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감귤이 독립적 위상을 갖추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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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감귤이 독립적 위상을 갖추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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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의 제주감귤 이야기] 위기의 제주감귤산업
김용호 전 제주감귤농협조합장 ⓒ헤드라인제주
김용호 전 제주감귤농협조합장 ⓒ헤드라인제주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말이 있다. 양자강 이남은 따뜻하여 감귤을 재배할 수 있지만 이북은 겨울 추위로 인해 지상부인 감귤은 동해를 받아 고사하고 내한성이 강한 대목인 탱자만 살아남기 때문에 남쪽의 귤을 강 건너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되어버린다는 뜻인데 오늘날 인간의 삶이 환경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데에 비유되곤 한다. 이 글귀의 의미가 제주 감귤에도 튀어날지 모른다는 기우에서 어떻게 비쳐질지 모르겠다.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해 제주에서 재배되고 있는 감귤이 북상하여 내륙지방에서 재배면적이 증가됨에 따라 제주감귤의 경쟁력이 뒤떨어지지는 않을 것인가 하고 내심 걱정하는 농업인들이 있다.

즉 감귤의 위상이 뒤바뀌어 남쪽에서 재배되던 감귤은 탱자가 되고 바다 건너에 가면 감귤이 된다는 뜻이다.

제주에서는 외양으로는 감귤모습이지만 품질의 떨어져 도로변에 조경용으로 심겨 있는 하귤로 전락하여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고, 내륙지방에서는 경쟁력 있는 감귤로 격상되어 남지북귤(南枳北橘)로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제주에서는 적응하는 중간 과정을 거치고 유망한 품종이 전국적으로 재배될 수 있다. 국가적으로는 어디에서 생산되든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성장한다면 바람직하게 여길 것이지만, 제주 입장에서 본다면 시행착오만 겪다보면 농업인의 생계는 막막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때 감귤산업은 지역경제를 주도하였고 정책적으로도 지원이 많아서 장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렇지만 많은 품종, 지식과 이론이 도입되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한때 반짝했을 뿐 우리 스스로 품종과 이론, 지식을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이다. 그저 따라하는 종속적인 영농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어떤 기후 환경에 적합한 품종인지, 품종 특성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이 투입되어야 하는 지도 모르고 관행 영농활동이 되풀이 되었다. 우리 스스로 품종을 만들고 지식과 이론이 생산되었어야 함에도 이 정도면 되었다고 만족에 젖어 상상력이나 창의력이 없이 되풀이 되는 과정에서 때가 되면 모든 게 창조되는 줄만 알았던 시대를 살았다.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제도를 달리하고 비전을 달리해 나가야 하는 것은 감귤산업의 경영의 핵심이기에 이를 전담하는 부서가 있음에도 수입된 지식으로 만들다 보니 항상 본질에서 벗어나기 마련이었다. 외부의 요구 간섭 없이 오로지 자신에게서만 나오는 스스로의 생각으로 시작할 적에 창의적인 결과를 보장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자신이 발동시킬 수 있는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질문이다. 대답이 아니다. 대답은 있는 이론이나 지식을 먹은 후 요구할 때 그대로 뱉어내는 일이다. 이 때 승부는 누가 더 많이 뱉어 내는가 혹은 누가 더 원형 그대로 뱉어내느냐에 의해서 결정한다. 책을 뒤져 정리하여 대답하는 사람은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지식과 이론이 머물다 가는 중간역이나 통로로 존재한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궁금증이나 호기심이 안에서 요동치다가 계속 머무르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일이다. 궁금증과 호기심은 이 세상 누구와도 공유되지 않는 오직 자신만의 사적이고 비밀스러우며 고유한 어떤 힘이다. 창의력도 사실은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발휘되는 것 혹은 튀어나오는 것이다. 질문이 튀어나오고 창의력이 발출되고 하는 그곳은 지식이나 이론 혹은 기능이 작동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궁금증과 호기심과 같이 무질서하고 원초적인 어떤 곳이다. 이론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인격적인 어떤 처소다. 내륙지방에서는 온갖 추위와 폭염을 이겨내면서 감귤을 신성장 작목으로 재배하려고 몸부림치면서 도전하고 있어 감귤을 심은 터전에 따라 현대판 탱자도 될 수 있고 귤도 될 수 있다.

경쟁력이 있으면 귤이 될 것이고 없으면 탱자가 되어 뿌리로 온갖 고생만 할 뿐 그 결실은 다른 사람이 보게 될 것이다. 지식도 어떤 사람에게는 족쇄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유와 창의의 바탕이 된다. 이 터전이 문화다. 사람에게는 그게 인격이다. 독립적 인격의 터전은 결국 궁금증과 호기심이다. 창의력이 필요하면 인격적 독립성과 자유로운 기풍을 제공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문화가 강조되는 이유다. 결국은 어떻게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지할 수 있느냐이다. 문화는 기실 세계와 삶이 가장 높은 차원으로 구현되는 일이다. 문화적 시선은 전술적 차원을 넘어서 전략적 차원으로 개안할 수 있다. 철학이니 문화니 인문학이니 예술이니 과학이니 하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우리를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끌고 가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움직이는 시선의 작동으로 태어나는 것들이 창의성이고 창의력이고 선도적이다. 선진하는 능력의 원천일 것이다.

선진국에서 만든 길을 따라가면서 경제를 일구어 어느 정도의 부를 누리는 단계가 중진국이다. 그런데 이 중진국이 나름대로 이룬 경제적 성취를 한 단계 상승시켜 새로운 경제적 구조, 즉 선도력을 가진 경제력으로 도약시키지 못하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데, 이 우왕좌왕은 모든 분야에서 극단적인 갈등과 혼란으로 노정된다.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는 형국, 지금 제주감귤산업의 모습이 아닐까.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정해진 틀에서 하는 반성이 아니라, 전술적 차원에서의 궁리가 아니라 이제는 철학적이고 문화적인 전략적 차원으로 시선의 높이를 상승시켜야 한다. <김용호 전 제주감귤농협조합장>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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