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따라' 걷다 제주 전통굿 만난 한진오, "굿은 신앙이고 예술이자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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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 걷다 제주 전통굿 만난 한진오, "굿은 신앙이고 예술이자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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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예술가, 섬에 '혼'을 불어넣다 - (3)중진예술가 한진오

제주도는 환상의 섬이라고 불린다.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그 지역 특유의 자연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고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제주의 자연은 계절이 바뀌면 또다시 제 모습을 새롭게 바꾼다. 제주가 물리적으로 고립돼 있어도 이렇게 다채로울 수 있는 이유는 제주 안에도 수많은 제주가 있기 때문이다. 제주의 제주 그것은 자연일 수도, 문화일 수도, 역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건 역시나 사람이다. 사람들이 제주를 환상의 섬으로 생각하게 된 연유에는 섬에 대한 제주 지역민들의 애착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서도 이 섬을 유독 각별하게 생각하며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를 배경으로 독창적인 예술활동을 하고 있는 제주독립예술가들이다.

신예부터 원로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그들의 예술적 열망이 제주에 특별한 혼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일 제주종합경기장 인근 카페에서 만난 한진오 ⓒ헤드라인제주
지난 10일 제주종합경기장 인근 카페에서 만난 한진오 ⓒ헤드라인제주

두 어깨엔 자신의 상체만한 가방을 삐딱하게 걸고 다소 부산한 차림에 왜소한 체구로 터벅터벅 자유롭게 거리를 거니는 한 중년 남성이 있다. 겉은 평범하나 어딘가 특이한 구석이 있는 그를 보면 어느 누군가는 이 사람을 예술가라고 상상할 수도 있다. 제주 전통굿의 대가 한진오다.

지난 10일 제주종합경기장의 인파로 북적이는 어느 카페에서 한진오를 만났다. 그는 스스로에 대해 "딴따라죠 뭐"라고 농담처럼 소개했다. 하지만 말이 끝나고도 입가에 지워지지 않는 희미한 미소를 보면 그에게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진오는 현재 제주 전통굿의 장인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져있다. 하지만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예술 창작 작업을 해오고 있기도 하다. 희곡작가, 영화 연출가, 공연 기획가, 래퍼, 문학작가, 민속학자 등 한진오 하면 따라 붙는 수식어들이 즐비하다. 또한, 그는 문화센터에서 지역민들에게 제주 신화와 민속을 가르치기도 하며 수많은 공모전에서 대업을 이루기도 했다. 한진오는 제주굿 뿐만 아니라 여러 예술 장르의, 제주 문화의 대가이기도 하다.  

한진오는 사춘기 시절 문학과 그림을 좋아하는 예술소년이었다. 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평범한 세상이 아닌 세상의 이면을, 세상 끝의 아득한 곳을 문학과 그림으로 표현하길 좋아했다. 하지만 소년의 꿈과 예술적 재능을 펼치기엔 가난이란 현실적인 상황이 그의 앞을 매번 가로막았다.

그렇지만 한진오에겐 가난의 무게보다 예술적 열망이 더 컸다. 그의 타고난 성향은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예술을 향한 그의 열정은 내면 깊은 곳에서 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진가가 발휘된 때는 한진오가 대학에 입학한 20대 초반이었다.

그는 학교 풍물패에 가입해 전통탈춤과 풍물 등 민속놀이에 빠지게 됐다. 교내외를 가리지 않고 온갖 장소에서 공연과 퍼포먼스를 하며 자신만의 방식대로 세상과 교감했다. 당시 한진오에게 예술은 삶이란 질문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예술에서 정치적인 것을 봤다. 자유롭게 예술을 하고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선 정치적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게 된 것이다. 때는 1988년. 한진오는 '운동권'이란 거대한 너울에 들어섰다.

공안당국에 끊임없이 취조당하고 끌려 다녔다. 경찰서와 헌병대에 매일 출석하며 세월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화염병을 던지고 도망다니길 반복했다. 예술은 하고 싶은 일이지만 투쟁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때를 회상하며 한진오는 "예술은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다는 걸 경험했다. 일상과 정치와 예술은 언제나 같은 울타리 안에 있다"고 말했다.

그가 20대 후반에 제주 전통굿에 빠지게 된 연유도 이 점에 있다. 한진오는 "신앙은 억압받는 자들로부터 태어났다. 이게 민속신앙이다. 나는 특히 제주도 고유의 굿 문화에서 예술적 영감과 함께 사회운동의 길을 봤다"며 제주 전통굿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지난 2019년 비자림로에서 진행된 굿 퍼포먼스. 사진 이재정 ⓒ헤드라인제주
지난 2019년 비자림로에서의 굿 퍼포먼스. 사진 이재정. ⓒ헤드라인제주
지난 2019년 비자림로에서 진행된 굿 퍼포먼스. 사진 이재정 ⓒ헤드라인제주
지난 2019년 비자림로에서의 굿 퍼포먼스. 사진 이재정. ⓒ헤드라인제주

그는 "탈춤, 풍물 .. 다 좋은데 제주다운 건 아니었다. 제주만의 고유한 예술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주의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제주의 예술을 알아야 했던 것이다.

