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실의 문학산책] (11) 애월(涯月)의 공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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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실의 문학산책] (11) 애월(涯月)의 공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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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가 아닌, 어떻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글을 통해 내가 몰랐던 내 얼굴을 보기도 하고, 그려 내기도 한다. 그래야 좀 더 따뜻하고, 성숙 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에서의 풋풋한 삶을 사랑스런 언어로 그려내는 글을 쓰고 싶다." <수필가 최연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갈 무렵 혼자 살아보고 싶었지요.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잊은 채 살고 있었기에 ‘엄마’라는 신분증을, ‘아내’라는 명함을 잠시나마 서랍에 넣었습니다.

장마가 소강상태에 접어든 어느 날, 초대장을 보낸 기억조차 없는데 손님이 찾아왔어요. 습한 곳이 지 집인 양 공벌레 한 마리가 현관에서 주인의 환대를 기다리는 것처럼 주위를 빙빙 돌고 있습니다. 못 본 척하고 싶지만, 외면하면 어색할까 봐 검지로 살며시 “툭.”하고 건드려봅니다. 내 행동이 무례했던 모양인지, 동그랗게 몸을 말았습니다. 나는 “오늘은 너에게 특별한 날이야.” 하며 투명한 면봉 용기 뚜껑에 들어가라고 살짝 밀었습니다. 공벌레는 뚜껑 주위를 빙빙 돌다가 다시 제자리에 오더군요. 혹여 외롭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냉장고 옆, 벽 틈바구니에서 한 마리를 더 찾아냈어요. 두 번째 공벌레를 용기 안에 넣으니 서로를 탐색하듯 엎치락뒤치락하며 올라타고 있더군요. 둘은 뚜껑 가장자리를 돌면서 만나게 되면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에 포옹했고, 헤어지면 여러 개의 짧은 다리로 발버둥 치며 서로 나오겠다고 몸을 세웠습니다. 몇 바퀴를 돌았더니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죽은 듯 공벌레가 움직이지 않더군요.

나도 오랫동안 용기 안에 공벌레처럼 밖의 세상을 그리워했습니다. 내가 있는 곳은 어둡고, 습기가 많은 바위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조갈증이 불씨가 되어 제주도에 내려와 지내고 있습니다. 한동안 답답증은 해결되는 듯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섬 생활 또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가족을 멀리 두고 찾아온 밤은 길었습니다. 뒤척이며 잠을 청해 보지만, 결국은 다리와 가슴 사이에 베개를 끼워놓고 책을 읽는 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눈까풀이 무거워지면 쪽잠을 자다가 깨어나면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카톡 소리가 들리면 그때야 무거운 몸을 일으킵니다. 친구가 “혼자 지내니 행복하니.” 딸들이 “엄마 별일 없죠?” 마지막으로 남편이 “당신 오늘 뭐 할 거야?” 그새 해는 중천에 와 있었지요.

절지동물 중에서도 갑각류에 속하는 공벌레는 오래된 낙엽과 나무껍질을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부러 텃밭에 가서 면봉 뚜껑에 흙을 담고, 오래된 낙엽과 나무껍질도 넣었습니다. 그리곤 그 안에 공벌레 두 마리를 살포시 올려놓았지요. 한동안, 두 마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라도 한 듯, 흙냄새도 맡아보고, 몸을 비비고 있더라고요.

반 시간이 지나니 다 알아버렸는지 시큰둥합니다. 서로에게 달려들지도, 안기지도 않더군요. 둘은 바깥세상에 나가 보려고 서둘러 말았던 몸을 세우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급기야 한 놈이 장벽을 넘지 못하고 깔아 놓은 낙엽에 발라당 나뒹굴고 말았지요. 공벌레는 거실 천장을 보고 누웠습니다. 눈에 들어온 것은 갈망하던 세상이었을까요?

뒤집어진 몸을 면봉으로 “툭” 하고 건드리니 세상에서 제일 작은 공이 되었지요. 공벌레는 내 행동에 자존심을 다친 걸까요. 아니면 겁이 나서 몸을 말았을까요? 궁금한 마음에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첫째는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고, 둘째는 몸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행동이라고 쓰여 있더군요. 조금 전, 공벌레는 내 무례한 행동에 겁을 먹은 게 확실했습니다. 나는 목욕탕 문 앞에서 두 마리를 더 찾아서 넷을 만들었습니다. 네 마리는 비슷한 듯 보였지만, 어디인지 모르게 달랐습니다. 용기 안에서 네 마리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게 바쁘게 사는 네 식구의 모습입니다. 나갈 거라고 용기 주변만 뱅그르르 돌고 있는 모습이 마치, 우리 가족이 길을 잃는 것처럼.

외출했다 집에 오니 공벌레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 눈에는 편치 않아 보였어요. 나는 부러 공벌레가 머무는 뚜껑에 면봉을 지렛대처럼 걸쳐놓았습니다. 그중에 호기심 많고, 제일 센 놈이 솜방망이 있는 곳으로 짧은 다리를 바삐 움직이며 올라갑니다. 조심스레 면봉을 밟고 곡예를 하고 있더군요. 그리곤 드디어 갈망하던 바깥세상으로 ‘툭’ 하고 제 몸을 던졌습니다. 놈은 자유를 찾았다고 거실 바닥을 헤집고 다니면서 만세를 부르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세상에 나온 공 벌레 한 마리가 용기 안에 남은 셋에게도 자유를 주라고 시위하듯 내 주위를 뱅그르르 돌고 있었지요. 나도 모르게 용기 안에 있던 공벌레를 처음 발견한 곳으로 데려다주고 있었지요.

나는 소소한 감정 하나도 다스리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자유를 원해 서랍에 넣어 두었던 것들을 하나둘씩 꺼내 놓았습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를 구속하는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내 조갈증은 구속받고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이 다시, 나를 다시 속박합니다. 새로운 곳조차 어두운 바위틈에 불과할 뿐이란 것을요.

달빛이 유난히도 밝은 애월읍의 밤, 공 벌레들이 천천히 현관 옆의 외벽을 타고 기어가고 있군요. 그리곤 도란도란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너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거니?” <수필가 최연실>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 미국으로 이민 간 언니를 대신해서 시상식에 갔다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생활수필반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2018년 수필가로 등단했다.

- 2018년 수필과 비평 등단
- 한국 언론인 총 연대 편집기자
- 서울 서부지부 원석문학회 회원
- 제주 백록수필 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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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식객 2022-08-06 01:57:59 | 112.***.***.220
제주도에 너무 흔하기도 하고 그리 호감가는 색감과 형태가 아니라서 무심코 기피했던 공벌레에서 이런 사색과 이야기가 나올수 있다는 것이 신선하네요 이름도 공벌레인지 몰랐는데 귀엽다는 느낌마저 드니 다음에 만나면 저도 인사 나누어 보렵니다.
어디에 살고 있는가보다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잊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또한 진정한 자유란 회피와 도피로는 얻어질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열혈팬 2022-08-05 12:32:25 | 175.***.***.234
공벌레가 마치 사람이 된 둣..참 재미있네요.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