 기후변화의 대응전략은 탁월함의 여부
김용호 전 제주감귤농협조합장 ⓒ헤드라인제주
김용호 전 제주감귤농협조합장 ⓒ헤드라인제주

폭염도 열대야도 최장 기간을 기록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자란 감귤나무는 왕성하게 자라는데, 쇠약한 나무는 열매가 맺지 않거나, 깨어져 열과 되는 현상이 심하다. 생리장해가 발생되는 감귤원의 토양을 파서 뿌리 생육상을 관찰해보면, 잔뿌리가 없거나, 아니면 밀식되어 자람 새가 웃자라든지 열매가 수직으로 매달려 있다.

뿌리손상이 매우 심한 나무는 노지는 물론 하우스에서도 꽃이 매치지 않고, 뿌리 량의 50~60% 손상된 나무에서는 백화기 또는 1차 생리낙과 전에 낙화되거나 낙과되었다. 20~30% 손상된 나무에서는 2차 생리낙과기에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될 적에 수세가 약해 영양분을 생성하거나, 토양에서 흡수하지 못해 체내 영양분이 호흡작용에 의해 소모되어, 열매에 공급될 영양분 부족으로 낙과가 심하였다.

수세가 약한 나무에서는 온주밀감이나 레드향에서 낙과가 심하였다. 낙과원인이 발아기에서 개화기 까지 이상저온에 의한 장해도 있었지만 제초제 살포로 뿌리가 손상되었음에도 이를 모르고 있다는 게 문제이다. 그저 대책이라고는 아침저녁으로 소량 관수를 해주는 것뿐이다. 감귤에 관한 새로운 정보라면 수집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다른 사람이 이야기 하면 따라 하려고 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다. 따라 하기 농사가 제주감귤의 발전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감귤뿐만 아니라 밭작물 농사에서도 다른 사람이 해놓은 생각의 결과들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꾸려왔다.

다른 사람이 해놓은 생각의 결과들을 수용하고 해석하는 것으로 자기 삶을 꾸리고, 세계를 운용하는 것을 훈고訓誥라고 한다. 훈고적 삶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껏 남의 것을 열심히 추종해서 모방하는 것으로 삶의 대부분을 채웠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하다 보니 생각의 결과들도 따라서 한 것들로 남았다.

감귤 산업도 전반적으로 따라 하기로 되어있다. 따라 하기를 잘해서 이른바 재빠른 추격자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추격자의 역할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그 역할을 잘해서 제주 경제의 버팀목이 되었다. 그렇지만 따라 하기만 하다 보니 감귤에 온갖 문제점이 발생해도 그 문제점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지식이 박약하다는 것이다.

품종육성도 흐지부지하고 기술개발도 안 된 상태에서 가르치고 배우다 보니 수많은 품종이 도입되었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못할 정도의 수준이다. 따라 하기가 극치에 이르다 보니 착화문제, 열과 문제가 대두되어 품종갱신이 연례행사가 되었다. 문제는 따라 하기로 큰 발전을 이루고 난 다음이다. 지금부터가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 하기로 효율성을 더 이상 높일 수는 없고, 그만큼 이익 창출이 어려워 졌다. 게다가 지구온난화로 인해 아열대화가 가속되어 전통적 관습에 젖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당황스럽다. 이제는 우리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우리가 가는 길을 한 두 단계 더 높일 수밖에 없다. 중진국까지 끌고 온 급속한 경제발전을 바탕으로 삼아 선도적이고 선진적인 단계로 상승하지 않으면 우리는 생존을 위협받는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다.

훈고적 기풍으로 쌓은 부와 감귤산업을 한 단계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사회를 창의적 기풍이 작동하도록 추동시켜야 한다. 쉽게 말해서 생각의 주도권을 발휘해야한다. 훈고의 기풍은 대개 다른 사람이 만든 이론을 그대로 따라 배우거나, 자기 삶의 근거를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지식체계나 이념 세계에서 찾게 한다.

내 고유한 생각으로 내 삶을 꾸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미 해놓은 생각의 결과로 내 삶을 꾸린다. 이미 있는 것을 습득하여 확대 심화시키는 일에만 열중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것을 믿고 수용하는 데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탁상공론만을 일삼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지적으로 게으르기 때문이다. 따라 하기는 쉽고 편하지만, 주도적으로 생각하는 일은 어렵고 힘들다. 이렇게 따라 하기를 하면 최초의 사람이 겪었던 고뇌와 숙고와 불안을 겪지 않을 수 있다. 매우 편하고 안전하다. 편안하고 안전한 느낌이 너무 크기 때문에 따라하면서 느끼는 쪽팔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스스로도 '쪽팔림' 정도를 모르게 된다. 쪽팔림이 사라지면서 너도 나도 창피해 하지 않고 따라 하기에 동참한다. 염치를 모르는 사회가 되어버린다. 결국은 여기나 저기나 모두 아무 개성도 없고 차이도 없는 천편일률적인 전부를 따라하는 습관에 젖는다. 따라 하기가 주는 편안함과 안전함이 쪽팔림 마저도 느낄 수 없게 만들고, 결국 모두가 어떤 차별성도 없이 몰개성화 되면서 공멸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수용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창의의 기풍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야 더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주도적일 수 있다.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일은 이 편안함과 안전함에 빠지지 않고, 다가오는 불안과 고뇌를 감당하며 풀릴 길이 보이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계속 파고들어야 한다.

