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세번째 직권재심, 수형인 20명 모두 '무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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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세번째 직권재심, 수형인 20명 모두 '무죄'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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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판 첫날, 검찰 무죄 구형→법원 무죄 선고
제주4.3 당시 영문도 모른채 군.경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하고 불법적 군사재판에 회부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4.3 수형인 20명에에게 74년만에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19일 오전 제주4.3수형인 20명에 대한 직권재심 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광주고검 산하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 지난 3월 10일 제주지법에 청구한 제3차 직권재심 대상자들이다.
 
재판부는 "검사가 이 사건 공소사실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속하므로 피고인들은 각 무죄"라고 선고했다.
 
검사는 이날 재판에서 제주4.3 당시 군법회의가 이뤄진 배경을 설명한 뒤 "제주 전지역 300여 마을에 2만여 가구가 소실된 엄청난 비극이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자행됐다"며 "무고한 희생자들의 실추된 명예가 회복되고 유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디길 진심이나마 기원한다"고 말했다.
 
또 "피고인들이 국방경비법 등의 죄를 했다는 증거가 전혀없다"며 "무죄판결을 선고해달라"고 무죄를 구형했다.
 
수형인 측 변호인은 이날 최종의견에서 "이 사건 피고인들은 제대로된 수사를 받지 못하고 제대로된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유죄판결을 받고 실형을 살았다"며 "정상적인 재판을 받게 된 오늘이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마을이 불에 타서 조천읍으로 피난을 갔다가 자수하면 살려주겠다는 군인들의 거짓말에 속아 자수하러 갔다가 소식이 끊겼다', '점심식사를 하러 밭으로 일을 하러 갔다가 마을회의가 있으니 참석하라는 경찰의 말에 나갔다가 소식이 끊겼다', '도두지서에서 땔감을 갖고 나오라는 말을 듣고 나갔다가 끌려갔다', 마을 일을 앞장서서 하던 어부는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갔다', '소개령에 따라 피난을 가던 길에서 경찰에 의해 끌려갔다'며 수형인 20명이 불법으로 연행된 상황을 묘사했다.
 
이날 재판에 참석한 수형인 故양성찬씨의 아들 양상훈씨(87)는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임시수용소에 있는 아버님 면회를 갔다"며 "아버님은 옛날에 댓병이라고 하는 병을 앓았는데, 아파가지고 그럴 때 인데 말씀을 들어보니까 '나는 별 죄가 없다고 하니 며칠 있으면 집에 갈 것 같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아픈 어머님에게 말씀드리고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까 어언 7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며 "이제 아흔이라는 나이가 보이는데 아버님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전했다.
 
양씨는 "오늘 무죄라는 판결을 받아서 돌아가신 아버님도 기쁜 마음으로 집을 찾아와 아들을 부를 것 같다"며 "아들은 방에서 맨발로 튀어나와 아버지를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씨는 '꿈에서라도 아버님을 본 적 있나'고 묻는 재판부의 질문의 "꿈에서도 봤다. 얼마 없으면 집에 갈 것 같다는 말이 돌아오지는 못하고 현재까지 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재판부에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며 "20년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이 살아계셨으면 110살인데, 소개령에 따라 집을 소각하다가 가슴에 총을 맞고 총알이 가슴을 뚫고 갔다"고 말했다.
 
한편, 선고를 마친 재판부는 이번 3차 직권재심 재판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재판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찾아오는건 제주의 봄"이라며 "제주는 풍광 자체가 아름다운데 꽃들이 더해져서 그 아름다움이 더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제주에서는 그 아름다움이 '참혹한 아름다움'이다"며 "아름다움이 현재라면 참혹함은 제주의 옛날"이라고 전했다.
 
또 "모든 이가 좋아하는 정방폭포에서, 70여년 전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최소한은 알고 우리는 살아가야 하지 않나"고 말했다.<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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