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계획 고시, '無입장'으로 용인하고...환경영향평가 절차서 승부?
책임 '공' 넘기고, 도의회만 바라본다?...지금이 결단 내려야 할 때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민선 8기 제주도정 출범 1년에 즈음한 기자회견에서 밝힌 제주 제2공항 갈등문제에 대한 입장은 다소 걱정스럽게 다가온다.
예상했던, 기대했던 '풍족한 답'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다. 1년의 성과와 과제를 제시하는 '준비된 자리'였음에도, 제2공항에 대한 언급은 짤막했고, 그 내용 또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자회견문에는 "제주 최대 현안인 제2공항 건설사업도 진정성 있는 자세로 다가가 도민과 소통하겠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취임 후 1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제2공항에 대한 도지사의 입장은 이번에도 없었다.
도민들과 약속했던 '도민 자기결정권 실현'의 방법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되지도 않았다. 갈등문제 해법도 제시되지 않았다.
질의응답 과정에서 향후 제주도에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절차와 관련한 얘기, 최종 결정의 시점과 관련한 자신의 생각을 살짝 드러냈다. 오 지사 입장에서는 일종의 '해법 구상'인 셈이다.
그러나 이 내용은 논란의 여지를 크게 남겼다. 한 마디로 제주도정의 입장은 없고, 국토교통부의 기본계획 고시가 이뤄지고 난 후 최소 1~2년에 걸쳐 진행될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지켜봐달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 지사의 발언을 정리해 보면, 국토부에 제출할 기본계획안에 대한 '제주도 의견'은 수렴된 의견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돼 제출시기를 늦출 것이라고 했다. 제2공항 사업은 국토부가 추진하는 사업이고, 현행 법령상 제주도의 권한이 제약된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본계획 고시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 "기본계획안 고시가 곧 제2공항 사업의 '결정'으로 보기 어렵고, 최종 결정은 기본계획 고시 후 진행되는 환경영향평가의 동의절차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여러가지 일정 등을 고려했을때 고시가 곧 결정이냐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제반 절차가 완료돼야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 분수령은 환경영향평가 동의절차가 아닌가 싶다. 그 과정까지 가야 제2공항 문제가 명확하게 결론난다고 해석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어느 시점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제2공항이 추진되는 상황 또는 추진되지 않는 상황을 맞을 것이다. 찬성측 입장에서도, 반대측에서도 명분이 필요하다. 법률에 따라 진행되는 절차에 따라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제주도가 환경영향평가 관련해 절차를 추진하고 도의회 제출하는 과정에서 충분하게 설명하고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지가 핵심이 될 수 있다."
일련의 발언 내용은 여러 측면에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내용의 적절성과 타당성도 그렇고,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많다.
비판적으로 반론을 제기해 본다면, 다음 몇 가지 물음을 던져볼 수 있다.
첫째, 왜 꼭 환경영향평가 동의절차에서 최종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인가.
오 지사는 환경영향평가 동의절차에서 제2공항 건설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동의절차 단계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행정절차상 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가 이뤄진다면, 그 다음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에 들어가고, 이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 절차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환경영향평가 동의절차가 마지막 최대 관문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행정절차에 입각한 원론적 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 제주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제2공항 현안 논의의 핵심은 제2공항 건설계획을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냐 하는 부분이다. 즉, 주민 수용성 차원인 것이다.
반대측의 주민투표 요구나, 찬성측의 조속한 건설 촉구도 수용성과 관련한 집단적 요구의 분출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행정절차적 측면만을 강조하며 밀어붙이려는 국토부와 달리, 제주도정은 도민사회 관점의 '갈등 해법'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국토부 입장에서 볼때, 기본계획 고시와 더불어 환경영향평가 동의절차가 매우 중요하겠지만, 도민들 입장에서 볼때는 수용 여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하루 빨리 도출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바로 자기결정권 행사이다.
자기결정권 측면에서는 굳이 행정적 절차의 전 과정을 지켜볼 이유가 없다. 사회적 합의만 이뤄진다면, 환경영향평가 동의절차 단계가 아니라, 기본계획 고시를 위한 주민공람 및 의견수렴이 진행된 현 단계에서도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국토부에 제출하는 '제주도의 의견'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 지사의 발언은 도민사회 관점보다는 행정절차적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있다.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도민들을 적극적 논의의 주체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행정절차적 결과에 의해 판단하는 피동적 존재로 본 것 아냐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발언이다.
둘째, 국토부에 제출할 예정인 기본계획 고시에 대한 '제주도의 의견'은 왜 '가감없는 전달'이어야 하는가.
지난 3월 기본계획안에 대한 주민공람 및 의견수렴이 시작될 즈음부터, '제주도 의견'에 대한 제주도정의 입장은 줄곧 '가감없는 전달'이었다.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는 전문기관에 맡겨 진행 중인 도민의견 수렴 정리를 단순하게 제시하지 않고, 심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전달할 계획임을 밝혔다.
