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제주는 특산물 진상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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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24) 역사 시대의 제주의 농업

조선후기의 조선의 농업은 봉건적 사회시스템의 붕괴로 인한 외부의 문물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왔던 시기로 농업분야에서는 서양농법이 이식되기 시작하는 근대농업의 과도기적 단계였다. 이러한 과도기적인 조선후기에 제주도에서의 농업은 어떠했을까?

임진왜란을 전후 한 1600년대 제주의 농업상은 극심한 생활고와 고역 등으로 출륙하는 도민들의 수가 증가되면서 조정에서는 제주도민들의 출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인조 7년(1629년)부터 순조 25년(1825년)까지 약 200년 동안 출륙 금지령을 내렸다. 이에 제주 사람들은 테우와 같은 뗏목을 어업에 사용해야 했다. 이런 역사 때문에 제주도민들은 육지에서 온 사람들을 불신하는 경향이 생겼다. 이형상 목사가 집필한 ‘남환박물’은 이 시기의 제주의 사화상을 잘 기록하고 있다. 남환박물은 제주도 및 그 주변 도서의 자연, 역사, 산물, 풍속, 방어 등에 대한 기록을 하고 있는데 당시 이형상 제주목사 재임기간인 1년 3개월간의 제주목사직을 이임하고 완성하여 후세까지 전하고 있다.

17세기 이후의 획기적인 것은 다른 나라에서 새 작목을 도입하는 일련의 성과를 이루었다. 대표적인 농작물로는 고구마와 감자였다. 우리나라에 고구마가 처음 소개된 것은 15세기였고 1760년 시험재배 되었으며 1765년경에 남해의 바닷가 지방에서 재배되기 시작하였다. 1794년경에 전라도의 강진 등 6개 고을과 제주도, 그밖의 바닷가 지방 고을에서도 고구마가 재배 되었다. 과수의 재배 품목은 이전 시대와 비슷하였으나 각 품목별로 주산지화 되었다. 17세기 이후 과수 재배면적은 늘었는데 특히 많이 늘어난 지역은 제주도였다. 15세기에는 귤나무 밭이 19개 있었던 것이 17세기 중엽에는 36개소로 늘었다.

이형상 목사의 남환박물(왼쪽), 조선 역사서 증헌문헌비고.
이형상 목사의 남환박물(왼쪽), 조선 역사서 증헌문헌비고.

17세기 이후 국가목장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16세기 말 임진왜란, 19세기 초 병자호란으로 목장의 파괴가 심하였다. 제주도의 어등포(현 구좌읍 행원리)에는 우둔이라는 소목장이 있었다. 이처럼 제주도에는 말, 소목장 뿐 만 아니라 양을 기르는 양잔, 돼지를 기르는 저원, 염소를 기르는 고유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조선시대 중앙통치자들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경영하는 작은 규모의 목장들이었다. 이처럼 17세기 이후에는 국가목장은 쇠퇴하였으나 개인들이 사육하는 큰 규모의 목장들이 나타났다.

개인 목장들은 규모가 컸을 뿐 아니라 기르는 마리수도 많았다. 조선후기의 역사서인 증보문헌비고에는 ‘제주인 김만일이 관할하는 말은 1만마리에 이르는데 그의 목장은 한라산 지역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였다’고 하였다. 이 처럼 당시의 전국 국가목장에서 관리하던 말 마리수와 거의 맞먹는 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이 시기 개인 목장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가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게 한다. 김만일이 헌마 공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시기 제주도에 개인 말 목장이 많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 공납의 폐해가 심각해서 그걸 대체하기 위해 대동법을 만들었으나, 제주도는 대동법 시행 예외 지역으로 분류되었다. 제주도는 특성상 쌀이 거의 나지 않기 때문에 대동미를 낼 수가 없었거니와 제주도 특산물이 다른 지역에선 제대로 얻어지는 물건이 아니라서 제주도민들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공납에 허리가 휘어야 했다. 다른 지역은 세제가 전세에 통합되는 경향을 보였는데 제주는 반대로 지세가 공납에 통합되는 경향을 보였다.

공납을 위한 물건을 만들고 관리하고 바치는데도 허리가 휘는데 거기에 육지에서 온 관리들은 제주도민들에 대한 착취가 심했고 험한 제주도의 환경 때문에 생활도 힘들어 고난의 섬이나 다름이 없었다. 특히 화산회토 토양으로 가뭄이 자주 들어 지속적으로 인구가 줄고 유민이 발생했는데 공물은 줄지 않아서 다시 유민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살기 힘든 지역이었기 때문에 대역적 같은 중죄인들을 노비로 귀양살이 또는 유배지로 제주에 보내는 경우가 더욱 많아지는 등 당시 농업인들의 생활상은 악순환의 고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탐라순력도의 공마봉진(왼쪽), 이원진 목사의 탐라지.
탐라순력도의 공마봉진(왼쪽), 이원진 목사의 탐라지.

