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변화 불가피하지만 '정의로운 전환' 필수 ... 해외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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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변화 불가피하지만 '정의로운 전환' 필수 ... 해외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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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 공동기획] ③ EU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 시작으로 유럽 전방위 확산
한국서는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 및 '탄소중립기본법' ... 충남, 전국 첫 '정의로운 전환 기금' 운영
석탄 화력발전소. 사진=픽사베이
석탄 화력발전소. 사진=픽사베이

에너지 전환은 에너지 산업 변화와 함께 그 사회 전체를 바꾸면서 고용, 노동 변화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탄소를 줄이는 과정에서 석탄화력발전소가 문을 닫으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다. 기후위기 정책으로 재생에너지 분야 등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는 반면 기후위기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탄소배출량이 많은 산업에서는 일자리가 사라진다.

전 세계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노력이 가속화하면서 ‘정의로운 전환’ 논의도 확산하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이란 탄소중립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을 보호하며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방향을 말한다.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 명제는 ‘희생자 없는 전환’이다. 탈탄소 사회 실현을 위한 구조적 변화 과정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없도록 전환의 과정과 결과가 모두에게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정의로운 전환 가이드라인’도 있지만 최근 독일, 스페인, 영국, 미국, 캐나다 등에서 국가 또는 지역 차원의 정의로운 전환이 법제화되고 있다. 산업재편으로 일자리를 잃을 노동자들에게 재취업 교육과 대체고용, 생계 지원금, 사회보험 등을 제공하는 정책이다.

◆ EU의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

유럽연합(EU)은 2020년 1월 유럽 그린 딜 투자계획(European Green Deal Investment Plan, EGDIP)을 확정하고,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Just Transition Mechanism, JTM)’ 정책 추진을 처음 공식화했다.

’유럽 그린 딜 투자계획‘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향후 10년간 최소 1조 유로(약 1337조 31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은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경제적 타격을 크게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화석연료와 탄소집약적 산업에 의존도가 큰 지역에 2030년까지 1000억 유로(약 134조원)를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기금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전환 계획을 수립해 EU 집행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전환 계획에는 국가 수준의 전환 단계에 대한 로드맵과 전환에 의해 부정적인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지역을 확인하기 위한 근거, 이 지역들이 마주하게 되는 일자리 상실 등의 문제들에 대한 평가를 제시해야 한다. 또, 이 전환 계획은 국가나 지방정부가 일방적으로 수립하지 말고, 모든 이해당사자가 함께 참여해서 수립해야 한다.

만약 EU가 요구하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매년 지역별로 배당된 기금의 50%를 삭감하도록 했다. 또, 원자력발전소 건설이나 해체, 담배 관련 산업, 화석연료 관련 투자, 중소기업 이외의 기업 지원 등에는 기금을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EU 국가 내에서도 정의로운 전환 계획의 수립 과정이나 내용에는 차이가 있다. 이 중 그리스는 유럽에서 탈석탄을 가장 먼저 선언하고 국가 수준의 정의로운 전환 기금을 설립한 국가다.

그리스 전력공급의 64%를 차지했던 갈탄은 이산화탄소 배출과 대기오염의 주된 요인으로 지적됐다. 이에 그리스는 올해까지 기존 갈탄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하고, 2028년까지 갈탄 광산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수익의 6%(2018년 기준 약 3140만 유로)를 갈탄지역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2019년에는 부처 합동으로 '탈석탄위원회'를 결성하고 2020년 정의로운 개발 전환 계획(Just Development Transition Plan)’ 초안을 발표했다.

그리스 정부는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 환경단체, 지역사회 단체들이 참여하는 대중적인 토론도 마련했다. 그리스 석탄지역 경제는 그간 갈탄에 의존해오고 있었고, 석탄산업 폐쇄가 다가오는 현재 석탄지역 이해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유럽에서 석탄산업 규모가 가장 큰 폴란드는 국가 단위의 정의로운 전환 계획과 6개 석탄지역 단위의 정의로운 전환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폴란드는 EU의 정의로운 전환 기금을 지원받기 위해서 2030년까지 광산을 폐쇄하는 로드맵을 수립하고, 석탄생산량을 상당히 줄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한 독일은 앞서 2018년 성장·구조 변화·고용위원회(탈석탄위원회)를 설립하고 연방기후보호법, 탈석탄법, 석탄지역 구조강화법 등을 법제화했다. 이 중 석탄지역 구조강화법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등으로 실직한 근로자에 대해 보상금을 지급하고, 탈석탄 과정에서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 지역의 경제구조적 변화 대응을 위한 기금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석탄 광산 및 발전소가 폐쇄되는 지역에 기반시설을 건설하고 신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2038년까지 400억 유로(약 53조원) 규모로 지원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지역사회 전환역량 강화를 위한 STARK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스페인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석탄 생산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1999년 35.3%에서 2021년 4.7%까지 석탄발전 의존도가 줄어들었다. EU가 2010년 12월 '경제성이 없는 석탄 광산 폐지를 촉진하는 국가 지원' 정책을 채택하면서 스페인에서도 석탄 광산 폐쇄가 이뤄졌다. 유럽위원회는 EU 국가보조규범에 따라 스페인이 모든 탄광을 2018년까지 폐쇄하는 조건으로 21억 3000만 유로(약 2조9257억원)를 지원했다.

