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코로나 시국으로 서로 간에 거리를 두고 온전한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지금,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길이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치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위에서 전하는 편지>는 그의 블로그에도 실려 있다.
그녀를 만난 건 3월도 다 저물 무렵,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였다. 키가 제법 큰 한 젊은 여성이 센터에 완주증을 받으러 왔다. 얼떨결에 첫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던 중 문득 나중에 만나서 같이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크를 쓰긴 했지만,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으로 보였기에 그녀의 전화번호를 받아두었다. 지난해부터 올레길 위에서 젊은 친구들이 눈에 많이 띈다. 통계로도 잡힐 정도다. 젊은 친구들은 무슨 이유로 올레길을 찾아왔고, 어떤 마음과 시선으로 이 길을 받아들였을지 못내 궁금하던 차였다.
# 둘레길 걸으면서 올레길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와 카톡을 주고받으며 함께 걷기로 약속했다. 올레길을 두 차례로 나눠 19일 만에 완주한 그녀는 4월 2일 한라산 둘레길 동백길 구간을 걸을 예정이란다. 나도 동백길 구간을 좋아하는 데다 동백이 한창 피고 질 무렵인지라 안성맞춤일 듯했다. 우리는 그녀의 차량을 동백길 끝나는 지점에 두고 차 한 대에 동승해서 출발지점인 무오법정사로 향했다.
그녀는 말했다. “올레길은 버스 타고 왔다 갔다 하기는 참 좋은데 둘레길은 버스가 거의 없고 있어도 너무 드물게 와서 이렇게 꼭 자동차로 움직여야 해서 불편해요.”
본디 대중교통편을 이용하기 쉽게 바닷가 중심으로 길을 낸 데다, 몇 년 전 제주도 교통체계가 대대적으로 개편되어 올레길 교통편은 여러모로 좋아졌다. 아마 세계적으로 교통 접근성이 가장 좋은 트레일 가운데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오법정사에서 항쟁기념탑이 있는 코스 대신 법정사지터로 가는 계곡 코스로 안내했더니, 시작부터 감탄사 연발이다. 계곡을 건너 숲길에 들어서자마자 제주도 항일운동의 발상지가 되었던 법정사지터로 추측되는 곳이 나타난다. 그녀가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표지판을 읽는 사이에 난 주변의 동백꽃들과 눈인사를 나눈다. 이곳 둘레길의 동백은 서양식 개량종인 겹 동백이 아니라 죄다 토종 동백꽃, 꽃잎이 하나인 데다 단아한 모습을 한 홑 동백이거나 아기 동백들이다. 그래서 매달린 모습은 더 아름답고 땅에 떨어진 모습은 더 처연하고 애처롭다.
그녀에게 실례가 될 수 있지만 나이를 물었다. 쿨하게, 82년생이란다. 짐작보다 꽤나 연식이 높은 30대다. 우리는 동백꽃이 난분분 떨어진 숲길을 말없이 걸었다. 한참 동안이나. ‘꽃길만 걸으라’는 말을 나는 싫어한다. 인생에서 어떻게 꽃길만 걸을 수 있는가. 너덜 길도, 비탈 길도, 오르막 길도, 내리막 길도, 진창 길도 만날 수밖에 없는데 꽃길만 걸으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자 비현실적인 주문이라는 생각에서. 하지만 이날 우리는 매달린 꽃보다 떨어진 꽃잎이 더 많은 그야말로 끝없는 꽃길을 걸었다.
그녀(이름은 전하나라고 했다)는 아름다운 동백을 즈려밟고 걷는 즐거움에 취해서인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어떤 동기로, 제주올레 완주에 도전하게 됐는지. 그 길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느꼈는지를.