17세기 중엽의 탐라지에는 제주목에 제주사창, 동별창(별방), 서별창(명월), 정의현에 정의사창, 정의 서별창(서귀), 대정현에는 대정사창 등 6개 창고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제주도 내의 환곡 제도는 부실하게 운영되었다. 제주 고을 수령들은 자비곡을 마련한 다음, 그것을 본전으로 하여 민고를 설치·운영했는데, 진휼창, 보민창, 고마고, 목자고, 견역고, 장세고 등이 대표적이다. 18세기 말 흉년과 가뭄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김만덕은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육지에서 쌀을 사다가 구휼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도 제주도는 여전히 유배 지역이었다. 왕족이나 고관 현직에 있었던 사람은 주로 제주성 내에 안치되었으며, 대정현에는 광해군 때의 정온, 헌종 때의 김정희, 정의현에는 광해군 때의 김덕룡, 인조 때의 원종, 제주목에는 중종 때의 김정, 명종 때의 보우, 인조 때의 광해군, 숙종 때의 송시열, 김춘택, 고종 때의 최익현, 김윤식, 박영효 등이 유배되었다.

제주도에 있어서 19세기는 온갖 부조리와 억압에 저항해나가는 변화의 시기였다.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이 태동하고 있는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오랫동안 억압당했던 농민들의 울분이 민란으로 분출하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도 1862년 강제검, 김흥채 등이 주동한 임술(壬戌) 농민 봉기를 시작으로, 1890년에 김지가 주동한 경인(庚寅) 민란, 1896년에는 강유석과 송계홍 등이 주동한 병신(丙申) 민란, 1898년에는 방성칠이 주동한 무술(戊戌) 민란, 1901년에는 이재수의 난[신축 천주교란]이 발생했다.

특히 이재수의 난은 프랑스 함대, 일본 함대까지 끌어들여 한때 제주도에 전운이 감돌기도 했다. 19세기 말엽 제주도에 대한 일본 어업의 침략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이때 한·일간에는 조일 통상 장정(朝日通商章程)과 조일 통어 장정(朝日通漁章程)이 성립되었다. 그런데 이를 빌미로 일본 어선들이 제주 근해에 나타나 조업을 하면서 행패를 부렸고, 이에 제주도민들은 거세게 집단 항의를 했다.

제주도는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육지에서 나지 않는 진귀한 특산품들이 여러가지 있었다. 이런 특산품은 당연히 임금에게 바치는 진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문제점은 제주도는 왕조 시대 당시에는 살기가 수월하지 않은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의 제주도에서 중요 진상품들은 대표적으로 말(馬), 감귤, 전복, 흑우, 흑돼지, 참돔, 사슴, 은갈치, 표고버섯, 당근 등이 있었다. 허생전을 보면 말총을 뜯기도 한다.

19세기 말엽 제주도에 대한 일본 어업의 침략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이때 한·일간에는 조일 통상 장정(朝日通商章程)과 조일 통어 장정(朝日通漁章程)이 성립되었다. 그런데 이를 빌미로 일본 어선들이 제주 근해에 나타나 조업을 하면서 행패를 부렸고, 이에 제주도민들은 거세게 집단 항의를 했다.

참고자료: 국립제주박물관, 2017, 국립제주박물관; 경인문화사(201)5, <제주지역 목장사와 목축문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주해녀와 일본의 아마(2006), <민속원>; 남환박물(南宦博物)(1704), <이형상>.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 코너는?

이성돈 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이성돈 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 농촌지도사 ⓒ헤드라인제주

농촌지도사 이성돈의 '제주농업의 뿌리를 찾아서'는 제주농업의 역사를 탐색적으로 고찰하면서 오늘의 제주농업 가치를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이 기획 연재글은 △'선사시대의 제주의 농업'(10편) △'역사시대의 제주의 농업'(24편) △'제주농업의 발자취들'(24편) △' 제주농업의 푸른 미래'(9편) △'제주농업의 뿌리를 정리하고 나서' 편 순으로 이어질 예정입다.

제주대학교 농생명과학과 석사과정 수료했으며, 1995년 농촌진흥청 제주농업시험장 근무를 시작으로 해,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부농업기술센터, 제주농업기술센터 등을 두루 거쳐 현재는 제주도농업기술원 기술지원조정과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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