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실의 문학산책] (18) 가을의 끝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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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실의 문학산책] (18) 가을의 끝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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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가 아닌, 어떻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글을 통해 내가 몰랐던 내 얼굴을 보기도 하고, 그려 내기도 한다. 그래야 좀 더 따뜻하고, 성숙 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에서의 풋풋한 삶을 사랑스런 언어로 그려내는 글을 쓰고 싶다." <수필가 최연실>

며칠 전, 소설(小雪)이었다. 공항으로 가는 길목을 덮은 건 밤새 바람에 쌓일 대로 쌓이고 흩어질 대로 흩어져있는 낙엽 군상이다. 비에 젖은 갈잎이 마음을 대신해 주듯, 섬에서 맞는 가을이 쓸쓸하다.

11월, 한 장 남은 달력에 스산한 바람이 불어온다. 1월의 문턱을 디딘 지가 엊그제이건만, 벌써 한 해가 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해일이 인다. 중심축이 뒤틀리듯 자꾸만 뒤 돌아보는 게, 부치지 못한 편지가 있다.

두 해전, 이맘때였다. 큰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내가 여고를 졸업하고 얼마 후에 언니는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 후로 종종 한국을 방문했으나 이번에는 내가 사는 제주도에서 한동안 머물 거라 했다. 언니하고 단둘이서만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게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세 살짜리 어린애처럼 침대에 누워 오두방정을 떨었다.

우리 자매는 이목구비가 닮은 데다 취향까지도 비슷했다. 대학 시절에 언니가 자주 다녔던 학림다방을 나도 다녔으니 말이다. 몇 해 전만 해도 대학로에 있는 학림다방에 들러 언니가 자주 듣던 <베토벤의 대공>을 신청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사르트르, 시몬느 드 보봐르에게 빠져 이십 대 초반을 보내던 그때 나 또한 전혜린이란 여류작가한테 심취했었다. 어린 시절에 언니와 함께했던 추억은 손으로 꼽을 정도지만, 언니와 마주하면 닮은꼴의 내가 마주 앉아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와 보낸 열흘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힘들게 더디게만 가고 있었다.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날 밤에 얼음판 한 가운데 서 나를. 무방비 상태인 나를. 언니가 준비한 장도리로 내리쳤다. “왜? 하필이면? 제주도니? 이 먼 곳까지….”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 정착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기막힌 표정을 지었다. 그 밤 언니는 전에 했던 약속을 끄집어냈고, 그로 인해 우리 자매는 밤늦도록 다투었다.

고즈넉한 성북동의 한옥 대문 입구에는 대추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터줏대감처럼 들어오고 가는 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눈처럼 주렁주렁 대추가 달려있다. 대추나무 옆에는 못다 한 사연에 오랜 한 숨을 머금은 빛바랜 정자가 말동무를 기다리고 있었고, 처마 밑에선 바람 박자 따라 춤추며 나는 맑고 청아한 풍경 소리가 언니와 나를 유년의 앞마당으로 부르고 있었다. 나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흉내 내듯, 그런 자세로 앉아 있고, 언니는 파티마 헤스의 조각상처럼 양쪽 다리를 세우고 어깨를 약간 웅크리고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자매는 처마 밑 마루에서 서로를 응시하며 대추차와 호박범벅을 주문했다.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육각 소반에 주문한 차와 호박범벅이 나왔고, 농익은 대추차의 색은 세상 풍파에 잘 숙성된 언니였다. 잘 여문 호박을 초승달 모양으로 썰고, 남부 콩, 밤을 고루 섞어 고슬고슬하게 잘 쪄진 설기로 한 상이 차려졌다. 오랜 시간 문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언니를 보는 듯했다. 언니는 같은 길을 가는 내 모습에 뿌듯해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전해주지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애달아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만 해도 제주도와 서울에 오가며 지내고 있었기에 거듭 언니는 내게 물었다.

“마음이 안정되면 올라올 거지?”

“그럼, 정착하지는 않을 거야.”

그 후로 두 해가 지나고, 정착하기로 마음을 정할 즈음에 언니가 다시 방문하게 된 거다. 언니는 그때의 약속을 곱씹으며 다그쳤다. 언니는 내게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는 것은 처음부터 밟아가는 기나긴 삶의 여정이라고 말했다. 왜 그 긴 기다림 속에서 지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 언니를 내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나는 허우적거리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언니, 이제는 힘들지 않아, 익숙해져 가고 있어.”

요즘 나는 사막을 지날 때 만나는 오아시스를 찾은 것처럼 잘 지내고 있다고, 때론, 짭조름한 외로움과 쏠쏠한 고독이 동반되기는 하지만, 나의 탈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빛바랜 책꽂이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카뮈의 이방인> 그게 내가 언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외로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라고 말했던 언니는 어디에 있는 걸까. 누구보다도 나를 이해해 주리라 믿었건만, 언니는 자기 생각을 관철하는데 만 조급한 사람처럼 보였다. 오랜 침묵 끝에 조심스레 나는 말을 건넸다.

“와인 한잔할까?” 두어 잔 정도 마셨을 즈음에 나는 장롱에서 원피스 몇 벌을 꺼냈다.

“언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이거 어때?” 그대로 딱지를 간직한 채, 새 주인을 기다리듯 묵은 향을 내는 것들이었다. 한때는 처절하게 혼자가 되어 본 사람만 당당하게 자신을 지켜낸다고 했던 언니. 그 언니가 지금은 부대끼며 살아가라고 하고 있었다.

갈잎이 속삭이는 가을밤, 혹한 겨울로 향하는 늦가을의 바람이 결코 녹녹하게만 않다. 무소의 뿔처럼 우뚝 서서 나의 길을 가고 싶은데 그것마저도 욕심이라고 말하는 피붙이가 남처럼 느껴지는 밤. 살아내고 있는 나를 보고 언니는 방황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냥 지켜봐 주면 안 되는 걸까. 단지 짜 놓은 틀에 맞춰 살기에는 서투른 나라는 걸 알아주면 좋으련만. 언니는 밤새워 뒤척이는 듯, 잠 못 이룬 모양이다.

“동생 보아라. 너와 나의 삶의 방식이 다름을 이해한다. 하지만,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너의 방황도 낙엽이 되길 ... 소망한다.” 편지 한 장을 침대 머리맡에 놓고 언니는 떠났었다.

공항에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속절없이 흘러만 가는 게 아니란 것을. 한 치의 구김살도 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겨울을 맞이하고 싶다. 즐겨 읽던 책갈피 속에 머리맡에 놓고 간 그날의 편지가 있다. 아프락싸스 신에게 날아간 새처럼 창조를 위한 힘겨운 움직임에 다시 자신을 실어 본다. 나는 알에서 나온 지 오래다.  <수필가 최연실>

최연실 수필가ⓒ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 미국으로 이민 간 언니를 대신해서 시상식에 갔다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생활수필반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2018년 수필가로 등단했다.

- 2018년 수필과 비평 등단
- 한국 언론인 총 연대 편집기자
- 서울 서부지부 원석문학회 회원
- 제주 백록수필 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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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심 2022-11-28 08:37:26 | 175.***.***.205
작가님의 팬이 되어버린 제주 토박이입니다. 얼굴을 직접 뵌적은 없으나 응원하고 싶습니다. 제주에서 좋은 기운을 얻고 충전 만땅하시길 바랍니다

제주맘 2022-11-25 17:38:45 | 112.***.***.220
창조의 길은 외로움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외로움과 두려움과 용기에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