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인 현택훈, 그의 눈에 비친 제주가 다채로울 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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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인 현택훈, 그의 눈에 비친 제주가 다채로울 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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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예술가, 섬에 '혼'을 불어넣다 - (4) 제주시인 현택훈

제주도는 환상의 섬이라고 불린다.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그 지역 특유의 자연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고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제주의 자연은 계절이 바뀌면 또다시 제 모습을 새롭게 바꾼다. 제주가 물리적으로 고립돼 있어도 이렇게 다채로울 수 있는 이유는 제주 안에도 수많은 제주가 있기 때문이다. 제주의 제주 그것은 자연일 수도, 문화일 수도, 역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건 역시나 사람이다. 사람들이 제주를 환상의 섬으로 생각하게 된 연유에는 섬에 대한 제주 지역민들의 애착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서도 이 섬을 유독 각별하게 생각하며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를 배경으로 독창적인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제주독립예술가들이다.

신예부터 원로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그들의 예술적 열망이 제주에 특별한 혼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제주시인 현택훈 ⓒ헤드라인제주
제주시인 현택훈 ⓒ헤드라인제주

제2공항, 동물테마파크, 드림타워, 강정해군기지, 그리고 제주4.3 등 제주의 특수한 상황을 얘기하는 공동체적인 문학 작품을 펼쳐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시를 쓰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제주를 내밀하게 개척해 가는 시인이 있다. 순둥순둥하고 느릿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내면은 제주에 대한 애정과 시에 대한 열정으로 사시사철 활활 타오르는 사람, 그는 바로 현택훈(48) 시인이다.

지난 11일 현택훈과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그를 오래전부터 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세심하고 정성스러웠던 그였기에 첫 대화임에도 불편함보다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웃사촌처럼 친근하고 정감 가는 인상 덕분에 인터뷰 당사자인 그에게 오히려 얘길 털어놓게 되는, 주객이 전도된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연출되기도 했다.

그는 다양한 수상 이력도 갖고 있다. 지난 2005년 '지용신인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하고 2007년에는 '시와 정신'을 통해 정식적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2013년에는 '제1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시부문에서 당선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또한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와 음악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 사전 형식의 산문집 '제주어 마음사전', 동화집 '제주4.3은 왜?' 등 다수의 작품을 출간하기도 하다.

작품들은 대개 사람들이 평소 생각하는, 알고있는 제주가 아닌 시인 현택훈의 시각에서 바라본 제주의 독특한 점을 다뤄 매니아들에겐 굉장히 '핫'하다.

현재는 팟캐스트 '시활짝'을 진행하고 있으며 서귀포 호근동에 있는 '시옷서점'의 대표와 '폭낭작은도서관'의 사서직을 맡고 있다. 종종 문화센터에서 '시창작교실' 수업도 한다. 그러면서 가슴 한켠엔 자그마한 헌책방을 '언젠간' 차리겠다는 꿈을 품고 있는 예비 창업자이기도 하다.

현택훈 시인. 시옷서점에서. ⓒ헤드라인제주
현택훈 시인. 시옷서점에서. ⓒ헤드라인제주
시옷서점과 마을 아이들ⓒ헤드라인제주
시옷서점과 마을 아이들 ⓒ헤드라인제주

혹자는 이런 얘길 들으면 현택훈을 어마어마한 야망과 꿈을 갖고 있는 시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하는 것만큼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시옷서점은 사전에 연락을 주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다. 하루종일 책방을 지키고 있을 만큼 많은 손님이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서 그곳을 마냥 지키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도서관 또한 마을에 작은 규모로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일들이 오가진 않는다.

그래도 그는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할 수가 없다. 시옷서점에는 이 섬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노래한 제주인들의 시집이 진열돼있다. 또한, '시옷'에 새겨진 시구는 팍팍한 현실과 별개로 아직도 뜨겁기만 하다.

현택훈은 이것들을 돈이라는 이유로, 생계라는 이유로 편히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제주의 더 다양한 모습을, 제주를 애뜻하게 생각하는 시인들의 마음을 단 한 사람에게라도 전하고 싶은 게 그의 마음이다. 

