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편에 이어지는 글로써, 제주 화가 ‘나 강’의 작품 평론입니다.
2016년 ‘Artist 나 강’의 ‘벚꽃 나들이’ 작품을 통해서 첫 만남이 있었다. 곧바로, 작가와 큐레이터의 만남은 깊어졌고, 현재까지 ‘작업실 수다’를 이어오고 있다. 6년의 기간, 작업실에 펼쳐진 캔버스와 변화되는 작업을 함께했다. 2022년의 봄맞이 벚꽃이 글로 옮길 때가 되었다고 말을 걸어준다.
◇ 세상을 마주하는 ‘관조’적 시점
나 강의 ‘벚꽃 나들이’에서 ‘관조’의 작품으로 시선을 옮겼더니, 눈이 시리고 쨍한 푸름이 보인다.
이 작품들의 특징은 더욱 제주의 ‘색채’를 강조하는 것이다. 여백 처리로 아무것도 없다고 느낄 무렵, 이리저리 움직였던 눈동자와 생각의 방향이 차분해짐을 느낀다.
감상자의 태도에서도 작품의 주제처럼 ‘관조’에 이르는 상태가 다가온다. 하나씩 보게 되는 것들은, 넓고 묵직한 바다, 햇빛에 비친 잔물결, 물속에 잠긴 검은 바위와 잔파도, 바다를 보는 한 명의 사람, 수평선과 하늘, 제주의 작은 섬이다.
‘관조’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단어의 의미론적 해석으로 관찰과 통찰의 상태를 말하는 것 그리고 미적인 태도를 나타낸다. 이와 함께 불교에서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비추어 본다는 의미도 있다.
나 강의 작품에서는 위의 모든 의미를 담고 있다. 미적 관조가 우선하며, 뒤이어 자연과 인생을 통찰하려는 현상이 담겨있다. 덧붙여 감상자의 태도마저 관조의 상태로 이끈다.
처음의 미적 관조는 근대 미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칸트가 ‘미적 무관심성(aesthetic disinterestedness)’을 확립하고, 쇼펜하우어는 ‘미적 관조(aesthetic contemplation)’로 체계화시킨 이론이다.
하나의 대상을 두고 각자 주관적인 상태로 인해 다양한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관심으로 벗어나 있는 상태가 미적 무관심성의 상태라는 것이다.
미적 관조는 관찰과 추론으로 표상되기 이전의 대상을 직관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는 무관심성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직관적인 주체가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연결되는 통찰의 태도로, 고요한 마음으로 물질과 현상을 관찰하는 것의 관조는 자연에 대해 억지로 거스르지 않고 가만히 바라본다는 것이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으로, 최고의 가치가 있는 학문은 ‘관조’이며, 인간에게 행복은 ‘관조적 생활’에 있다고 했다.
나 강은 ‘관조’ 작업을 할 때 큰 변화를 기대했다. 제주의 자연을 캔버스에 담는 것 이외에도 삶의 중반부를 훌쩍 넘긴 생애에서 오는 성찰이었다.
나 강의 작업은 ‘제주 자연과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으로 출발했다. 목적지를 향하던 중, 자신을 복기하게 된 것이다. 움츠렸던 시간은 내밀한 곳에서 수영하는 힘을 길렀다.
‘관조’는 나 강의 자화상으로 대치된다. 화가의 자화상이자 감상자의 초상화가 될 ‘관조’는 우리 모두를 ‘관조’하게 한다. 삶과 예술을 바라보는 세계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 정돈의 ‘휴식’
‘휴식’의 작품은 제주의 ‘곶자왈’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에서 출발했다. 숲의 풍경들은 제주를 만끽할 만한 미학이 충분했지만, 자기 줄기를 이어가기 위해 변화를 준 것이다.
‘휴식’의 작업은 ‘벚꽃 나들이’와 매우 닮았다. 나무와 사람이 등장한다. 나무를 표현한 점묘법, 사람들을 채색한 기법, 사람의 이목구비가 없는 점들은 두 주제에서 공통된 특징이다.
‘휴식’에서 혼합되지 않은 순색의 작은 색점들을 캔버스에 찍어가며 완성하니, 생기 가득한 초록 나무와 잔디가 조성되었다. 매우 커다란 나무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맞추어 기둥은 반듯하고 윗부분은 동글동글하다. 나무와 잔디의 경계는 매우 깔끔한 지평을 이루고 있다.
나무의 뒷부분은 흰 여백이다. 이곳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흰 공간은 안개가 끼어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동심의 세계와 가깝게 느껴진다.
