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회에 걸쳐 8·15 해방이후부터 1948년 4·3사건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제주사회에서는 어떤 정치사회단체들이 태어나 어떤 활동하다가 어떻게 사라져갔는지 간략히 살펴보겠다. 이것은 제주사회에서 출현했던 좌우익의 흥망사이면서, 제주4·3사건의 전사(前史)에 해당된다. 이를 되돌아보는 이유는 이 속에는 제주4.3사건 발발이전에 뿌려진 삐라의 생산 주체들에 관한 이야기와 제주4·3사건의 발생원인과 배경이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여기에 연재되는 글들은 지난 5월 12일 ‘제주언론학회’·‘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제주4·3희생자 유족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고영철이 발표한 내용(제주4·3당시 삐라에 관한 연구)가운데, 원고분량 관계로 세미나 자료집에 다 싣지 못했던 내용들 중의 일부임을 밝혀둔다. 이 연재는 자료집에 없는 내용을 중심으로 수회에 걸쳐 게재된다. 미력하나마 제주4·3사건의 전사(前史)를 이해하는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필자의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처음 제시한 '글 싣는 차례'의 순서를 바꿔 '신문형 삐라'부터 계속 연재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양해를 바랍니다.<필자 주>
<5-2> 인민일보(人民日報)
『인민일보』라는 제호가 달린 유인물에 관한 기록은 1989년 '제주4·3연구소'에서 출간한 『이제야 말햄수다』 제2권(173쪽)과 제주도 4·3사건 진압작전에 참전했던(1948년 12월 12일∼1949년 8월16일) 제2연대 제2중대 이윤 중사의 『진중일기』에 등장한다.
『진중일기』는 남제주군 일대의 토벌작전에 투입되었던 이윤 중사가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사건들을 일기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나, 왜곡되거나 과장된 부분이 많이 등장한다.
우선 4·3증언 책록집인 『이제야 말햄수다』 제2권에 나오는 애월면 어음리에 거주했던 한 주민의 증언부터 들어보자
김 모: (……) 하여튼 좌익운동으로 논 사람은 엄쟁이 사람이여. 백창원이라고. 또 좌익으로 활동했던 사람 중에 이재만씨가 있주. “기무라, 기무라”행 유도도 잘 허고, 애월국민학교 시절에 선생인디,
그 사람은 결국 산으로 올라가서 『인민일보』라는 거, 그때는 활판소가 없으난 ‘가리방’으로 긁어 신문을 거기서 만들언 부락에 뿌리곡 뿥이곡, 허더구먼. 그 사람이 그걸 맡아서 해났댄 헌 말이 있었어. 하여튼 우두머리랐주. 그리고 어도에 가민 강창하, 양군보가 있주(제주4·3연구소, 『이제야 말햄수다』②, 1989, 173쪽).
다음은 『진중일기』에 나오는 『인민일보』와 관련된 내용들이다(2002, 114-140쪽).
➀ (1949년) 2월 20일 민심수습 제1단계 사업
(……)그런 가운데 공산도배들은 한라산 곳곳에 비밀군사시설을 만들고 왜정 때 땅속에 버렸던 각종 무기 탄약을 발굴하여 재생공장을 만들고 인쇄기까지 설치하여 소위 『인민일보』라는 신문까지 발간하면서 제주-평양 간 실시간적으로 무전연락을 취하여 평양에서 지령하는 선전을 매일매일 도민에게 주입했다(114쪽).
➁ (1949년) 4월 17일 남원면 당부와 접선. 김계원 일당 추적
(……)남원면에서 공산당원으로 입산한 자가 무려 1,000명이 훨씬 넘었으며 이들을 이끌고 입산한 사람은 김계원이란 자였다. (… 중략…) 김계원(金桂元)에게 접근하려면 몇 개의 접선 지점을 통과해야 겨우 위치를 알 정도였는데, 그는 각 접선지에 암호를 까다롭게 만들어 좀처럼 접근을 허용하지 않아 자기 심복들 아니면 대면조차 못한다고 했다. 우리들이 ‘남원면 투쟁위원회’를 분쇄한 후 개별투쟁위원회를 조직하고 접선에 성공하여 그날그날의 암호, 지령문 또 그들이 발간하는 『인민일보』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주1) 연락원은 이곳에서 포섭한 자들이었으며 때로는 우리와 같이 동행하여 근거지 근처까지 가기도 했다(129쪽).
➂ (1949년) 5월 20일 중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남원면당에 침투했던 부씨 형제(주: 좌익에서 우익으로 전향한 자)에 의하면, 김계원이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어 부씨 형제는 소, 말 등을 잡아서 놈들한테 식량을 공급했고, 같이 침투한 다른 한 사람은 취사 일을 보고 있다고 했다.
(…중략…) 그리고 놈들의 제주도당이 ‘해산’되어 도당 간부들이 이곳(註: 남원면당)으로 왔으며, 여기에는 오래전부터 현상이 걸렸던 제주경찰 청장의 딸 ‘강영숙’도 있다는 중대한 소식을 전했다. 강은 광주여고를 나온 지식여성으로 공산당에 가입, 입산 후 그녀의 부친(경찰청장)에게 수차례에 걸쳐 협박장을 보냈으며, 소위 『인민일보』 편집을 맡아보아서 ‘현상금 20만환’이 걸려 있었다(140쪽).
