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희의 '행복한 미술'] (6) 닮은 면의 흔적 바라보기
상태바
[한정희의 '행복한 미술'] (6) 닮은 면의 흔적 바라보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의 ‘김창영’ 기획전시

모래를 이용해서 모래를 그리는 김창영(대구, b.1957) 작가의 ‘모래, 흔적 그리고 인생(Sand, Traces and Life)’ 전시가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에서 올해 4월부터 시작되었다.

끊임없이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예술가에게 힘을 주는 본질을 발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김창영 작가는 1977년 계명대학교에 입학하고, 20대 초반에 잠시 부산의 해운대 인근에서 지낸 시기에 모래를 담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김창영 작가는 1979년 제2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을 받고, 1980년도에는 같은 곳에서 서양화부 대상을 수상한 이후 1982년부터 일본에서 작품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때 상을 받게 된 작품들이 모래사장 위에 찍힌 발자국의 형상을 그린 것으로 출발해서, 40년이 넘는 기간 모래를 그리고 모래 위에 나타난 변화를 포착하고 있다. 일본에서의 창작 활동은 순탄치 않았는데, 초반에는 막노동까지 하는 심한 생활고를 겪으며 마침내 일본화단에서 전업 작가로 자립하게 되었고, 1995년 일본을 대표하는 예술인 100인에 선정되었다.

작품의 기법은 캔버스에 접착제를 바르고 모래를 뿌린 후에 그 위에 모래를 그리는 과정인데, 작가는 이를 “실체와 허구의 조화이며 이것이 우리의 삶과 비슷하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은 크게 4가지 주제로 구분된다.

# 유년기로 볼 수 있는, 모아져 뭉쳐지는 에너지와 어우러지는 모래 모습의 <UNION>

사진=김창영, <UNION 1901-W>, Oil on Sand on Canvas, 173×284cm, 2019
사진=김창영, , Oil on Sand on Canvas, 173×284cm, 2019


#청년기, 치솟는 힘의 'Sand Play'. 

청년기, 치솟는 힘의 'Sand Play'
 사진=김창영, <Sand Play 1612-L>, Oil on Sand on Canvas, 343×260cm, 2016

 

# 중장년기, 불안정하고 위태롭지만 균형을 이루어 쌓여있는 돌담의 <BALANCE>

사진=김창영, <BALANCE 17089-L>, Oil on Sand on Canvas, 340×394cm, 2017
사진=김창영, , Oil on Sand on Canvas, 340×394cm, 2017

 

# 노년기, 사막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밭에 찍힌 발자국의 <From where to where> 등의 작품은 작가가 진실과 허구가 교차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사진=김창영, <From where to where 1712-E>, Oil on Sand on Canvas, 68×233cm, 2017
사진=김창영, <From where to where 1712-E>, Oil on Sand on Canvas, 68×233cm, 2017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에서 개최된 ‘김창영 개인전’은 작가에게 특별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다양한 전시와 활동을 해 왔지만, 국내의 공공기관에서 개인전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전시를 위해서 신작을 준비하고, 대표작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특유의 꼼꼼함과 열정을 보여주었다. 허재형 학예연구사는 “김창영 작가님은 손바닥 크기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며칠씩 걸리는 것만 보아도, 작품에 대해 철저하고 완벽주의에 가까운 성향을 잘 알 수 있다.”는 대답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또한 이번 전시는 8월까지 연장하여 진행된다.

‘모래성’은 쉽게 허물어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곤 한다. 대신에 모래는 특별한 도구 없이 손으로도 원하는 형태를 만들 수 있어서, 유아기 때부터 한 번쯤은 놀이터와 바닷가에서 모래 놀이를 했던 경험이 있다. 흩어지게 했다가 원형을 만들었다가 다시 한 곳으로 모래를 모아놓기도 하면서 모래 놀이에 흠뻑 빠지게 되는 것처럼 심리적 안정감을 주곤 한다. 김창영 작가의 작품에서는 회상할 수 있는 기억의 고리가 설렘과 열정으로 이끌어주는데, 아무것도 없이 나왔으며 아무것도 없이 가야 하는 깨달음으로 향하게 한다.

◆ 예술인 마을 속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의 흔적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은 2016년도 9월에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작품을 모티브’로 빛의 중정과 각각의 전시실로 구성하여 개관했다.

김창열 화백이 한국전쟁 당시 1년 6개월간 제주에 피란한 적이 있어 평소 제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겨오면서, 미술관을 위해 자신의 대표작과 주요 작품 220점을 기증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제주의 공립 미술관에서 가장 최근에 개관한 이곳을 총괄하는 안규식 관장은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15년,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장 2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학예연구팀장 2년 등의 활동을 마치고, 제주와의 첫 인연으로 1년 반 전에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으로 취임했다.