정리의 방법만 다를 뿐, 도민의견만을 전달한다는 부분에서는 최초의 입장과 변함이 없다. 제주도정의 최종 판단이 담긴 입장은 담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기본계획 고시를 기정사실화 한 것에 다름 아니다.
제주도에 주어진 전략적 대응의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보내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오 지사는 기본계획 고시는 제2공항 건설계획의 최종 결정이 아니라며, 환경영향평가 동의절차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고시절차를 그렇게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정부 고시는 제2공항 건설계획이 국가정책으로 확정됐음을 공표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제주도 의견'에서 제주도정의 입장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내용의 의견을 국토부에 전달하느냐에 따라 건설 추진의 당위성 내지 타당성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고, 기본계획 고시 여부의 판단 잣대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결론없는 '무(無) 입장'의 고집은 이해하기 어렵다. 국토부에서 알아서 판단하도록 '공'을 그대로 넘기며 기본계획 고시를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기본계획 고시는 국토부에서 알아서 판단하도록 하고, 환경영향평가는 도의회 결정을 지켜보겠다는 것, 결국 '책임지는 역할'은 하지 않겠다는 뜻 아닌가.
국토부의 기본계획 고시 절차에 있어 '제주도의 목소리'를 내며 도민 요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접수된 의견만 전달하는 것으로 제주도 역할을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국토부에 '조건없는 공'을 넘기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제2공항 사업은 국토부가 추진하는 사업이고, 제주도의 권한은 제약돼 있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분수령이 될 것이란 환경영향평가 절차에서는 제주도정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국토부 사업이다'라는 식으로 적용한다면, 환경영향평가에서도 도지사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거의 없다. 결정은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에서 내릴 몫이다. 여기에 심의위원회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한도 '동의', '보완동의', '재심의' 3가지 뿐이다. 심의위원회에는 '부동의'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즉, 제주도 심의위원회 단계에서는 '부동의'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심의위원회에서 심사를 통해 문제가 없다고 판단될 경우 '동의'를 하고, 도의회에 동의안을 제출하게 된다. 최종적으로 동의, 부동의 권한은 도의회가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주어진 권한'만 따진다면, 기본계획 고시 과정이나, 환경영향평가 절차에서 제주도정의 역할은 미미해질 수밖에 없다. 책임 떠넘기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넷째, 환경영향평가 동의절차 단계가 분수령이 될 것이란 말 속에서 도민들의 궁금함은 커진다. 민선 8기 도정이 약속한 '도민의 자기결정권'은 도대체 언제 실현될 수 있는 것인가.
올해 2월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과 만난 오 지사는 기본계획 고시절차 이후로는 '제주도의 시간'이 올 것이라고 했다. 물론 환경영향평가 절차는 제주도의 권한이라는 강조한 표현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제주도에 주어진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시간은 올지 몰라도, '도민의 시간'은 과연 있을까 라는 부분에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일련의 상황을 종합해 보면, 도정의 구상은 환경영향평가 동의절차에서 승부가 나도록 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도의회에서 동의안 심사를 통해 가결을 하든, 부결을 하든 어느 한쪽 결론은 날 것이란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는 제2공항 갈등문제를 오로지 법적으로 부여된 행정절차에 의해서만 풀어가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도정의 논리대로라면, 도민들의 자기결정권이 끼어들 공간이 없다.
갈등과 분열의 시간이 무려 8년간 이어지고 있는데, 최소 1~2년 이상은 족히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환경영향평가 절차가 이행될 때까지 또 다시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선 8기 도정 출범에 즈음해 약속했던 실용적 접근방법의 문제 해결, 집단지성을 통한 갈등 해결, 도민의 자기결정권 행사, 이러한 말들은 지금 쏙 들어갔다. 한 시민단체에서 취임 1주년 기자회견 내용에 대해 즉각적으로 정면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환경영향평가 동의절차에서 결론을 내자는 말은, 도민사회 논의를 더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도민들이 자기결정권 실현의 뜻이 진정이라면,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시민사회에서 다수 서명으로 요구한 제2공항 건설계획에 대한 주민투표 실시, 그리고 기본계획안 논란 쟁점에 대한 공개검증 요구도 그렇다. 이를 도민의견으로 정리해 국토부에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토부 요구에 앞서 주민투표와 공개검증에 대한 도정의 입장은 무엇인지부터 밝혀야 한다.
다소 미온적으로 비춰지는 도정의 행보에 많은 도민들은 궁금해 한다. 도민의 시간은 도대체 언제가 될지를. <헤드라인제주>
ㅡ삼척시청인 경우 국가사업(원전 유치)도
주민투표로 결정했다
ㅡ2공항은 제주도민의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