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기고는 소통의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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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기고는 소통의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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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강문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귀포시지부장
강문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귀포시지부장. <헤드라인제주>

공직자 기고의 세상이다.

칼럼이든, 수필이든 글을 엮어낸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만은 아닐 진데, 세상에 내 생각을 정리하여 발표한다는 것에는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기고는 자기 자신과 부서평가항목에 수치화된 공직환경도 그렇지만, 지면신문과는 별도로 인터넷신문의 발달은 공직자들에게 신작로를 닦아준 셈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안면이 있는 모 신문기자는 공직자의 기고문을 '우후죽순'에 빗대었으나 시정홍보가 주를 이루고 있는 만큼 도민의 알권리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필자는 한 주에 2~3편의 글을 꼭 쓰는 편이다. 한국문인협회와 출신등단지의 월간지, 계간지에도 글을 보내어야 하는 책무도 있지만, 좋은 글은 묻어두는 편이라 이게 옳은 일인지는 솔직히 확신이 잘 안 서고 있다. 우수리로 받은 동전이 서랍 속에서 잠을 자고, 조폐공사는 모자라는 동전을 찍어내는 현상이라고나 할까.

글을 쓰는 문인에게도 여러 가지 의무와 책임이 뒤따르지만, 그 중에서도 한 가지는 '발표된 글은 우려먹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 있다. 신춘(기성)문예에 응모된 글이 낙방되었다 하더라도 다른 문예에 넣을 수 없다거나, 이미 발표된 글을 다시 발표할 수 없는 것은 문인이 갖추어야 할 자질과 덕목이기에 앞서 이는 자신만의 자존심이다.

간혹 필자를 높인다는 경어로 '작가'라는 호칭을 붙여주는데 이는 대단한 결례이다. '작가'란 글을 엮거나 그림, 조각 따위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예컨대 소설가, 드라마작가, 동화작가 등을 일컬을 수 있다. 반면에 시인이나 수필가는 작가로 호칭될 수 없으며, 문인이나 시인, 수필가란 호칭이 정확하다고 본다.

현대에 들어와서 글감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오밀조밀 엮은 운율의 멜로디가 시의 대명사를 이루었다면, 스토리텔링 기법은 도대체 시인지, 수필인지 분간이 안 설 때가 있다. 그럼에도 추상적 감성보다는 사물을 엮어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매력적이란 점에서 현대독자들과 맞아떨어졌다고 보인다.

또한, 수필 역시 정형화된 분량도 무너지는 추세이다. 200매 원고지 15매 분량을 한 편으로 보았던 수필은 갈수록 짧아지면서 글쓰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세상 밖으로 끄집어진 글은 직업적이든, 기고문이든 누군가가 감상해 준다는 것에 고마워해야 할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공직선배 한 분이 나를 만날 때마다 글귀를 전하면서 꼭 평을 해주고 있어 새삼 그 분을 존경하게 됐다는 점에서, 나는 기고공직자에게 짧게나마 꼭 답장을 보내고 있다. 게 중에는 정말 우려내고 싶은 보석 같은 진흙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한다.

이제 공직자의 기고는 단순히 시정홍보차원을 뛰어넘어 도민과의 소통의 한 수단이 되었으며, 나아가 문단발전에도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헤드라인제주>

<강문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귀포시지부장>

*이 글은 헤드라인제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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