도서관 사서 또한 마찬가지다. 그곳을 찾아오는 아이들을 볼 때면 제주의 희망찬 미래를 보는 것만 같아 현택훈은 선뜻 '더 돈이 되는' 일을 구할 수가 없다.

그런 현택훈에게 진짜 하고 싶은 일은, 꿈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며 다소 쌩뚱맞은 대답을 했다. 그에게는 야망보단 순수함이 더 어울렸기 때문에 그의 대답에 조금 어리둥절 했다.

현택훈은 "이번 생에서 다른 방법으로는 부자가 될 수는 없고...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혹시나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제주에 관련된 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이 농담처럼 들리진 않았는데 그렇다고 굳게 다짐하고 얘기한 것처럼 들리지도 않았다.

그는 이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지역에서 사는 의미를 늘 고심해야 한다. 제주에 대한 문학 작품을 펼쳐야 한다는 의무감과 섬 문학의 의미는 평생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라고 했다.

그말을 듣고 현택훈의 진짜 속내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그만큼이나 제주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대중들에게 시로써 들려주고 싶은 제주의 또다른 모습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제주시 도련동 '수상한집'에서 시토크 후 사인하는 현택훈 시인 ⓒ헤드라인제주
지난해 제주시 도련동 '수상한집'에서 시토크 후 사인하는 현택훈 시인 ⓒ헤드라인제주

현택훈 시인은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도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남들 다 좋아하는 음악이 뭐가 대수냐고 물을 수도 있겠으나, 유년시절 학업도 소홀할 만큼 음악이 음악이 좋았다. 그는 라디오로 EBS 교육방송을 듣다 어느 순간부턴 교육방송 대신 음악을 듣는 일이 잦아졌고 '팝송대백과사전'을 정말 백과사전처럼 달달 외우고 다녔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과 사교적으로 지내거나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것보단 같은 노래를 수십번 반복해서 들으며 혼자 조용히 감상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았다. 그때를 회상하던 현택훈은 "어렸을 땐 음악이 너무 좋아 진지하게 레코드가게 주인을 꿈꿔왔다"고 얘기했다.  

이런 사연을 접하면 그의 음악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는 어느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현재까지도 제주 CBS 라디오 시사매거진에서 매주 '알 수 없는 음악가'로 출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음악을 접해오며 자기만의 세상을 구축해온 덕에 그렇게 음악에 대한 다양한 얘길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음악은 시인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음악 중에서도 시적인 가사가 있는 음악은 모조리 찾아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음악이 좋은 것인지 시가 좋은 것인지 모를 정도로 두 세계를 수없이 오갔다. 

그러던 20살 무렵 그는 자주 찾아가는 우당도서관 어느 코너에 출판사별로 시집선이 나열된 것을 봤다. 조금씩 시를 접해오던 현택훈은 마침내 "이곳이 내 자리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홀로 시를 읽고 쓰길 반복하며 시인이란 타이틀에 조금씩 다가갔다. 

하지만 시인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현택훈은 시인이 되기 전에 수많은 난관을 넘어야 했다. 젊은 시절 학원강사, 초등학교강사, 직업군인 등을 하며 이리저리 헤메다 28살에 비로소 문예창작과 학부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20대 후반에 대학 신입생이 된 현택훈은 마냥 행복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토록 바라던 문학 공부를 원하는 만큼 실컷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원동력은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수료까지 이어졌다.

이후 그는 본격적인 시인의 길을 걷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그 시기는 동시에 자신의 '시적 정체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에 빠지게 된 시점이기도 했다. 

지난해 서귀포시 대정읍 작은책방 '이듬해봄'에서 진행된 북토크, 현택훈 시인 옆은 아내인 김신숙 시인이다.

그러다 어느날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게 됐다. 시 '곤을동'으로 '제1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시부문'에 당선된 것이다. 그날 이후로 현택훈은 시인으로서 자신이 걸어가야할 길을 알게 됐다.   

현택훈은 4.3평화문학상 수상할 적을 상기하면 늘 깊은 상념에 잠기곤 했다. 

그 순간을 얘기해달라 했을 때 그는 "그 시의 배경인 곤을동은 4.3으로 인해 지금은 없는, 고향 화북의 잃어버린 마을이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뒤늦게 4·3을 공부하면서 주변의 4·3흔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놀던 화북 바닷가가 지금은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더 마음에 와 닿는 시를 쓸 수 있었고 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부끄러움이 앞선다.