한편, ‘휴식’에서는 나무의 그림자를 만들어 주고, 야외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넓고 안정된 휴식의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서 야외스케치하러 가면 큰 나무가 있는 곳으로 자주 갔어요. 내 눈에는 나무들이 커다랗고 동그랗게 보였어요.”
사람들은 나무 그림자로 인해 햇빛을 가릴 필요가 없으니 파라솔, 모자, 양산이 없어도 자유롭다. 돗자리에 누워 있는 사람들, 훌라후프를 돌리며 운동하는 사람들, 기지개를 켜거나 자유로운 몸짓으로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휴식’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거나 창조한 것이 아니다. 나 강이 알고 있는 세계를 캔버스에 옮긴 것이다.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 프랑스 철학자)’는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에서 우리가 내밀성에 대해 꿈꾸면서, 존재의 휴식에 대해, 뿌리내린 어떤 휴식에 관해 설명한다. “어떤 이들이 휴식을 통해서, 질료를 통해서 인간 존재를 정의한다는 것은, 바로 이 내밀하며 강한 휴식의 유혹 아래서이다.”라고 하였다.
나 강의 캔버스에서 ‘제주’는 ‘벚꽃 나들이’의 <연분홍>으로, ‘관조’는 <푸른색>이며, ‘휴식’은 <초록>의 색채로 나타난다.
‘벚꽃 나들이’는 주변의 인물들을 표현한 <군상화>라고 할 수 있는데, ‘관조’는 <자화상>의 표상으로, ‘휴식’은 <가족>을 볼 수 있다.
제주의 자연과 사람을 사실적이지 않은 기법으로 그렸다. 나 강은 ‘제주풍경을 관조할 수 있는 색채의 관점’으로 제시한 것이다.
전체적 관점에서 나 강의 작품은 평온한 순간을 마주하게 한다. 복잡함, 날카로움, 무력감, 권태의 이끼가 차오르면, 고요함으로 다가갈 수 있는 순간을 보여 주어, 평온한 일상을 감사하는 태도로 변화시킨다.
나 강의 앞에는 전체를 완성하기 위해 부분의 캔버스가 쌓여있다. 캔버스의 대지에서 연금술을 연구하면서, 새롭게 쓰일 내밀함은 또 다른 제주의 색채로 올라올 것이다. <한정희 예술감독>
#에필로그
나 강은 1992년 겨울, 결혼하면서 남편의 고향인 ‘제주’로 입도했다. 가족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챙기면서 씨앗을 품게 된 것이다. 지금의 평면작업을 하기까지, 29년 동안 도자기, 퀼트, 목공 및 등공예 등을 하면서 체온을 유지했다.
2014년부터 작업의 가속도가 높아져, 8년 동안 19회의 개인전을 발표했다.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일제히 새순이 올라 온 것이다.
평면작업의 출발에서, 한동안 바다 근처에 버려진 고무 혹은 유리 테왁을 모았다. 조형성이 눈에 들어왔는데, 일부를 자르고 회화적인 요소와 점토로 개구리를 표현했다. 이 작업을 하면서 점토가 발전하여 테왁과 해녀 작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전라남도 조선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아버지는 조선대의 미술교육학과 1회 졸업생이었으므로, 아버지의 영향을 이어가기 위함이다.
아버지이자 선배였던 ‘나점석(1929~1973, 전라남도)’ 화가는,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인상주의 화풍의 대표작가인 ‘오지호(1905~1982, 전라남도)’의 제자였다.
나점석 화가는 44세로 짧은 삶을 마감했지만, 작업을 위해 야외스케치를 즐겼다. 1953년도에는 제주 야외스케치를 하고 ‘제주풍경’ 작품(44점)으로도 전시를 개최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허기진 상태가 되곤 하는데, 모든 플롯은 나 강이 두려움을 떨치고 캔버스 앞에 머무를 시간을 지속하게 한다.
‘나 강’은 고마운 사람이 많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중에서도, 이번 19회 개인전을 개최할 수 있었던 것은 ‘앤팩토리 갤러리’의 대표이자 친구 덕택이라고 한다. 병원(제주대학교병원, 서울아산병원, 강북삼성병원 등)에서 깊은 관계로 지속된 것은, 환자들의 반응이 큰 영향을 준 것이다. ‘KEB하나은행’과는 긴 시간의 인연이 귀결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낌없는 격려자인 남편이 있어, 이 모든 시간이 가능했다.
