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더 이상 '갑'과 '을'이 없어야
상태바
공직사회, 더 이상 '갑'과 '을'이 없어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강문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귀포시지부장

강문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귀포시지부장.<헤드라인제주>
손님을 왕으로 모셔야 하는 대리운전자 입장에서는 누가 뭐래도 ‘을’이다. 그런데 욕설을 퍼부은 갑(손님)의 전화를 용감하게 되받아친 을의 이야기가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이 상황에서 대다수 ‘갑’의 위치에 있는 국민들조차 ‘을’의 편에 섰다. 최근 사회적으로 불거진 ‘갑’의 무리한 횡포와 맞물리면서 새삼 갑·을 논쟁이 뜨겁게 달구고 있는 형국이다.

공직사회에서의 공직자 역시, 국민의 세금을 먹고 산다는 입장에서 영원한 ‘을’이 되어야 하는 것 같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종종 ‘갑’으로 변하기도 한다. 국민 개개인을 상대할 때는 국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처리하기 때문에 그렇다.

계약업무를 처리하는 공직자 입장에선 판에 박힌 ‘갑’란에 인장을 찍고, ‘을’은 깨알 같은 정부표준계약서를 미처 다 읽지도 못하면서 ‘을’란에 인장을 찍는다. 인·허가권을 쥐어주는 입장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양새만큼은 항상 ‘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갑과 을의 위치에 서는 카멜레온에게 ‘친절’의 시작과 끝은 어딘지 아니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서귀포시 당직실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평소 시청의 여러 부서를 찾아오기로 유명한 시민 한 분이 새벽 6시부터 민원실을 찾아와 컴퓨터와 커피를 찾았는데, 전날 연휴 탓으로 자판기 컵이 떨어져 당직근무자에게 조치를 구했던 모양이다. 당장의 조치를 취하기도 어려웠던 당직근무자에게 욕설과 함께 전치 6주의 피해를 입혔던 사건이 전말이다.

당직근무에 임했던 해당 공직자는 날밤을 새며 ‘을’의 입장에서 시민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사명을 다했지만, ‘갑’의 무리한 횡포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 시대 가해자는 더 이상 ‘갑’이 될 수 없을뿐더러 공권력마저 무너지면서 언제까지나 ‘을’로서만 남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 노동조합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려 했으나, 가해자의 신분상 복수의 사회적 약자인 ‘을’의 신분인 점을 참작하지 않을 수 없어 사법부 판단에 맡기는 수순으로 결말을 내었다.

최근 이와 유사한 사회적사건을 계기로 이참에 ‘갑’의 무리한 욕설과 폭력에 속수무책인 ‘을’의 입장도 정리했으면 싶다. 고객 감동을 넘어 ‘졸도’를 이행해야만 하는 콜센터 상담원들, 은행원들, 승무원들, 불친절 낙인에서 벗어나려 ‘오늘도 무사히’를 외치는 대다수 민원공직자들, 언어폭력과 주폭 앞에도 끝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우울증에 시달린 채 목숨을 버린 사회복지공무원과 같은 감정노동자를 동등한 ‘갑’의 위치로 끌어올리려는 매뉴얼 개발이 시급한 이유다.

예컨대 민간 기업에서 이미 도입한 CCTV, 전화녹취시스템 등을 통해 고품격 ‘갑’에게 질 좋은 무한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사례를 들 수 있겠다.

우리 사회를 중심으로 얽히고 얽혀 있는 갑과 을, 찾아온 민원인을 ‘갑’으로 대하지만, 그의 가게를 찾는 순간 그는 ‘을’이 된다.

이제 우리 사회, 특히 공직사회에서 무한한 ‘갑’도, ‘을’도 더 이상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어제의 ‘갑’이 내일은 ‘을’이 될 수도 있고, 이는 네 편도, 내 편도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에서 새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건강해 진다.

<강문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귀포시지부장>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