# 소소한 아름다움에 반하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다
제주는 어릴 적부터 수십 차례나 왔었단다. 워낙 산행을 좋아해 한라산을 오른 뒤 하루 이틀 여기저기 관광하는 방식으로 제주를 다녀갔단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더 이상 볼 게 없다는 생각에 휴가를 몰아 해외 트레일을 다니기 시작했더란다. 스위스, 미국,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캐나다,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등등. 그곳에 가면 오로지 산을 타거나 트레일을 걷고 관광은 1도 안 하고 돌아오곤 했더란다.
그러다가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외국에 못 나가게 되었고, 코로나 덕분에 제주올레 길을 완주하게 되었단다(그녀는 ‘덕분에’라는 대목에 힘을 주었다). 병원에서 휴가 수당을 줄 수 없으니 휴가로 소진하라기에 처음에는 2주간, 두 번째는 닷새간 제주에 내려온 끝에 이뤄낸 결실이었다.
하루 휴식을 빼면 18일간에 425km를 걸었고, 그중 이틀은 하루 30km를 걸은 날도 있었단다. 혹시 너무 빨리, 너무 긴 거리를 이동하느라 풍경을 제대로 보고 느끼지 못했을까 걱정됐지만 내 기우였다.
“외국에서 만난 스케일이 큰 풍경보다 제주의 소소한 풍경이 더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걸으면서 굉장히 놀라웠어요. 동서남북, 발 닿는 해안가마다 바다 빛깔과 암반 모양이 다른 것도 신기했고 산방산처럼 여러 차례 가본 곳도 주차장에서 내려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더라고요. 동쪽에서 서쪽으로 걷는 동안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더군요.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아직도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데 집에 돌아와서 화면을 보다가 깜짝깜짝 놀라곤 해요. 너무나 아름답고 새록새록 새로운 풍경에.”
그중에서도 그녀를 가장 사로잡았던 코스는 10코스였다.
“용머리도, 송악산도 이전에 관광으로 다 가봤던 곳이었어요. 그런데 화순에서 시작해 용머리와 송악산이 이렇게 이어진다는 것을 걷고 나서 이해했어요. 예전에 다 끊어진 채로 점처럼 따로 존재하던 장소였는데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이랄까. 그 중간의 여정은 걷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풍경이었어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으로 기뻤다. 그렇다. 서울에서 30여년 지내는 동안 점과 점으로, 개별 관광지로만 존재하고 이해되는 고향 제주가 내내 안타까웠다.
이박 삼일로 대여섯 번 다녀오면 더 볼 게 없는 싸구려 관광지 이미지로 각인되고 소비되는 고향 제주가 못내 서럽고 억울했다. 그런데 젊은 서울 처자 전하나가 이렇게 ‘소소한 아름다움’과 ‘점과 점이 연결된 여정의 아름다움, 선의 미학’을 이해하고 인정하다니 길을 낸 보람이 차고도 넘친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이렇듯 간절히 길에서 위안을 얻는 이유가 궁금해서 그녀의 직업을 파고들었다. 병원에서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작업치료사란다. 대학에서 작업치료학을 전공한 뒤 국가고시 자격증을 따야 할 수 있는 직업이란다. 재활 치료의 한 분야로, 물리치료가 물리적인 기법으로 치료한다면 작업치료사는 환자에게 적절한 도구나 작업을 통해 환자를 재활한단다. 재활 치료가 매우 중요한 데도 속도가 더뎌, 환자도 지켜보는 가족도 힘들어해 가족 전체를 치료하듯 상담하고 돌봐야 하는 일이다. 치료사들도 덩달아 힘들고 지치기 마련이란다.
“그래도 이렇게 자연에서 나무도 보고, 꽃과 눈도 맞추고, 하늘도, 바다도 보고 걷다가 올라가면 한동안 병원에서 버텨낼 힘을 얻는 거죠.”
그녀가 활짝 눈웃음을 짓는다. 화장하지 않으면 병원에 출근하지도, 길에도 나서지 않는 그녀. 화장은 자신감이자 자기만족이라는 그녀답게 완벽한 스킬로 눈 화장한 그녀가 또 다른 꽃처럼 화알짝!!! <서명숙 /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