나 강 : Na Kang : 羅 江
▶ 학력 : 1985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서양화 전공 졸업
▶ 개인전
2022 04 나 강 개인전, &Factory Gallery, 서울, 한국
2021 09 나 강 초대전, 한라일보 갤러리 ED, 제주, 한국
2021 08 나 강 개인전, 갤러리 노리, 제주, 한국
2021 07 나 강 초대전, 갤러리 서울아산병원, 서울, 한국
2021 04 나 강 초대전, 강북삼성병원 갤러리 Nanum Zone, 서울, 한국
2019-2021 나 강 기획초대전, 국립제주대병원, 제주, 한국
2019 02 제주풍경 (개관기념 초대전), KEB하나은행 돌담갤러리, 제주, 한국
2018 07 나 강의 제주일기 (플래닝 플랫폼 기획초대전), 파스쿠찌 제주탑동점, 제주, 한국
2018 05 나 강 기획초대전, 갤러리 드림, 성남, 한국
2018 04 나 강의 제주일기 (설문대 여성작가 발굴·지원전), 설문대여성문화센터, 제주, 한국
2017 03 나 강 기획초대전, 국립제주대병원, 제주, 한국
2017 04 나 강 초대전, 갤러리카페 팩토리소란, 제주, 한국
2017 10 나 강 초대전, 타워아트갤러리, 부산, 한국
2017 04 나 강 초대전, 갤러리 연, 제주, 한국
2016 12 나 강 개관기념 초대전, 휴애리 갤러리 팡, 제주, 한국
2016 11 나 강 기획초대전, 광주수완센트럴병원 재복갤러리, 광주, 한국
2015 03 나 강 초대전, 갤러리카페 팩토리소란, 제주, 한국
2014 11 나 강 초대전, 갤러리 연, 제주, 한국
2014 05 나 강 기획초대전, 갤러리 Space inno, 서울, 한국
▶ 단체전 총 11회 (2010~2022 제주, 부산, 서울)
2022 02 하나은행, 하나은행 본사, 서울, 한국
2021 02 탐나는 봄, 제주도립미술관, 제주, 한국
▶ 아트페어 총 11회 (2015~2021 제주, 서울, 광주 부산)
▶ 작품소장
2017 제주하나은행, <벚꽃나들이>, 162X130cm, Acrylic on Canvas
2018 제주대학교병원, <벚꽃나들이>, 162X130cm, Acrylic on Canvas
2019 제주설문대여성문화센터, <벚꽃나들이>, 162X130cm, Acrylic on Canvas
2020 서울아산병원, <벚꽃나들이>, 162X130cm, Acrylic on Canvas
2021 하나은행본점, <휴식>, 132.3x162.2cm, Acrylic on Canvas
▶ 기타
2021 『7월호 VOL.222 세브란스병원』 - 나 강 작가의 그림 선물 / 자유로움과 아름다움이 흐르는 순도 높은 회화성 (p26-27)
2016 『겨울호 VOL.21 <문화通 PLUS>』 - 이 작가를 주목하라 / 여류 서양화가 나 강 (p53-55)
2016 장준석 미술비평집 『한국성과 한국 현대 회화에 대한 모색』 - 나 강, 제주도의 자연에서 조율되는 회화의 맛 (p.298-305)
▶ 현재
한국미술협회 및 제주도미술협회 회원
한정희의 '행복한 미술' 코너는?...
한정희의 '행복한 미술'은 다양한 기관의 전시 · 기획자 · 작품 · 작가 등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문화·예술인들의 지위를 향상하면서 미술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취지에서 연재합니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행복을 찾는 과정에서 미술이 촉매제가 되기를 바라면서, 연재를 읽고 작품을 감상하는 계기 마련과 미술을 통해서 개인의 행복한 일상을 마주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한정희 예술 감독이 총괄 기획한 전시로는, 2022성읍1리노지문화전시회 ‘성읍새김’, 2021대포마을노지문화전시회, 2020아트페스타in제주(5th), 2019제주국제평화센터 ‘평화의꿈’ 및 'DMZ평화생명의땅', 2018제주해짓골아트페어, ICC JEJU 제주2015쇼케이스'아트&아시아', 2015서귀포예술의전당전시실개관기획전 '서귀포에살다', 2015/2016 서귀포시교육발전기금마련전 등이 있습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 기획, 전시 홍보·마케팅, 미술 연구조사, 미술 강의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정희 예술 감독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미술관·박물관학과 졸업
예문사 「학예사를 위한 소통하는 박물관」 공저
제8기 제주특별자치도 축제육성위원회 위원
서귀포시 감귤박물관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