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남편들이여, "'공처가 철학'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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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남편들이여, "'공처가 철학'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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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홍기확 / 서귀포시 동홍동주민센터
홍기확 / 서귀포시 동홍동주민센터. <헤드라인제주>

과거 서울에 살 때 전국으로 답사여행을 즐겨 다녔었다. 대부분은 가족들과 여행을 했지만 한 달에 한 번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경희대 박물관에서 주최하는 답사여행을 갔던 기억이 난다.

2001년 아내와 처음 참가할 때는 풋풋한 대학생이었는데 세월이 가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 마지막 답사여행까지 한다면 8년 넘게 경희대 박물관 식구들과 교수님들, 시인, 화가 등 쉽사리 만나기 힘든 사람들과 교류했다. 

당시 답사여행의 구성원 40명 중 1/3 정도는 60세 이상의 노교수님들이었다. 그런데 이 분들, 참 예쁘게 답사를 다니셨다. 남녀 교수님들 모두 아내, 남편을 같이 데리고 나오시는 것이었다. 

산성(山城)을 답사할 때는 두 분이 서로 손을 내밀어 오르고, 오래된 절의 오솔길을 걸을 때는 두 분이 손을 꼭 잡고 걸어가셨다. 이것 참. 예쁘다. 부부의 신뢰와 사랑이 물씬 느껴지고 우리 부부도 꼭 저렇게 예쁘기 살아야지 하고 다짐한다.

청대 말기에 태어난 이종오라는 학자는 그의 저서 『후흑학(厚黑學)』에서 '공처가철학'을 펼치며 이런저런 공처가에 관한 사례를 늘어놓는다.

중국 명대(明代)의 명장(名將) 척계광은 아내를 무척 두려워했다. 그러나 부인이 온다는 말을 들으면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느 날 왜구가 쳐들어왔다. 척계광의 병사는 수만에 불과했고 왜구는 당대의 첨단무기로 무장한 강적이었다. 척계광은 고민에 빠졌다. 그때 부하들이 한부(悍婦, 사나운 아내)라고 불리는 아내가 들어와서는, '왜구가 쳐들어왔는데 뭘 꾸물거리고 있느냐'고 호통을 쳤다. 척계광은 당황해서 바로 갑옷을 입고 왜구를 치러 나갔다. 물론 전투는 승리였다.

그가 지은 기효신서(紀效新書)에 있는 속오군과 삼수병제는 조선시대 군제(軍制)의 기본이 되었다. 또한 그의 공처(恐妻)는 명나라를 구했다. 조선과 중국에 모두 기여한 대표적인 공처가가 아닐 까 한다.

한 가지 사례를 더 들어본다.

중국 당나라의 방현령은 당 태종과 함께 정관지치(貞觀之治)라고 불리는 당나라의 전성기를 만든 인물이다. 그런데 방현령은 아내를 역시 두려워했다. 하루는 항상 아내의 박해를 받았으나 속수무책이었던 방현령이 당 태종에게 아내를 제압해 주도록 하소연했다. 그러나 당 태종은 방현령의 부인을 만나 그녀의 몇 마디에 곧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방현령에게 '부인은 보기만 해도 무서우니 이후 그녀의 말을 잘 따르는 것이 상책일 듯싶소'라고 말했다. 

희대의 명장 척계광, 치밀하기로 유명했던 책사 방현령. 이들은 왜 아내를 두려워했을까? 

방현령의 아내와 관련된 일화를 보면 왜 성공한 사람들이 아내를 두려워했는지, 다시 말하면 왜 아내의 판단을 신뢰하고 아내의 말을 따랐는지 알 수 있다.

방현령의 신분이 미천할 때 한번은 그가 병이 들어서 생사를 오갔다. 그래서 그는 부인에게, '내가 병이 들어 곧 죽게 생겼다. 너는 아직 젊으니, 과부로 지내지 말고, 새로 사람을 찾아라. 그리고 그 사람에게 잘해줘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부인은 울면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더니 자기의 눈알을 하나 빼내어 방현령에게 보여줌으로써 자기는 절대 두 남자를 섬기지 않겠다는 결심을 나타낸다.

이런 아내가 있다면! 

아내는 가끔씩 나에게 말한다. '아무래도 세상은 여자가 만드는 것 같아' 말을 하는 재간은 좀 있는 편이지만 이거 원. 아내의 한마디에 답변이 궁색하다.

밖에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이미 유채꽃은 만발하고, 이 비가 그치면 벚꽃도 흐드러질테다. 4월이다. 봄이다. 

누가 아는가? 올 봄이 아내와 함께하는 마지막 봄이 될지. 아내와 두 손을 꼭 잡고 걸어볼 심상이다. <헤드라인제주>

<홍기확 / 서귀포시 동홍동주민센터>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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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2012-03-30 18:21:51 | 211.***.***.28
기자분, 제목 정말 잘 바꿔 놓으셨네요. 안 그래도 제목이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