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실의 문학산책] (15) 내 삶속에 찾아온 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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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실의 문학산책] (15) 내 삶속에 찾아온 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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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가 아닌, 어떻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글을 통해 내가 몰랐던 내 얼굴을 보기도 하고, 그려 내기도 한다. 그래야 좀 더 따뜻하고, 성숙 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에서의 풋풋한 삶을 사랑스런 언어로 그려내는 글을 쓰고 싶다." <수필가 최연실>

밤새워 뒤척이다 잠이 들곤 했다. 슬그머니 갱년기가 불청객처럼 찾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잠 못 드는 나의 밤은 갱년기 때문인 것 같지 않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깊어갈수록 밤이 지나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얼마 전만 해도 내가 사는 집 뒤에는 공터가 있었다. 요즘 들어 그곳에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저녁때만 되면 모닥불을 피우곤 한다. 아마도 일꾼들이 추위를 쫓으려고 그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밤이 되면 그 공사장에서 개 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종종 승냥이처럼 울어대는 소리에 내 마음이 복잡하게 요동치며 출렁였다. 침대에 누워있다 상체만 세우고는 베개를 가슴과 다리 사이에 끼워 놓고 책을 꺼내 들곤 한다. 내 다름대로 사유의 세계로 들어가려 애를 써 보지만 문은 열리지 않고, 잠들지 못하는 이 밤에 사투를 벌이는 내가 보일 뿐이다.

나는 낮에 보다도 밤에 내 모습이 더 잘 보인다. 그러나 어떤 이는 밤을 어두움의 대명사, 스멀스멀 연기처럼 악의 기운이 기어 나와 깊은 늪으로 데려다주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오늘 그런 밤과 친구가 되어 볼 생각이다.

육지에 올라가면 가끔 찾는 동네 선술집의 주인아주머니 밤은 소주 한잔 기울이며 손님의 넋두리를 받아주는 너그러운 밤으로 보인다. 그 옆집에 카페 여주인은 인적이 드문 밤을 친구 하며 혼자서 고독을 즐기고 있다. 얼마 전, 결혼 한 후배의 밤은 깨를 볶는 방앗간처럼 사랑스러운 밤일 게다. 그와 반대로 나와 남편의 밤은 오누이처럼 늙어가는 아주 밋밋한 밤의 연속이다. 그러기에 밤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사연을 담아 찾아들곤 한다.

이십 대를 수놓던 나의 밤은 특별했다. 밤이 새도록 친구들과 실존이란 무엇이냐는 논제에 심취하여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세상의 모든 고민을 혼자 짊어진 젊은이처럼 시답지 않게 건방을 떨며 밤을 즐기곤 했다. 술을 핑계 삼아 말도 안 되는 사랑과 고독을 난발하며 어설픈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풋내 나는 혁명가의 밤이었다고. 그 시절 밤은 내 마음도 몰라주고 여명을 기다리고 있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야속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곤 했다. 그렇게 순간처럼 느껴지던 시간이 지나가고 혼자가 되었을 때, 난 지독한 고독에 휩싸이고 외로움을 몰고 오는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 끝없이 묻곤 했다. 내 소리는 지친 메아리가 될 뿐. 지금에서야 나 자신을 토닥이며 우쭐대곤 한다. 그래서 완벽한 밤을 만들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반려자를 찾는 것이었을까.

결혼 후, 밤이 외롭고, 고독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달콤하고 원색적인 밤에 충실했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닌,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보부아르의 말처럼 나는 남성과 동등한 관계에서 여자의 길을 간다는 것이 힘들었다. 한 남자에게 사랑받으며 편안함을 추구하는 편이 더 쉬운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 밤을 즐기면서 살았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게다. 나는 편안한 삶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립적인 삶을 외면하고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십 문턱에 찾아온 나의 밤은 길고도 힘들었다. 어머님은 밤마다 힘들어하셨다. 밤이 되면‘암’이란 놈이 어머니의 몸에서 기지개를 켜고 어슬렁어슬렁하며 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몸속에 뿌리를 내린 긴 혈관의 길이만큼이나 길고도 긴 밤이었다. 그때처럼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던 적이 내 생에 또 있었을까 싶다. 혹독하게 추웠던 날이 지나고 나와 가족에게 따뜻한 봄의 햇살처럼 안온한 밤이 문지방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잊고 살았던 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다. 제주도에 살면서부터 더 하는 것 같다. 이젠 밤에 찾아온 고독을 쫓아내고 싶지 않다. 안간힘을 쓰며 이겨 보려고 하는 것보단 친구 하고 싶다. 밤과 단둘이 마주해 본 적이 없는 이는 밤이 얼마나 다정하며 따뜻한 친구라는 것을 알 리 없다. 그래서 나는 밤이여 어서 오라고 하며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을 덮고 노트북에 손이 간다. 깊은 밤, 사위는 캄캄한 암흑으로 접어들고 밤 한가운데 나는 홀로 앉아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나를 그리고 싶어졌다. 지금, 나도 모르는 내가 그려지고 있는 밤이다. 나는 주인공이 된다. 내 글 속에서 수많은 또 다른 내가 되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말이다. 봄도 가을도 아닌 중년의 고갯마루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 본다. 조용히, 나만의 밤에 빠져든다. <수필가 최연실>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 미국으로 이민 간 언니를 대신해서 시상식에 갔다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생활수필반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2018년 수필가로 등단했다.

- 2018년 수필과 비평 등단
- 한국 언론인 총 연대 편집기자
- 서울 서부지부 원석문학회 회원
- 제주 백록수필 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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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상 2022-10-11 12:16:46 | 112.***.***.220
지난 회차 이후 오랜만에 글 올려주셔서 너무 반가운 마음에 푹 빠져들어 읽었습니다. 오늘도 공감가는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마음의 양식 얻어갑니다. 저만 알고싶은 글 맛집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