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다랑쉬굴 피란민 학살.유해 처리과정 진상조사 이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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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다랑쉬굴 피란민 학살.유해 처리과정 진상조사 이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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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언론학회, '다랑쉬굴 발굴 30년, 성찰과 과제' 특별세미나
"1992년, 왜 발굴유해 황급히 처리됐나?...다랑쉬굴, 성역화 필요"
30년 전 다랑쉬굴 4.3유해발굴 현장.
30년 전 다랑쉬굴 4.3유해발굴 현장.

제주4.3 당시 잔혹한 피란민 학살사건의 상징적 장소로 꼽히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굴 유해 발굴 30년을 맞아 이 사건의 진상조사 추진과 더불어 다랑쉬굴 일대를 성역화 하는 사업 필요성이 제기돼 주목된다. 

또 유해가 발견된 직후 제주도가 황급히 유해를 처리한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 필요성도 제기됐다. 

다랑쉬굴에서는 지난 1992년, 유해 11구가 발굴됐다. 4.3 당시 진압작전을 피해 굴속으로 피신했다가 참화를 당한 피란민들이었다. 하지만 유해는 정식·정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발굴 45일 만에 화장돼 바다에 뿌려졌다.
 
제주언론학회(회장 김동만)와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고희범), 제주4·3연구소(이사장 이규배)가 지난 26일 오후 제주4.3 어린이체험관 평화교육강당에서 연 '다랑쉬굴 발굴 30년, 성찰과 과제' 주제의 특별세미나에서는 다랑쉬굴 발굴의 의의와 과제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이뤄졌다.

개회식에서 김동만 회장은 "제주 4·3의 참혹함과 학살의 실체적인 모습을 응축하고 있는 다랑쉬굴이 발견되고 그 유해가 공개된 지 올해로 30주년을 맞는다"며 "하지만 민간인학살에 대한 충격적 실상이 드러난 것도 잠시, 다랑쉬굴 유해는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져야 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어 "30년을 거슬러 다랑쉬굴이 발굴과정과 언론들의 진실찾기를 되집어 보고 혹여나 미흡한 점은 없었는지, 여전히 다랑쉬굴은 막혀 있고, 방치된 채로 남겨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통해 향후 과제를 논의하고자 오늘 세미나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다랑쉬굴을 방치되어 있다"며 "다랑쉬굴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도 없이 서둘러 화장하고 바다에 뿌려진데 대해서 당시 다랑쉬굴을 발견했던 한사람으로서 여전히 죄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고 피력했다. 또 "당시에 취재를 했던 언론사나 행정당국, 공안기관 모두 자유스럽지 못할 것"이라며 이 부분에 대한 진상규명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 1부에서는 1992년 발굴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김종민(전 제민일보 4.3특별취재반 기자) 제주4·3위원회 위원이 ‘다랑쉬굴 발굴의 언론보도와 진실 찾기’ 발표가 있었다.

이어 송창우 전 제주MBC 기자의 '다랑쉬굴 언론보도가 4.3 진상규명운동에 미친 영향’, 박경훈 제주4.3평화재단 전시자문위원장의 '다랑쉬굴의 진상규명과 남겨진 과제’에 대한 주제 발표가 있었다.

김종민 위원은 4.3특별취재반 당시 활동과정에서 다랑쉬굴 취재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 후, "다랑쉬굴 발견과 보도는 비록 ‘희생자의 유해를 양지바른 곳에 안장시켜 드리자’는 목적에는 실패했지만, 4·3진상규명운동사에서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평했다.

그는 "1990년 당시  정치·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4·3 추모제는 경찰의 원천 봉쇄로 무산됐고 추모제 장소에
는 최루탄이 난무했다"며 "그러한 때에 다랑쉬굴 발견과 보도는 침체됐던 진상규명운동을 가속화했고, 특히 전국적으로 4·3을 알리는 큰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박경훈 위원장은 김동만 회장이 대신 낭독한 발표문을 통해 다랑쉬굴 피란민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성역화 사업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다랑쉬굴 유해 발굴은 그 자체가 역사적 사건이기도 했지만, 발굴과 유해의 처리의 전 과정이 또 다른 살아 있는 4·3이었다. 공안정국 하에서 은폐와 왜곡으로 재빨리 이 사안을 숨기려 했던 당시 당국의 조처는 4·3이 끝난 지 40여 년이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레드아일랜드의 시각으로 제주사회를 바라봤던 지배세력의 시각을 드러낸 사건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또 "그들의 공작으로 40여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가해자와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일깨워까지 이용하고자 했던 제주사회 단면을 드러낸 또 다른 사건이었던 것이다"며 "다랑쉬 입구를 봉쇄한 지 30년, 이 사건은 마치 그 현장처럼 그 당시의 진실 여부도 드러나지 못한 채 봉인돼 있는데, 당시 생존해 있던 유족들도 대부분 돌아가셨고, 당시 실무자들도 몇 안 남아 있지만, 여전히 다랑쉬굴 발굴과 그 어간의 진실들은 묻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4·3평화공원에는 다랑쉬굴 특별전시관이 조성되어 있지만, 정작 실제 현장인 구좌읍 세화리 다랑쉬굴은 여전히 토지 소유권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30년간 아무런 공적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며 "당시, 급하게 유해를 수습하면서 남은 유해 잔해들과 4·3 당시 그대로 현장에 남아 있는 유물들이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데, 아직까지 정식발굴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그는 "최근에는 4·3평화재단에서 국비로 도내 4·3유해발굴사업을 벌이고 있으나 이곳은 여전히 그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다랑쉬 30주년을 맞는 2022년, 다시 다랑쉬굴 발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간이다"고 강조했다. 

또 "4·3진상규명운동사의 연표에서 그 뜨거웠던 1992년 다랑쉬굴 유해 발굴 그리고 그 처리에 있어, 공안정국의 국가기구 하부조직인 제주도의 검찰.경찰.행정당국의 다랑쉬굴 유해 발굴에 간여하면서 도민사회와 유족들의 염원과는 다르게 졸속과 파행으로 일을 처리한 이 사건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당시 제주 사회의 흑역사를 다시 한번 재조명해 4·3진상규명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제대로 정립할 필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우근민 전 지사가 관선지사로 있던 때인 1992년 당시 제주도당국과 경찰.검찰이 왜 유해를 서둘러 화장하고 바다에 뿌렸는지, 그 진상을 규명하자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4·3 당시 다랑쉬 피란민 상태 및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뿐만 아니라, 다랑쉬굴 유해발굴 및 처리과정에 대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랑쉬굴에 잔존하는 유해 다수와 유물에 대한 발굴사업을 추진할 것을 강조했다.

이어 다랑쉬굴 토지 매입 및 성역화 사업도 제안했다.

그는 "제주특별자치도 자체 예산, 또는 국비를 활용해 현 소유주인 이화재단을 설득하여 토지 매입이 필요하며, 차후 주변 정비 및 성역화할 필요 있다"며 "다랑쉬굴은 4·3의 비극을 상징하는 공간 중의 하나로 다크투어리즘의 현장으로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허호준 한겨레신문 부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에서는 박재현 KBS PD, 강철남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 위원장, 강민철 제주도 4.3지원과장 등이 참여해 다랑쉬굴 발굴의 언론보도 과정을 통해 과거를 성찰하고 다랑쉬굴의 4.3 진상규명에 미친 영향과 남겨진 과제 등에 대해 의견이 개진됐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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