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실의 문학산책] (20) 그녀와 나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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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실의 문학산책] (20) 그녀와 나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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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가 아닌, 어떻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글을 통해 내가 몰랐던 내 얼굴을 보기도 하고, 그려 내기도 한다. 그래야 좀 더 따뜻하고, 성숙 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에서의 풋풋한 삶을 사랑스런 언어로 그려내는 글을 쓰고 싶다." <수필가 최연실>

춘삼월, 지인의 손에 들려 애월읍에 있는 집으로 보내졌습니다. 반색하며 집주인은 지인의 손에서 나를 받아서 꼭 안았습니다. 그때, 그녀의 넉넉한 품만큼이나 성격 또한 동그라미일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내 허리에 묶인 띠를 보곤 웃었지요. 핑크빛 리본에 ‘축 행복하세요.’라고 쓴 글이 나풀나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거든요. 그날 바람에 실린 행복은 이내 그녀의 얼굴에 보조개를 만들었습니다. 집들이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익어갈 무렵, 몇몇 지인이 고민한 끝에 나를 선택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주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며 은근히 나의 장점을 자랑하면서 공기도 정화해 준다고 나를 부추기며 말했습니다. 지인이 한 말에 꼿꼿하던 내 몸을 그녀 앞에서 한 자나 더 세웠습니다. 내가 누구냐고요? 그녀와 삼 년째 동고동락하는 스투키랍니다.

아침마다 그녀는 음양탕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런 그녀가 내게는 물 한 모금, 눈길 한 번도 주지 않더군요. 나는 이러다가 아사하는 게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 때문에 잠 못 드는 밤이 많았습니다. 그녀가 게으르고, 이기적인 사람이란 걸 눈치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하필이면 많고 많은 것 중에서도 나를 골랐을까요. 지인이 나와 눈이 마주쳤던 게 그녀를 만날 내 운명이었나 봅니다. 그녀 집에 오고 며칠이나 지났을까요. 그녀가 조그맣고 앙증맞은 나무 한 그루가 담겨 있는 작은 화분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나무에는 콩알만 한 빨간 열매가 서너 개 달려 있었습니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전화하더니 재물과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화초를 화원에서 사 왔다며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러면서 물도 자주 줘야 하고, 볕이 잘 드는 곳에 두어야 한다며 호들갑을 보태더군요. 시끄럽게 등장한 그 친구의 이름은 자금우입니다. 그래서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자금우야! 네 운명은 풍전등화란다.’ 하고요.

그런 그녀의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네요. 중천의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을 즈음에야 기웃하던 그녀가 여명을 보는 날이 잦아졌습니다. 뱀이 허물 벗듯, 그녀는 이불 속에서 기어 나와 목 축이는 것은 뒷전이었습니다. 매일 그녀의 시선은 자금우로 꽂혔고, 손은 정수기에 머무르곤 했답니다. 그러다 “휙”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가물에 콩 나듯 내게도 물 한 컵을 부어 주더군요. 메마른 땅에 비를 만난 것처럼,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그녀는 내게 비였고, 오아시스였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답례라도 하듯 조용히 싹을 틔웠습니다. 내가 새로 만든 가족을 보여주고 싶은데, 요즘 그녀가 아주 바쁜 것 같더군요. 그녀는 육지에 올라가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집에서 똬리를 트는 날들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무심하고 게으른 그녀지만, 저녁마다 힐긋거리며 나를 못마땅한 듯이 쳐다보지만, 나는 그녀가 기다려집니다. 왜냐고요? 언제부턴지 알 수 없지만, 그녀에게 길들고 있었나 봅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그녀를 잘 알고 있답니다. 내게 무심하게, 서운케 하는 것은 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요. 태생이 소심한 그녀는 제 몸 하나 간수하는 것도 힘들었거든요. 저녁마다 그녀는 술에게 사람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웠답니다. 술 한 잔에 긴장이 풀리면 초면인 사람과도 친하게 되고, 잘 웃어주기도 한다면서요. 그렇게 혼자 술 마시면서 아팠던 속내를 조금씩 열었어요. 이젠 그녀는 술 없이도 모든 게 가능해졌거든요. 그런 힘겨웠던 날을 묵묵히 옆에서 지켜봤던 게 나입니다.

어제, 그녀는 차에 시동을 켰다, 껐다.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더군요. 그러다 밖에서 들어와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 벌러덩 소파에 누웠습니다.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때마침 그녀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남편은 논리 정연하게 그녀에게 사유를 만들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이내 동조한 듯, 미지근해졌습니다. 실은 나를 선물했던 지인과 약속이 있었는데 그만 예상치도 못한 폭설 때문에 주저앉게 되었거든요. 그러니 속이 편치 못했을 겁니다. 그녀가 종이컵에다 물을 담아서 내게 붓더군요. 그리곤 약간 상기된 얼굴로 나를 알고 싶다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습니다. 톡 톡 핸드폰의 문자를 누르고 있네요. ‘다음’에서 나에 관한 이야기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스투키, 꽃말은 관용.” 그녀가 중얼거렸습니다.

그녀는 티브이 옆 창가 쪽을 보며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곤 성큼성큼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내게 “관용”이란 “너그럽게 이해하고 용서한다.”라는 뜻이야 하며 조잘조잘 읊조리더니만, 이해해 달라며 멋쩍은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게 무심했던 지난날이 미안해서인가 어쩌면, 어제 지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요. 그녀의 속이 시끄러운 것 같습니다. 술로 제법 단단해진 것 같아도 아직도 말없이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그녀가 보입니다. <수필가 최연실>

최연실 수필가ⓒ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 미국으로 이민 간 언니를 대신해서 시상식에 갔다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생활수필반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2018년 수필가로 등단했다.

- 2018년 수필과 비평 등단
- 한국 언론인 총 연대 편집기자
- 서울 서부지부 원석문학회 회원
- 제주 백록수필 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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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투키 2023-01-03 10:21:16 | 175.***.***.93
의인화된 스투키가 참 매력있네요.꽃말이 관용이라는 것도 작가님 덕분에 알게 됩니다. 오일장가서 하나 사다가 키워보고 싶어지ㅣㅂ니다

제주맘 2023-01-01 13:56:58 | 112.***.***.220
스투키도 작가님도 참 귀엽고 사랑스럽네요 겉모습은 삐죽삐죽하지만 속은 참 여린 스투키의 마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