이를 통해 스페인의 48세 이상의 광부 및 26개 탄광회사 중 한 곳에 20년 이상 일한 사람들은 모두 조기 퇴직자로 분류돼 지원을 받았다. 약 60%인 조기퇴직자에 해당하지 않은 광부들은 1만 유로(약 1374만원)의 퇴직금과 35일분의 급여를 받았다.

스페인 정부는 또 2018년 10월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광산 지역에 10년 동안 2억5000만 유로(약 3437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유럽 및 국가 기금으로 석탄 광산, 석탄발전소, 원전이 폐쇄되는 지역들과 광산 노동자 조기 은퇴, 지역 내 환경 복원 관련 일자리로의 재고용 및 녹색 일자리를 위한 재교육 등 다양한 형태의 정의로운 전환 협약을 체결했다. 

유럽 지도. 사진=픽사베이
유럽 지도. 사진=픽사베이

◆ 그린 일자리 200만개 선언한 영국 

영국은 1990년대만 해도 석탄화력발전 비중이 전체 에너지원의 46.5%를 차지할 만큼 석탄 의존도가 높았다. 하지만 2008년 기후변화법(Climate Change Act of 2008)을 채택하면서 기후변화에 대한 개별적인 법제도를 최초로 구축한 국가로 거듭났다. 탈탄소 정책으로 다수의 석탄화력발전소가 10년간 폐쇄돼 수천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고, 향후 10년간도 탈탄소 정책으로 수천 명의 발전소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됐다.

영국 정부는 2019년 탄소중립 선언에 이어 2020년에는 2030년까지 고숙련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과 그린일자리 200만 개 창출을 위한 ‘그린일자리TF(Green Jobs Taskforce)’ 를 출범시켰다. 

그린일자리TF는 경영계, 노동조합, 교육기관 대표자, 기술전문가, 연구자들의 참여를 보장해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한 다양한 주체의 목소리를 수렴했다. 특히 2050년까지 순 제로(Net Zero)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노동시장이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하는지를 분석하고, 그린일자리 관련 정책 제안과 대안을 마련했다. 

이들이 제안한 중요정책 3가지는 △전환 과정에서 질 좋은 그린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확대 △ 교육 훈련 프로그램 강화 등 그린일자리를 위한 기반 확보 △전환 과정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산업 내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환 방안 등이다. 

이에 영국 정부는 2021년 10월 탄소중립 전략(Net Zero Strategy)을 발표하면서 온실가스 배출 축소 대상 영역과 함께 정부지원 정책을 각각 7가지씩 제시했다. 2030년까지 탄소중립과 관련한 44만 개의 고임금 일자리를 확보하고 900억 파운드의 민간 투자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2030년까지 새로운 휘발유 및 디젤 자동차, 밴 판매를 중단해 2035년까지 모든 자동차의 배기가스 배출 제로화를 추진하기로 하면서 자동차산업계가 자동차 산업의 전기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3억5000만 파운드를 지원하기로 했다.

또, 2035년까지 전력 시스템의 완전한 탈탄소화를 추진하면서 훈련 제공자, 고용주, 학습자가 탄소중립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데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장비를 갖추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평생 기술 보증(Lifetime Skills Guarantee)을 제공하고 16세 이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녹색 경제에서 직업에 필요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충남 보령시 오천면 보령화력발전소 전경. 보령화력 1·2호기는 정부의 제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라 2020년 말 폐쇄됐다. [보령화력발전본부
충남 보령시 오천면 보령화력발전소 전경. 보령화력 1·2호기는 정부의 제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라 2020년 말 폐쇄됐다. 사진=보령화력발전본부

2020년, 한국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이 전략에는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 방안과 탄소중립기본법 등에 정의로운 전환 원칙 및 정책이 담겨 있다. 2021년 9월 제정된 ‘기후위기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에도 ‘정의로운 전환’ 규정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한국은 세계에서 14번째로 탄소중립을 법제화한 국가가 됐다.

