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실의 문학산책] (8) 부부 안식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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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실의 문학산책] (8) 부부 안식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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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가 아닌, 어떻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글을 통해 내가 몰랐던 내 얼굴을 보기도 하고, 그려 내기도 한다. 그래야 좀 더 따뜻하고, 성숙 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에서의 풋풋한 삶을 사랑스런 언어로 그려내는 글을 쓰고 싶다." <수필가 최연실>

제주에 내려와서 생활하는 육지 사람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직장발령으로 내려왔고, 나처럼 다른 이유로 제주에 온 사람도 있다.

“넌 아직 손주 소식 없니?”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요즘 얘들은 저희끼리 잘 살다 가려나 봐.”

“그렇게 사는 젊은 부부를 딩크족이라 말한다지.”

오늘은 이십 년 지기 친구들의 모임이 있는 날이다. 큰아이 학부모 모임 때부터 만났으니 몇몇 애들은 출가했다. 그중에서 둘은 사위와 며느리를 보았다. 모이면 통상적으로 묻는 말이 “너 딸은 남자 친구 없니? 아들은 언제 장가가니? 손주 소식 없니?” 하는 질문이다. 벌써 내 나이를 짐작하게 하는 대화가 오간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이런 말을 하고 나면 조금은 서글퍼진다.

우리 여섯은 각각 결혼을 유지해 온 세월이 달랐다. 대부분 삼십 년 세월을 유지해 오고 있었고, 그중에서 맏언니 벌인 동윤母가 십 년이나 더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다.

“한 사람하고 사십 년 사는 것은 너무 지겨워.”

툭 던진 맏언니의 말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생각해보니 나도 삼십 년을 살고 있다. 같이 사는 것이 지겹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혼자서 살아 보는 삶을 가끔 동경하곤 했다. 그러나 딸들이 제 짝을 만나지 못하고 있으니 꿔 보지도 못할 꿈이라고 생각했다. 결혼 생활의 십 년은 어머님 모시고, 연년생인 두 딸을 키우느라 바삐 지나갔다. 또 십 년은 남편 뒷바라지에 정신없이 살았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어머님의 직장암 선고로 나는 힘든 날들을 보내야만 했었다. 내 삶에 상상하지도 못한 변수가 생긴 것이다. 어머님을 보내드리고 십 년의 세월은 내 세상일 것 같았다. 하지만 복병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됐다. 항상 내 편일 것 같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남의 편이 되는 남편이란 복병.

어느 날 모 방송 프로에서 결혼할 때, 장롱하고 남편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 뼈 있는 농이었다는 것을. 신혼살림을 장만할 때 오랫동안 쓸 생각으로 튼튼하고,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무난한 것으로 장롱을 선택했었다. 한 번 선택하면 망가지지 않는 한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남편 될 사람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비유한 말일 게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 더 쓸 만한 것도 갖다 버리는 세상이 됐다. 이 말은 이혼하는 확률도 높아졌다는 말에 비유한 건지도 모른다. 달리 생각하면 참을성이 부족하다는 말로 들린다.

지인이 초등 동창 모임에 갔다가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한 사람하고만 평생을 사는 것은 힘들 수도 있으니, 결혼함에 있어 부부에게 기간제를 도입하는 것을 법으로 정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남자들은 한 사람과 같이 사는 기간을 십 년이라 말했고, 여자들은 육아도 해야 하니 이십 년이라고 하며 한바탕 웃음으로 마무리했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것일까. 편안하고, 익숙한 것들이 오히려 부부가 생활하는 데에 있어 오감을 무디게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결혼할 즈음에는 대부분 여자가 결혼하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에 머물렀다. 요즘처럼 복지가 활성화되어있지 않기에 당연히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가정에 보탬을 주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요즈음은 맞벌이해야 가정을 영위하며 살아간다. 남자 혼자 벌어서는 살 수가 없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여자도 사회에 진출하여 많은 부분에서 두각을 드러내 주목받는 시대가 되었다. 어찌 보면 옛날보다는 여자들한테도 좋은 날이 온 셈이다.

유대교에서는 칠 년 만에 일 년씩 모든 일을 놓고 쉬는 해를 안식년(安息年)이라고 한다. 그래서 종에게는 자유를, 빚진 자에게는 빚을 탕감해 주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교수들이 수업 재충전의 기회로 안식년의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가장 사회의 기본이 되는 가정, 그 구성원의 주춧돌이 되는 부부에게도 재충전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빈말이라도 지겹다, 너무 오래 같이 사는 것 아닌가. 하는 말도 좀 줄어들지 않을까.

졸혼이나, 황혼 이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왜 그런 일이 빈번할까. 중년에 좀 더 아름답게 살 수가 없는 것일까. 빠른 시기에 서로에게 안식의 기회를 줬다면 이런 경우의 수는 낮아지지 않을까. 황혼이 되어서, 자녀들을 다 출가시킨 후에 맞는 졸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작 의지해야 할 사람이 필요한 그 시기에 말이다. 그래도 꼭 해야 한다면 그건 마지막 몸부림일 것이다. 그런 몸부림이 오기 전에 부부에게도 안식년이란 제도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복병이었던 남편이 몇 년 전부터 내게 안식할 것을 제안했다.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 보고 싶어서 이왕이면 바다 건너 제주도를 선택하게 되었다. 나는 ‘부부 기간제’라는 말이 어불성설이라 한다면, 부부 안식년(安息年)이란 말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보면 어떨까. <수필가 최연실>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 미국으로 이민 간 언니를 대신해서 시상식에 갔다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생활수필반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2018년 수필가로 등단했다.

- 2018년 수필과 비평 등단
- 한국 언론인 총 연대 편집기자
- 서울 서부지부 원석문학회 회원
- 제주 백록수필 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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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아이디어 2022-06-24 12:43:16 | 110.***.***.40
역시나 이번 글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부부 안식년! 기막힌 아이디어입니다. 졸혼하지 않고 긍정적인 인생의 ㄷ오반자가 되기 위한...

싱글레이디 2022-06-24 10:19:47 | 112.***.***.220
부부안식년 참 좋은 아이디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