한진오가 예술에서 가장 큰 영감을 받았던 인물도 하필 피카소, 백남준, 마르케스였다. 이들은 모두 원시주술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는 "'예술가는 무당이 돼야 한다'는 백남준의 말에 굉장히 공감이 갔다"며 이어 "많은 예술가들이 알게 모르게 신앙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사연들을 안고 그렇게 한진오는 제주 전통굿에 몰두하기로 했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을 전수받으며 삶의 원천으로 삼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하지만 심방의 길을 실제로 걷진 못했다. 심방보단 예술가의 자유로운 성향이, '딴따라' 기질이 그의 운명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그는 몇 차례 굿을 치루고 하늘에 허락을 받아 결국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그렇다고 굿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한진오는 굿을 현실에서 예술로 다시 구현했다. 그가 평소 주장하던 신앙, 정치, 예술이 드디어 한 곳에서 접목된 것이다.

한진오는 그렇게 비자림로, 강정해군기지 등 제주의 문화와 전통, 환경이 파괴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열성적으로 퍼포먼스를 했다. 제주 굿으로 제주의 혼을 지키려했다. 제주적인 것을 지켜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예술을 통한 정치적인 행위로 표출된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했던 작업들은 전부 제주를 지키려는 작업들이었다. 난개발이 진행되는 곳, 제주를 지켜야하는 곳에서 퍼포먼스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살았던 이유는 제주사람으로서의 소명을 다하기 위함이다. 제주의 아픔, 슬픔을 전하면서 동시에 기쁨을 그릴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소명이 지금도 나를 따라 다닌다"고 했다.

지난 2018년 사남굿설문대 탈장르 퍼포먼스. 사진 박정근. ⓒ헤드라인제주
지난 2018년 '사남굿설문대' 탈장르 퍼포먼스. 사진 박정근. ⓒ헤드라인제주
지난 2018년 사남굿설문대 탈장르 퍼포먼스. 사진 박정근. ⓒ헤드라인제주
지난 2018년 '사남굿설문대' 탈장르 퍼포먼스. 사진 박정근. ⓒ헤드라인제주

예상치 못한 난항을 겪기도 했다. "굿에 정통한 사람은 여럿 있는데 그걸 논리적으로,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직접 공부해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다. 또한 그것을 대중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책도 여러권 출간했다.

그렇게 출판된 책이 '사라진 것들의 미래', '모든 것의 처음, 신화' 등이다. 돌고돌아 그를 예술가의 길로 들어서게 했던 글의 세계에 다시 닿게 된 것이다.

한진오는 현재 얼마 전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몸이 많이 좋지 않다고 했다. 예전처럼 굿을 하기엔 여러모로 부담이 된다고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이젠 젊은 친구들한테도 밀리고 해서 나는 다른 거 해야지, 가만히 글이나 써야지"라며 특유의 익살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고나서 그의 눈망울은 어딘가 슬프게 흔들렸다.

그럼에도 그의 예술에 대한 열망은 육체적인 한계조차 뛰어넘었다. 신체의 제약은 그의 창작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진오는 굿 대신 다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학창시절 매료됐었던 문학을 다시 시작할 계획이라고 했다. 또한 오는 6월에는 제주도의 지리를 알리는 책도 출간될 예정이라고 했다. 동시에 그는 연출가로써 영화제작도 준비 중이다. 지난 2019년도부터 준비해온 4.3다큐멘터리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굿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으나 애정만큼은 여전하다. 제주 굿을 대하는 사람들에게 당부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굿이 왜 발생하는지 이해를 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이 사회의 단절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며 "모두 정치적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제주 전통굿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데 반해 현실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다들 그저 소재주의적, 경제주의적, 문화사업적, 행정관료주의적으로만 볼 뿐이다"라며 걱정 어린 마음도 내비쳤다.

계단에 걸터앉아 있는 한진오 ⓒ헤드라인제주
계단에 걸터앉아 있는 한진오 ⓒ헤드라인제주

한진오에게 제주도 굿은 단순히 일회적인 예술적 퍼포먼스, 전통의 계승이 아니다. 그에게 굿은 신앙이자 예술이고 정치다. 예전처럼 혼을 다해 굿을 하던 시기는 다시 올 수 없지만 그럼에도 제주 전통 굿은 여전히, 앞으로도 그의 정체성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리는 한진오를 예술가, 민속학자라고만 부를 수는 없다. 그가 걸어온, 걸어갈 길을 보면 문화인, 정치가, 사회운동가, 학자라고도 부를 수 있다. 이 말은 즉, 그를 어떤 말로도 규정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진오라는 하나의 세상 안에 수많은 세상들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삶은 매 순간이 긴박하고 그만큼 다채로웠는지도 모른다. 한진오만큼이나 입체적인 인물이 어디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한편, 제주에는 한진오와 그리 멀지 않은 시대에 살았던 시인이 한 명 있다. 그런데 그는 타오르는 불 속에서 온 몸을 뜨겁게 태우며 살아온 한진오와 달리 타오르는 불을 쬐며 세상의 온기를 세심히 관찰해왔다. 다음 편에 소개할 현택훈이다. 그는 "제주는 누구에게나 시적이고 동시에 사적이다"고 넌지시 웃으며 얘기했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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