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재산계획-추경예산' 동시 제출 화근...'묻지마 통과' 원했나?
400억 시세차익 논란도...민선 8기 10개월만에 도의회와 '파열음'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송악산 일대 사유지 매입계획안이 지방정가 갈등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이 계획안이 제주도의회 심사 단계에서 제동이 걸린 후 격화된 갈등 상황은 급기야 추가경정예산 파국으로 이어졌다. 도의회 사상 처음으로 추경예산이 회기 내 처리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민선 8기 출범 10개월만에 도정과 도의회의 관계는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번 논란의 발단은 제주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가 지난 12일 송악산 사유지 매입계획을 담은 공유재산관리계획안에 대한 심사를 보류하면서 촉발됐다.
이 계획안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송악산 일대 난개발 및 경관 사유화를 방지하기 위해 유원지 개발사업 부지 및 마라해양도립공원 중 송악산 내 사유지를 매입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이를 통해 생태계 보전 및 훼손지 복원, 탐방로 정비 등 체계적인 관리를 통한 보전관리 및 지속가능한 이용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토지 매입을 서두르는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기존 개발사업자와의 국제적 분쟁을 차단하기 위한 차원이다.
송악산 일대는 1995년 유원지로 지정된 후 개발의 대상이 돼 왔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송악산 일대 토지를 매입하며 '뉴오션타운' 개발사업을 추진해 온 중국자본의 신해원유한회사가 그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뉴오션타운 사업은 경관 사유화 논란 및 송악산 개발을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거센 저항에 부딪혔고, 급기야 지난 2020년 10월 당시 원희룡 지사의 '송악 선언' 발표에 따라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해 7월에는 개발행위허가 제한지역으로 지정됐고, 8월에는 20년 경과로 도시계획시설 '유원지' 지정이 실효(해제)되면서 사업은 완전히 좌초됐다.
신해원은 지난해 10월 개발행위허가 제한지역 지정 취소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제주도정의 정책 변경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했다며 ISD(국제소송) 제소를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이에 제주도는 원만한 해결을 위해 도의회 동의를 거쳐 지난해 12월 제주도와 신해원과 '송악산 토지매매를 위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송악산 일대 사유지를 전면 매입하기로 한 것이다.
매입대상 토지는 총 170필지 40만 748㎡이다. 송악산 유원지 개발사업 부지 내 토지가 98필지 18만216㎡, 마라해양도립공원 육상부 토지가 72필지 22만532㎡이다.
이들 토지 거의 대부분이 신해원이 보유한 토지이다.
총 매입 비용은 유원지 개발사업 부지 410억원, 도립공원 내 육상부 토지 161억원 등 총 571억원이다.
제주도는 이를 2년에 걸쳐 매입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번 제1회 추경안에는 각 151원과 10억원 등 총 161억원을 편성했다. 나머지 259억원과 151억원 등 410억원은 내년 본예산에 편성할 계획임을 밝혔다.
◇ '400억 시세차익' 논란...행자위 심사 보류, 진짜 이유는?
그러나 이 계획은 도의회 심의 과정에서 제동이 걸렸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행자위가 제주도가 제출한 송악산 사유지 매입관련 2건의 공유재산관리계획안에 대해 모두 '심사 보류'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송악산 환경보전을 위해 사유지를 매입해야 하다는 총론적 측면에서는 공감하면서도,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만큼 재정확보 계획이 필요하고, 토지매입 이후 활용 방안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현재 감정가격대로 토지매입이 이뤄질 경우 신해원측이 400억원 가량의 막대한 부동산 시세차익을 보게 된다는 점에서 특혜 논란도 제기됐다.
불과 7년 전에 땅을 사들였다가 되팔기를 하는 것에 다름없는데도, 공적자금으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보게 하는 것은 도민 정서상 맞지 않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이번 매입가격은 제주도와 신해원측이 각각 감정평가법인 1곳씩 총 2곳을 추천하고, 그 평가액의 산술평균치를 적용해 산출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매수금액의 기준을 개발행위허가 제한지역 지정 해제 이후 감정평가 가격으로 설정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과도한 보상'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행자위가 매입계획에 대해 심사를 보류시킨 표면적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심사보류 결정 이면에는 최근 불거진 제주도와의 '증액 예산' 관련 갈등 문제가 얽혀있다.
예산 갈등은 올해 본예산이 도의회에서 의결되는 과정에서 오영훈 지사가 '조건부 동의' 입장을 밝혔던 도의회 증액 예산들이 최근 제주도 보조금 심사 과정에서 잇따라 '부적정' 사업으로 분류되며 집행할 수 없게 된 것이 발단이 됐다.