이것이 지적인 부지런함이다. 대답에만 빠지는 일도 지적으로 게으르기 때문이다. 이미 품고 있는 지식과 이론을 요구에 따라 그냥 뱉어 내기만 하는 일은 편하다. 새로 등장하는 조짐이나 신호에 대해서 좋다 나쁘다로 즉각 반응하는 일도 지적으로 게으르기 때문이다.

좋다거나 나쁘다 라는 판단은 이미 내면화된 가치관을 근거로 해서 거기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만 따진다. 이때 숙고가 필요하지 않다. 이미 있는 가치관이 등장하여 즉각적인 판단을 해주기 때문에 편리하다.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은 편한 길을 애써 피하고, 그 조짐의 의미와 방향에 대해서 부단히 숙고한다.

그렇기에 힘들고 불안하다. 창의적 결과나 독립적 활동은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지적인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질문을 발휘하는 능력이 점점 퇴화되어 궁금증과 호기심도 점차 줄어든다. 하지만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은 불편함을 이겨내고 질문을 생산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기 때문에 궁금증과 호기심이 살아있다.

지적인 편안함에 빠져들면 들수록 인간은 급격이 늙어간다. 반면 궁금증과 호기심이 살아 있다면, 그는 결코 늙은 사람이 아니다. 이 영토에서 저 영토로 넘어 가려는 시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그 사람을 다른 세계로 건너가게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토양관리, 전정, 열매 매달기, 온·습도 관리 등 온갖 영농활동이 나무의 자람 새라든가 해거리, 품질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이러한 영농활동이 결과에 미치는 상호관계를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차원에서라야 기능에서 기술의 시대에 진입할 수가 있다. 점차적으로 해거리를 경감시키고 고당도의 감귤을 생산하려고 보다 세세하게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영농활동과 그 결과와의 상호관계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까지 확대해서 해석 할 수 있을 적에 통변通變의 폭을 확대한다고 한다. 통변의 폭의 확대되고, 그에 걸맞은 해결책이 제시되어,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적용되는 조치를 변통變通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을 적에야 비로소 영농활동이 문화 활동으로 상승된다.

이 세계에서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게 하는 것은 생각의 힘이다. 새로운 지식을 넓히려면 꿈을 꾸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사유를 하려면 꿈을 꾸게 하는 것이 관건인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하는 습관이 배어야 된다. 질문이 왜 중요한지. 질문이라는 것은 내면에 있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발동되어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궁굼증과 호기심은 자기한테만 있는 것이다. 사람은 질문할 때만 자기로 존재한다. 저 영토는 내가 가 본적이 없고 설명할 수 있는 문법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저 영토의 꿈을 이 영토에서 해석되는 지식으로는 견적을 만들어 낼 수 없다, 해석이 안 되고 불가능한 게 꿈이다. 꿈을 꾸면서 가능성을 묻는 다랄지 효과부터 묻는다면 그 것은 꿈이 아니고 그냥 하나의 좋은 계획에 불과하다.

탁월함은 지식이나 개념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 즉 세계의 흐름에 참여하는 것이다, 지성적 반성력이 없으면 극단화될 수도 있다. 변화는 이 틀에서 저 틀로 넘어가는 일이다. 현재의 틀은 나에게 익숙한 개념과 문법으로 모두 번역되기 때문에 매우 선명하고 분명하다.

아직 오지 않은 세계 혹은 열리지 않은 세계는 익숙한 개념과 문법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지금 이 틀 안에 있는 사람에게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틀은 아직 암흑이거나 오리무중이다. 인간이든 조직이든 국가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시선 높이 이상으로는 살 수 없다.

자기의 삶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시선의 높이에 의해 완전히 제어된다. 탁월함이란 가장 높은 것, 가장 좋은 것을 말하는데 문화적, 예술적, 철학적, 인문적이라는 뜻이다. 경험해 보지도 못한 기후변화시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기존 경험, 축적된 지식, 책상에서 사로잡힌 따라 하기가 중심이 된 탁상공론에서 벗어나 산업현장에서 펼쳐지고, 감귤세계를 변화시켜 그 현상이 드러나는 탁월함이 발휘되는 시대로 넘어가기 위해 우리 모두 동참하자.

탁월한 시선은 탁월한 높이의 삶이라는 뜻이다. 탁월한 높이의 삶을 살아보자. 우리도 한 번 선도력을 가져보자. 지금 보다도 좀 더 독립적이고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 보자. 전술적인 삶을 넘어서 전략적인 삶을 살아보자 내가 보다 더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 보자.

과거의 지식으로 몸부림치던 탁상공론에서 벗어나, 온난화에 의해 새로이 펼쳐지는 아열대의 세계에서 제주감귤산업이 글로벌화가 되었다는 것을 드러나기 위해 탁월함을 발휘하여 지혜를 펼치는 농업인이 되자. 지식을 지혜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덕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 때로는 덕을 키우기 위해 인문강좌나 독서를 하면서 인격적 수양을 하자. <김용호 전 제주감귤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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