현택훈은 "상을 받을 때 많이 부끄러웠고 지금도 그렇다. 그 때는 제주작가회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선배 문인들이 오랫동안 4·3 진상 규명, 4·3문학 활동을 해오던 터라 내가 받아도 되는 상인가 매일 생각했다"고 얘기했다.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 제주 4.3에 있어 확고한 신념이 있다. 현 시인은 "4·3은 신축민란처럼 짓밟혀 살아온 제주도 사람들의 저항이었다고 생각한다. 4·3의 명명은 항쟁이 돼야 하며, 당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잘못에 대한 확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금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제주도에만 국한하지 말고 오키나와, 베트남, 대만 등 비슷한 일을 겪은 곳과 연대해 슬픔을 서로 위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시인의 기질이 불의 앞에서는 더 또렷해지는 것이었다.

제주4.3에 대한 현택훈의 확고한 신념은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됐다. 평범한 사람들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평범함에서 특별함을 보는 시인의 성향 때문이지 그는 점점 희미해져만 가는 이 섬의 공동체 의식에 늘 깊은 문제의식을 가져왔다.

그는 어느 날엔가 마라도에서 전국 최초로 발견된 새에 대한 시 '조합원'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시가 현택훈의 공동체 의식을 가장 잘 드러낸다.

동백나무가 가입한 조합에
붉은가슴딱새도 가입되어 있지
하지만 우리는 서로
같은 조합원인지도 모르지
그저 바닷가를 따라 모여 살 뿐
...

같은 조합원이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낯설게 바라보지
그래서 우리는 조합원이지
처음 만나든 오랜만에 만나든
악수를 나누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를 모르지

...

-시 '조합원' 중에서

현택훈은 "시인의 길을 걸으면서 내가 살고 있는, 내 주변을 이루는 것에 대해 특히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이어 "자연의 섬 제주에선 아무리 작은 생물조차도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데 같은 섬에 살아가는 사람도 마찬가지여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레 좋은 환경이든, 나쁜 환경이든, 평범한 마을이든, 제2공항, 동물테마파크, 드림타워를 둘러싼 곳이든 공동체를 이루는 모든 곳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현택훈 시집 '나는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헤드라인제주
현택훈 시집 '나는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헤드라인제주

그런데, 공동체에 대한 현택훈의 관심은 종국엔 아이러니하게 개인적인 '사적인' 삶에 닿게 됐다. 그는 자신의 시집 중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이 책을 해설한 비평가가 '현택훈의 사적인 제주도'라고 평한 것이 너무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성산일출봉은 공적인 면에선 누구에게나 알려졌지만 사실 각 개인마다 지극히 사적인 성산일출봉이 있지 않은가"라며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오롯한 제주도가 있다는 걸 나도 책을 출간하면서 깨닫게 됐다"고 했다.

공동체의 가치를 발견함과 동시에 온전히 사적인 영역까지 개척해내는 일. 사람들은 너무 다른 두 길을 걷는 현택훈을 보며 어리둥절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반대의 길은 결국엔 닿기 마련이다. 그에게 이 둘은 전혀 별개의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공동체에 대한 현택훈의 관심과 열의는 현택훈이라는 한 개인의 '사적인'시각이 담겨져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공동체의 길'과 '사적인 길'을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었던 것이다.

현택훈은 이 일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제주시 여행에 대한, 골목길의 벽화나 마을 어귀에 있는 바위의 사연에 대한 글을 자신만의 사연을 담아 출간 할 예정이다. 또한, 제주의 생태, 자연, 역사, 문화가 바탕에 있는 동시집을 준비 중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현택훈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제주에 사는 우리 모두가 평범한 일상을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택훈 시인을 포함해 앞서 만난 이상, 김한결, 한진오 등 제주의 문화 예술가들의 작품과 삶을 통해서 그러하듯이.

제주가 다채로울 수 있는 이유, 환상의 섬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이 점에 있다. 공동체에 안에는 각기 다른 '혼'이 가지각색으로 모여 있기 때문이다. 

즉, 공동체 안에 포섭돼 있는 우리 모두는 자기네 삶에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 화려하고 독자적인 예술가인 것이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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