미술관의 전시는 김창열 화백의 소장품으로 구성된 전시와 기획전시가 병행되어 개최된다. 기획전시의 경우에는, 신생미술관으로 성격 규정과 운영 방향을 명확히 하고자 김창열 화백의 예술세계와 맥을 같이 하는 국내 중견 작가를 조명하는 전시와 김창열 화백의 시기별 활동상을 천착하는 연구형 전시, 그리고 해외에서 김창열 화백과 교류하였거나 김 화백에게 영향을 준 작가, 혹은 김창열 화백의 예술세계와 상통하는 작가를 조명하는 국제전 등 크게 세 범주로 운영하고 있다.

『김창영 ‘모래, 흔적 그리고 인생’』 기획전시의 배경으로는, 김창열 화백이 극사실적 화법으로 물방울을 그리지만, 그 너머의 이념과 미적 실험을 추구했던 것처럼, 김창영 작가 역시 극사실적 모래 그림을 통해 예술적 실험과 도전을 추구해왔다. 그뿐만 아니라 인생을 성찰하는 태도적 유사성이 존재하고, 그간의 예술적 성취와 미적 완성도보다 평가 절하된 예술가를 집중 조명함으로써 편향된 국내 예술계의 균형감각을 회복하고 보석 같은 작가를 발굴한다는 취지에서 개최되었다.

하반기에는 프랑스 현대미술의 거장 ‘피에르 술라주(Pierre Soulages)’전을 개최하기로 하고 현지 미술관과 약정까지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한 프랑스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잠정적으로 취소된 점은 프랑스와 해외의 여러 나라에 제주를 알릴 좋은 기회가 떠나간 것으로 아쉬운 일이 되었다.

신생 미술관으로 할 일이 많은 이곳에서 안규식 관장은, “관람객들이 우리 미술관을 찾았을 때, 전시 콘텐츠나 미술관 운영방식이 세계 유수 미술관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미술관으로 성장시켜서 방문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따라서 코로나19로 취소된 술라주 전시가 더 안타까운데, 이 작가의 명성은 세계적이어서 아마 개최했다면 많은 사람이 놀랐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안 관장은 고향에서 살았던 추억이 떠오르는 제주로 온 것이 축복이며 행복하기에 오래가길 바라면서, 제주미술계의 속내를 살피는 기회가 되었다. 따라서 제주미술계의 강점으로, “제주도는 섬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자체의 전통과 스토리가 많고 강한 만큼, 콘텐츠가 많다는 것은 장점으로 작용할 여지가 많다. 이점을 현대미술로 연결 지어서 다양하게 풀어낸다면 좋은 성과와 많은 결실을 볼 것이다.”라는 생각을 전했다. 이것은 미술인들의 숫자는 타지역에 비해 많지 않지만, 다양한 단체와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실정과 제주도가 그 어떤 지자체보다도 중앙의 자장에서 벗어나 자체의 질서와 논리에 따라 주체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김창열미술관이 있는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은 도심권에서 벗어난 곳에 자리하고 있어 모객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를 들어, 동쪽 지역뿐만 아니라 제주시에서도 심리적 거리감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관은 다양한 전시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면서, SNS를 통한 마케팅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체험 프로그램, 교양강좌, 아트숍 개선 등 관객들과의 친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 부분 등은 성과로 꼽을 만한 변화이다.

물은 흘러간다. 생명을 움트는 시작이 되어 흐름에서 자유로이 춤을 춘다. 순환으로 지속하는 우주에서 물의 방울 하나가 소중한 까닭이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은 도심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충전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으니, 잠시 마스크를 잊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다. 물방울 화가인 김창열 화백의 작품을 언제나 관람할 수 있고 이에 걸맞은 기획전시가 진행되며, 좋은 콘텐츠들을 준비하고 있는 김창열미술관의 관람을 제주도에서 꼭 방문해보길 당부한다. <한정희 아트 디렉터>

김창영, <UNION 1901-W>, Oil on Sand on Canvas, 173×284cm, 2019.
사진=김창영 '모래, 흔적 그리고 인생' 전시 포스터

<한정희의 '행복한 미술'>코너는?...

한정희 디렉터 ⓒ헤드라인제주
한정희 디렉터 ⓒ헤드라인제주

한정희의 '행복한 미술'은 다양한 기관의 전시 · 기획자 · 작품 · 작가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문화예술인들의 지위를 향상하면서 미술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취지에서 연재됩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행복을 찾는 과정에서 미술이 촉매제가 되기를 바라면서, 연재를 읽고 작품을 감상하는 계기 마련과 미술을 통해서 개인의 행복한 일상을 마주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한정희 디렉터가 총괄 기획한 전시로는 2019 제주국제평화센터 '평화의 꿈' 및 'DMZ 평화 생명의 땅', 2018 제주해짓골아트페어, ICC JEJU 아트&아시아 제주 2015 쇼케이스, 2015 서귀포예술의전당 전시실 개관기획전, 2015/2016 서귀포시교육발전기금마련전 등이 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문화 기획, 언론 기고, 미술 연구조사, 미술 강의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한정희 디렉터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미술관·박물관학과 졸업

예문사 「학예사를 위한 소통하는 박물관」 공저

주경야독 문화재아카데미 ‘한국미술사’ 강사

설문대여성문화센터 운영위원

삼매봉도서관 운영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