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례적으로 개최해 온 제주시 읍.면.동 지역단위의 각종 문화예술 행사가 내년에는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제주시가 내년 예산안 편성과정에서 읍.면.동 단위에서 개최돼 온 '작은 음악회'와 같은 행사 예산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대안으로 제시됐던 '찾아가는 문화예술공연' 예산은 도의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기 때문이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결과를 자초하면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본회의를 통과한 제주도의 내년 예산안 최종 계수조정 내역을 보면, 제주시 문화예술과 소관으로 편성됐던 '찾아가는 문화예술공연' 관련 행사운영비 1억원과 행사실비지원금 2억원 등 총 3억원의 예산이 전액 삭감됐다. 

때문에 내년 '찾아가는 문화예술공연'은 전혀 할 수 없게 됐다.

이 사업은 당초 문화예술 사각지대로 꼽히는 지역으로부터 공모 신청을 받아 진행해 왔다. 내년에는 읍.면.동 단위에서 개최하는 문화예술 공연 등이 대부분 중단됨에 따라, '찾아가는 문화예술공연'이 지역주민들의 문화예술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꼽혔다.

실제 제주시청 예산부서 관계자는 <헤드라인제주>와의 통화에서 읍.면.동 행사 중 음악회 등과 같은 지역 문화예술 행사가 사라지게 된 것에 대해 "읍.면.동 문화행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본청) 문화예술과의 '찾아가는 문화예술공연' 등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도의회 예산심사에서 '찾아가는 문화예술공연'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서, 읍.면.동 지역은 자체 행사도, 지원행사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문제는 제주시가 읍.면.동에서 개최해온 지역단위 문화예술행사를 너무 쉽게 포기했다는데 있다. 

제주시는 내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그동안 읍.면.동 소관의 '행사운영비'로 편성해 온 지역행사들에 대한 예산과목을 모두 '민간행사사업보조'로 전면 전환했다. 즉, 행사의 주체를 행정에서 민간으로 전환하고, 민간단체에서 '자부담'을 하도록 했다.

종전에는 지역주민 화합, 문화예술 향유 기회 제공 등의 명분으로 읍.면.동에서 직접 집행해 왔으나, 이번에는 돌연 민간단체에 예산책임을 전가시킨 것이다. 

이 때문에 자부담을 감당할 상황이 안되는 지역에서는 행사 포기로 이어졌다. 올해 읍.면.동 행사운영비로 개최됐던 사업 중에서 내년 예산을 전혀 편성하지 않은 사업은 8개 지역 14개 사업으로 나타났다.

이 중 문화예술 공연으로는 △연동 '관광 연동 길거리 문화공원'(2023년 4000만원) △노형동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행복음악회'(2023년 9600만원) △이도2동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작은 음악회'(2023년 3000만원) △이도2동 '문화가 흐르는 밤'(2023년 5000만원) △삼도1동 '삼도1동 마을사랑 음악회'(2023년 2500만원) △용담2동 '청소년 트롯 가요제'(1억5000만원) 등이 있다.

이들 행사들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주최기관인 동주민센터를 중심으로 자생단체 및 지역주민들의 적극적 참여 속에 기획하고 준비되면서 의미를 크게 했다. 지역특색을 살린 문화행사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행사들이 민간사업으로 전환하면서, 행사를 개최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단체도 없는 상황이다. 자생단체의 경우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안으면서 굳이 행사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한 동주민센터 관계자는 "지역행사 중에서도 역사 문화성이 강하거나 의미가 큰 행사들이 많다"면서 "이러한 행사들은 그동안 읍.면.동과 공동 주최하는 형식으로 개최해 왔는데, 돌연 민간단체에 자부담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과한 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그동안 지역단위 행사 등이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참여해 온 자생단체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통장으로 활동하는 김모씨는 "시청에서는 '찾아가는 행사' 지원으로 대체한다고 하나, 읍.면.동에서 자생단체와 머리를 맞대 함께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거치는 지역의 행사와는 의미나 성격면에서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면서 "지역주민들이 함께하는 행사, 읍.면.동지역의 특색있고, 창의적인 행사는 앞으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제주시 예산부서는 "예산 검토과정에서 읍.면.동 행사 중 어떤 것은 행사운영비로 하고 있고, 어떤 것은 민간보조금으로 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검토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읍면동 행사운영비를 민간보조로 전환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민간보조로 전환한 후 지역단위 행사가 전면 사라지고, 시청 문화예술과의 '찾아가는 문화예술공연'마저 중단되는 상황을 초래한 것에 대해서는 어느 부서에서도 책임있는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한편, 제주시의 어처구니 없는 상황과 달리, 서귀포시의 경우 내년에도 '읍.면.동 행사운영비' 사업 예산을 정상적으로 편성한 것으로 나타나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번 일련의 상황에 대해 도의회에서는 제주시의 '예산 전략의 실패'에 다름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읍.면.동 지역의 활동을 오히려 위축시키고 퇴행시켰다는 비판도 이어진다. 

지역단위 문화예술행사의 의미를 좀더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오로지 '예산 정비' 차원에서 성급하고 경직된 판단이 불러온 참담한 결과이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