이번 공유재산계획안 심사 보류는 이와 직접적 연관이 없다 하더라도, 의원들의 '항의성'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감정적 대응의 측면도 다분히 있다는 것이다.
◇ 제주도정, '묻지마 통과' 원했나?...화근 자초한 엇박자 대응
그럼에도 일련의 상황은 도의회 보다는 도정에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데다, 대응 방식에 있어서도 논란을 키웠다.
무엇보다 공유재산관리계획과 제1회 추경예산안을 동시 제출한 것이 제주도정의 결정적 '실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제1회 추경안의 송악산 사유지 매입 예산 161억원은 공유재산관리계획안에 대한 동의를 전제로 하는 사업비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은 추경 심사에 앞서 동의절차를 거쳤어야 했다. 같은 회기가 아니라, 최소 직전 회기에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제주도정은 5월 임시회에 두 가지 의안을 동시에 제출했다. 이는 도의회의 심도 있는 심사보다는, 형식적 '통과 의례'를 기대했음을 보여준다. 안이함의 표출, 도의회 경시라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대목이다.
두번째, 투자자와의 합의 이행을 위한 시간적 촉박함 때문이었다는 제주도의 설명도 오히려 의문을 갖게 한다.
제주도는 지난 15일 도의회의 심사보류 결정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심사보류 등으로 이번 회기 동의가 불확실 해짐에 따라, 향후 투자자의 사유재산권 행사, 국제소송 제기 등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신해원이 송악산 주차장, 올레길, 송악산 진입로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어, 사유재산권 행사 시 지역주민 및 관광객 통행제한 등 불편과 경관 사유화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9월에 매매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이 추경예산이 조속히 처리돼야 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기본합의서에서는 '토지매입 지급 시기'와 관련해, 올해 12월 이전까지 매매계약 금액의 일부(30%) 지급하며, 2024년 12월까지 전액 지급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불가항력 사유 발생 시 1년 범위 내 연기가 가능하다고 돼 있다.
즉, 매매 대금 첫 지급시기가 올 연말까지로, 다소 시간적 여유는 남아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5월 추경에서 예산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신해원측이 당장에 사유재산권 행사를 할 것처럼 설명한 것은 도의회에 대한 '묻지마 통과' 압박에 다름 없다는 지적이다.
대응방식도 논란의 여지와 함께, 아쉬움을 남겼다. 심사 보류가 결정된 후 제주도의 대응의 기조는 '언론 플레이'였다.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이 왜 조속히 통과돼야 하는지, 예산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은 전적으로 언론 브리핑을 통해 전해졌다. 정작 심사 보류를 결정한 해당 상임위에는 적극적 설명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추경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의원들을 크게 격앙케 했다.
양경호 예산결산특별위원회장(더불어민주당)은 제주도정의 '소통'의 문제를 강하게 지적했다. 그는 "대의기관인 의회를 존중하고 소통해 나가겠다는 제주도정의 약속은 말 뿐"이라며 "500억여 원에 달하는 예산이 소요될 송악산 유원지 부지 매입과 관련해, 제주도정은 심사보류 결정에 대해 이례적인 언론 브리핑까지 하며, 향후 도의회 심의.의결 과정을 압박해, 도의회 고유 권한마저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의회의 기능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지홍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의회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횡단보도 하나 거리에 있는데, 브리핑을 하기 전에 의회에 와서 대화를 하면 안되는가"라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여기에 예결위의 추경예산안 심의 마지막 날 제주도정의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당시 행자위가 예결위 추경안 의결 전에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을 심사해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실제 행자위 의원들 사이에서는 회의를 재개하는 방안이 논의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제주도 정무라인에서 심사보류된 상황에서도 예산 편성은 가능하다는 논리로 예결위 의원들을 설득하려 한다는 얘기가 전해지자, 행자위 의원들이 크게 분개해 하며 '심사 보류' 결정을 그대로 고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통의 '엇박자'는 정점을 찍었다.
◇ 제주도정-도의회 협력관계 '파열음' 신호탄?
결국 심사보류 전후 과정에서 나타난 이러한 일련의 상황은 가뜩이나 불만이 고조된 의원들의 감정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공유재산계획과 추경예산을 동시에 제출한 것이 화근이 됐고, 제주도정이 의회에 대한 상황 설명이나 설득노력도 부족했다는 것이다.
필요성에 대해서는 시민사회단체에서도 공감을 얻었던 송악산 토지매입계획. 그러나 이번 도의회의 심사보류는 단순한 일시적 제동이 아니라, 민선 8기 제주도정과 제11대 도의회 간의 협력적 관계에 금이가는 '파열음'의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갖게 한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