지난해 3월부터 본격 시행되고 있는 탄소중립기본법은 정의로운 전환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다. 주 내용은 ▲정의로운 전환을 실현하기 위한 기후위기 사회안전망 마련 ▲정의로운 전환 특별지구 지정 ▲중소기업 대상 사업전환 지원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 대상 자산손실 위험 최소화 대책 마련 ▲국민참여 보장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 설립 등이다.

한국노총중앙연구원에 따르면 탄소중립기본법 제정과 시행 전후로 지방자치단체들도 상위법에 따라 탄소중립기본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20일 기준 17개 광역지자체 모두 조례를 제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탄소중립기본법의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해 실질적 정의 및 절차적 정의와 관련된 조문을 모두 반영하려고 노력한 조례는 광주시가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광주시와 부산시를 포함한 10개 지자체 조례에서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 설립(운영) 관련 사항을 명시하고 있었으나 5개 광역지자체(경남, 인천, 대전, 세종, 제주)는 정의로운 전환 지원방안 관련 규정이 아예 빠져있었다고 한다. 

반면 충남은 이보다 앞선 2021년 7월 전국 최초로 '정의로운 전환 기금'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조례는 석탄화력발전소 단계적 폐쇄 등 탈탄소 사회 이행을 위해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정됐다. 국내 화력발전기 58기 중 29기가 충남에 있고, 그 중 보령화력 1·2호기는 정부의 제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라 2020년 말 폐쇄됐다.

아울러 2025년에는 보령화력 2기와 태안화력 2기 등 4기, 2028년 태안화력 1기, 2029년 당진화력 2기와 태안화력 1기 등 3기, 2030년 당진화력 2기, 2032년 태안화력 2기 등 12기가 추가 폐쇄될 예정이다. 이에 충남은 보령화력 1·2호기 조기 폐쇄에 맞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100억원 규모로 조성된 충남의 정의로운 전환 기금은 ▲정의로운 전환에 관한 사회적 대화 프로그램 운영 ▲에너지 전환으로 인한 지역 영향분석 ▲정의로운 전환에 따른 고용 승계, 재취업 훈련, 취업 알선, 전업 지원금 등 고용 안정 및 일자리 전환 관련 사업 ▲에너지 전환 대상 지역의 기업 유치, 소상공인 지원, 주민 복지 등을 위한 사업 등에 사용된다.

'정의로운 전환'에 큰 관심을 둔 것은 충남 뿐만이 아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민선 8기 공약 과제로 ‘탄소중립과 정의로운 전환 추진’을 담은 바 있다. 경기도는 300인 미만 중소기업 탄소 배출량 비중이 45% 수준으로 전국 평균 33%에 비해 높은 편이다. 특히 2022년 기준 광업.제조업체의 중소기업 비중이 99%에 달해 탄소세 도입, 온실가스 배출권 인상 등 산업구조가 변할 시 경제.사회적 여파가 상당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경기연구원은 '정의로운 전환'을 제시했다.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피해가 발생하는 고탄소 관련 산업·지역 및 노동자를 보호하고 사회적으로 비용을 부담해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경기연구원은 구체적인 과제 10개를 도출하면서 ‘경기도 정의로운 전환 특별위원회’를 기존 ‘경기도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내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도내 정의로운 전환 정책의 주관부서가 없고, 중앙정부의 정책도 부처별로 추진돼 수요자의 접근성이 낮기 때문이다.

전남에서는 ‘전라남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최근 상임위 심사를 통과했다. 조례안은 전남 내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일자리 감소 등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지역.산업에 대한 지원 및 기후위기 취약계층의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도록 했다.

또 예산 및 기금이 온실가스 감축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해 재정 운용에 반영하는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 도입도 명문화했다.

이를 대표발의한 최선국 전남도의원은 "기후위기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 지역이나 산업, 그리고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조례 개정에 나서게 됐다"면서 "기후위기 대응이 어느 한 부서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로부터 도민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대응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주도 또한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제주도는 지난 4월 제주대, 한국자동차연구원, 수소융합얼라이언스와 ‘제주 미래모빌리티 선도 및 그린수소 글로벌 허브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협약 주요내용에는 '내연기관차 관련 산업의 정의로운 전환 지원 및 교육'이 포함돼 있다. <정리= 제이누리 이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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