2개의 문헌에 등장하는 증언채록과 일기를 종합하여 추론을 내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민일보』라고 제호를 붙였지만, 당시 여러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실제 이를‘일간’으로 발행한 것이 아니고 명칭만 그렇게 붙였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인민일보』는 등사판으로 간행되었고, 마을에 뿌려지고 부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윤은 2월 20일자『진중일기』에서 “인쇄기까지 설치하여 소위『인민일보』라는 신문까지 발간하면서 제주-평양 간 실시간적으로 무전연락을 취하여 평양에서 지령하는 선전을 매일매일 도민에게 주입했다”라고 기술하고 있지만, 이 정보를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입수한 것인지 자료의 출처가 표시되어 않아서 신뢰할 수가 없다. 즉 부풀려지거나 조작된 내용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1949년 2월경이면 무장대의 주력부대는 거의 와해된 상태에 있었고 휴대용 등사기를 놔두고 무거운 인쇄기와 활자판을 갖고 다니면 신문을 만들었으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윤은 1949년 4월 17일 김계원 일당을 추적하다가 그들이 발간하는 『인민일보』를 입수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 기록으로는 『인민일보』의 발행주체, 게재 내용, 발행주기 그리고 언제부터 제작·살포되기 시작하여 언제 자취를 감췄는지를 확인할 수가 없다.
넷째, 『인민일보』의 편집 및 제작은 제주4·3사건발발이후 입산한 애월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이재만’과 광주여고를 나온 ‘강영숙’ 등이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부친인 제주도경찰청장(주2)에게 수차례에 협박장을 보내고, 소위 『인민일보』편집을 맡아보았기 때문에 “현상금 20만환”이 걸려 있었던 강영숙은 1949년 5월 25일 한라산 중턱에 있는 남원면 면당부 아지트에서 이윤 중사가 이끄는 토벌대의 습격을 받아서 김계원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145쪽). 체포된 이후 그녀는 전향해 선무공작대로 활동하였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일간'발행 신문도 아닌데 왜 『인민일보』라는 제호를 붙였는가 하는 것이다. 혹시 육지부에서 발행하던 유인물의 명칭을 모방한 것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1945년부터 1953년까지 북조선 또는 빨치산 등에서 제작 살포한 117개 종류의 신문류를 조사한 결과, 이런 제호의 삐라는 이것이 유일무이한 것으로 확인되었다.(주3)
하지만 시야를 국외로 돌려 조사해 보면, 1948년 6월 15일 중국 ‘헤베이성’에서 창간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의 명칭이 바로 『인민일보』(人民日報)(주4)였다.
남로당 제주도당 기관지와 중국공산당 선전기관지에 같은 명칭을 붙인 게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1948년 6월 15일 ‘허베이 성’에서 창간된 중국공산당 기관지의 명칭을 본 따서 제주도당 기관지의 명칭을 붙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왜냐하면 1948년 5·10 남한의 단독선거반대 투쟁이후부터 제작 살포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민통신』 등이 나중에 『인민일보』로 제호가 변경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고영철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주>
주1) 1949년 4월 17일 토벌군이 ‘남원면 투쟁위원회’를 분쇄한 후 손에 넣었다는 『인민일보』가 언제쯤 발행된 것인지 확인할 수가 없다. 그리고 토벌군이 현장에서 노획한 전리품가운데 신문은 있었지만 이를 제작하는 등사기에 관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신문의 발행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다른 면당이나 도당에서 발행한 것으로 보인다.
주2) 강영숙의 부친은 아마도 1946년 10월경 제주경찰청장(서장)을 역임했던 강귀천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증언 채록집에 나옴). 하지만 재차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
주3) 여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정병준의 『한국전쟁기 북한노획문서- 북한신문연구 해제집』(도서출판 선인, 2021)을 참고하기 바람.
주4)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948년 6월 15일 ‘허베이성’에서 창간된 중화인민공화국의 신문 중 하나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발행한다. 1949년 3월 본사를 베이징 시로 이전했다. 1949년 8월에는 중국 공산당의 공식 기관지가 된다.
고영철 제주대학교 명예교수(필자) 약력
2023년 7월 현재 그는 제주대학교 명예교수(언론홍보학과)로 활동중이고, 2019년 12월에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상(언론ㆍ출판부문)’을 수상한바 있다.
주요 저서로는 <제주언론 돌아보기1>, <제주언론의 보도방식과 수용자>(공저), <언론이 변해야 지역이 산다: 지역언론의 정체성과 과제>, <브랜드 홍보론>(공저), <고영철 사회비평집: 구라(口羅)>, <지역신문정책과 지원효과>(공저)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캠페인관련 뉴스 프레임 및 뉴스정보의 출처에 관한 연구: 국내 5대 일간지의 세계7대 자연경관선정캠페인 보도를 중심으로” , “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가?-제주신보 김호진 편집국장과 인민군사령관 이덕구 명의의 삐라인쇄사건 기록을 중심으로” 외 다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