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실의 문학산책] (12)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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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실의 문학산책] (12)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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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가 아닌, 어떻게 살고 싶어서 글을 쓴다.

글을 통해 내가 몰랐던 내 얼굴을 보기도 하고, 그려 내기도 한다. 그래야 좀 더 따뜻하고, 성숙 된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에서의 풋풋한 삶을 사랑스런 언어로 그려내는 글을 쓰고 싶다." <수필가 최연실>

어제는 초복이라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좀 한답시고 중닭 두 마리를 사 왔다. 그리고 전복도 챙겼다. 남편이 좋아하는 은행을 듬뿍 넣어 시중에서 이만 원이나 한다는 전복삼계탕을 끓였다. 실은 제주에서 생활하고 있었기에 서울에서 복날을 챙기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른다.

“은행 좀 많이 넣으라고 말했는데?”

“그래서, 당신 닭 배 속에는 은행만 넣었어요.”

잠자코 먹으면 좋으련만 국물이 적다는 둥 말도 많았다. 더운 여름날에 두어 시간 불 옆에 있다 보니 몸은 땀으로 범벅이고, 마음은 화씨 백도를 넘나들고 있었다. 나는 남편과 한 상에서 같이 앉아 식사할 생각을 하니 얼굴에 화기가 올라왔다. 더불어 갑작스레 머릿속을 스치며 지나가는 검은 그림자. 내가 이 사람하고 천년만년 함께하고 싶다고, 이 더운 날에 전복까지 넣어 가며 삼계탕을 끓였을까. 나는 더위를 먹은 게 확실했다.

폭염이 계속되던 다음 날, 작은딸과 셋이 먹는 아침상이 단출하다. 어제 먹다 남은 닭백숙을 다시 올렸다. 오이소박이와 배추김치, 오이지와 마른 새우볶음이 전부였다. 남편은 어제 저녁에 내 손바닥만 한 전복을 두 개나 먹고 물리지도 않았는지 순식간에 남은 한 개를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다. 몸에 좋은 것만 챙기는 남편이 곱게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마트에서 사 온 자두를 깎아오라고 보챈다. 언제부턴가 남편은 고기도 잘게 잘라야하고, 과일은 껍질도 벗겨야 했다. 나는 제일 딱딱하고 덜 영근 것을 부러 찾아 접시에 담아 내왔다.

“뭐가 이리도 시고, 딱딱한 거야?”

“당신 신 것도, 딱딱한 것도 못 먹는 것 보니 늙었네요. 나는 맛만 좋은데.”

연이틀 동안 속상하고 답답했던 응어리를 토해내고는 뭐가 그리도 꼬숩던지 얼굴에 보조개가 생겼다.

나는 지금껏 매일 가족을 위해 밥상을 차렸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아침 밥상을 차리는 것에 대해 고민했었다. 육체와 정신이 따로 분리되어 사는 삶, 이 지겨운 의식이 싫었다. 내 이성은 휴일이야 하는 데도 몸은 오래 된 습관처럼 새벽부터 부엌으로 향했다. 단 한 번만이라도 간편하게 우유와 콘플레이크로 해결하면 좋으련만, 찌개와 국을 끓여야 했고, 식탁에 갓 무친 나물을 올려야 했었다. 스물다섯 해나 반복해 온 이 지긋지긋함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그중에 다섯 해는 어머님의 병시중으로 인해 배가 되다 보니 그 마음은 더욱 간절했다.

어느 날 거울 앞에 선 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울 속에 내가 나를 보고 웃고 있지만, 웃는 모습이 슬퍼 보였다. 한편으론 가증스럽기까지 했다. 어느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친척들이 너처럼 복 있는 며느리도 없다며 부러워했다.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있고, 실상 내 이름으로 된 문서 하나를 거머쥐지 못한 내가 그리도 부러웠을까.

어느 날 남편이 내게 물었다. “돈을 주랴, 자유를 줄까?” 당시 나는 일탈이 절실했기에 자유라고 말했다. 그리고 남편의 레이다 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바다 건너 제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제주에 살며 집에 가는 횟수도, 남편을 보는 일도 점점 줄어들면서 조금이나마 행복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거다.

다시 돌아온 서울 집, 즐겨 입었던 원피스인데도 어색하기만 하다. 어깨의 뽕이 촌스러워 보인다. 주렁주렁 달린 레이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신발장을 열어보니 콧대 높은 구두만 가득하다. 그중에 제일 아끼던 것을 꺼내 싣고 서 있으려니 몸이 뒤뚱거린다. 이제는 이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버릴 때도 됐건만. 질기다.

어느 작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친구를 만나 술과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5분 정도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 다시 허기가 느껴져 오는 길에 먹을 것을 산다면, 온 종일 내가 뭐 했지? 하는 생각을 한다면, 그 친구는 다시 만날 필요가 없다. 그와 반대로 오는 길에 책 한 권을 사고 싶다던 지, 집에 가서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다던 지, 심지어 내일은 뭘 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면 그 친구하곤 지속적인 만남과 우정을 이어가라는 말이었다. 과연, 남편은 어디에 속하는 걸까? 아마도, 전자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같은 길을 걸어야 할 내 인생의 동무가 아니던가.

습하고 더운 여름밤, 도시의 불빛 때문인지 마음이 답답하다.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들고 은행 몇 알을 볶아서 식탁 위에 놓았다.

“여보! 빨리 나와요.” <수필가 최연실>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 ⓒ헤드라인제주

[최연실 수필가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 미국으로 이민 간 언니를 대신해서 시상식에 갔다 다시 꿈을 꾸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생활수필반에서 공부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2018년 수필가로 등단했다.

- 2018년 수필과 비평 등단
- 한국 언론인 총 연대 편집기자
- 서울 서부지부 원석문학회 회원
- 제주 백록수필 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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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맘 2022-08-13 10:52:26 | 112.***.***.220
작가님 글은 오감이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전복과 은행을 잔뜩 넣은 백숙도 시큼한 자두도 미각을 자극하면서 글의 맛을 살려주네요 참 타고 나신듯^^오늘도 잘 먹고 아니 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