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수의 꽁트] (3) 함께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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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수의 꽁트] (3) 함께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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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경우로 볼 때 자살할 지경에 이른 사람의 마음은 정상이 아닐 것입니다. 만약에 그 사람의 자살 기도가 실패하고 며칠이 지난 다음에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본다면 그럴 순간의 자기 정신상태를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할 수 있는 거지요. 내 마음 나도 몰라, 그런 말도 있잖습니까.

그렇지만 저의 친구 동현이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은 이런 경우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이 친구가 자살을 여러 차례 기도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런 선택을 하는 까닭을 장시간 심사숙고 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후의 정황을 봐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무단가출해서 여관에 머물다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는 겁니다. 사흘이나 지나는 동안 그의 아내가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지요.

중졸 학력밖에 안 되고 학교 다닐 때에도 공부는 뒷전이었던 이 친구는 생각이 단순해서 복잡하게 잔머리 굴리는 일은 못하는 성질이었습니다. 선량하기 이를데 없는 사람이었지요. 오죽하면 순둥이라는 별명을 평생 달고 다녔겠습니까. 너무 외곬으로 선량하다는 게 탈이라면 탈이었지요. 자기 행동의 옳고 그름을 얄궂게 따지는 사람 있잖습니까. 나의 행동은 옳았는가, 나는 이 세상에서 불필요한 사람, 미움받는 사람이 아닌가, 나의 욕심은 지나친 것이 아닌가,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하는 사람 말이지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선량하다고 할 때, 그것은 보통 자기 욕심을 참는 것을 의미하지만, 동현이 이 사람은 아예 자기 욕심이라는 것부터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나쁜 짓을 하려면 잔머리를 굴려야 하고 어느 정도 영리한 머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 친구에게는 나쁜 짓을 꾸밀 만한 머리빡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니까요.

한 마디로 이 사람의 고지식한 성격이 문제였지요. 그러니까 그의 고지식하고 여린 마음이 고부간 갈등이라는 난감한 문제에 부딪쳐서 폭삭 부서져버린 게 아니냔 거지요. 하긴, 이 집안의 가족들 치고 고지식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애요. 며느리의 입장에서 볼 때에 자기 남편이 시어머니에게 지나친 정성을 보일 때에 질투심이 일어나게 마련 아니겠습니까. 뭣하면 가슴에 열불이 날 수도 있겠지요. 동현이는 자기 어머니 병실에 거의 날마다 들를 정도였고 병원에서 밤을 지샐 때도 많았다고 하니까 그의 아내는 그냥 보고만 있지 못했던 거지요. 자기 남편은 작은 아들인데 왜 장남은 잘 거들떠 보지도 않는 모친의 병실에 작은아들이 그렇게 통근하듯이 나들어야 하느냔 생각이었지요. 물론 동현이네 형님은 근무지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여의치가 않았던 모양이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부모에게 효도하는 책임을 모두 동생에게만 지울 수가 있느냐는 거였지요. 아마도 동현이 처는 자기 남편에게 효자 노릇 너무 지나치게 한다고 잔소리깨나 심했던 모양입니다.

동현이가 한번은 저에게 이런 말을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 병실에 찾아가서 무슨 말 끝에 넌지시 당부하기를, 자기가 어머니 병 문안을 어떻게 다녀간다는 말을 며느리에게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랬는데 어머니는 눈치도 없이 오히려 거꾸로 받아들여서, 아들이 얼마나 정성껏 모친 간병하러 나오는지 며느리에게 과장해서 말해버렸다는 거예요.

아들은 자기 직업도 뒷전으로 밀어내고 문병을 오는데 며느리는 어찌 그리 무심하냐 하는 내심의 원망을 담고 있는 말이었지만, 동현이 이 사람은 그 때문에 더 곤욕스러운 처지가 되었다는 겁니다. 동현이 처 입장에서는 개인택시 영업을 하는 남편이 밖에 나가서 어디를 돌아다니든 알 도리가 없었지만, 돈 벌어오는 것이 예전만 하지 못한 것은 남편이 모친의 병 수발에 정성을 쏟다보니 나온 결과라고 넘겨짚었던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즘엔 렌터카가 성업중이어서 택시 손님을 많이 뺏어가 버리는 모양인데 이 여자는 엉뚱한 오해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건 확인되지 않은 짐작에 불과한 말이지만, 동현이 처가 남편을 놔두고 딴 남자와 놀아난다는 의심이 동현이의 마음에 엄청 큰 상처가 된 것 같다는 겁니다. 동현이는 사실 자기 아내가 그런 부정한 짓을 해도 맞대놓고 아내를 닦달할 위인도 못되지요. 저도 언젠가 동현이 모친이 저에게 귀띔해 주었기 때문에 알았던 겁니다만, 동현이는 부정한 행위를 한 아내에게 싫은 소리나 원망하는 소리 한번 해보지 못하고 그냥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는 겁니다. 속시원하게 불만을 털어놓지 못하고 속앓이하는 심정이 오죽했겠으며 그야말로 죽고싶은 심정이 아니겠느냐는 말입니다. 동현이 아내의 바람기가 이해할 만도 한 것이, 이 친구가 너무 순둥이이고 감각이 둔하기까지 했으니, 아내의 본능적인 욕구를 다 채워주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거지요.

마누라 잔소리 듣는 것 정도를 가지고 왜 자살까지 하느냐, 그러시겠지만 나타난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일이 그리 간단치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자기 시어머니에게서 남편 구박에 대한 냉혹한 응징을 당한 것을 보면, 그리고 그 시어머니가 그렇게 상식이 없는 분도 아니라고 보면, 아들의 자살 원인이 며느리의 잘못에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너 때문에 너의 남편이 죽었고 또 그 때문에 너의 시아버지까지 홧병으로 죽었는데 네가 무슨 낯으로 장례식에 나타나겠느냐, 이렇게 시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며느리는 자기 남편 장례 때나 시아버지 장례 때에 얼씬도 하지 못했다는 거지요.

만약에 말입니다, 동현이가 자기 아내의 말을 무시하거나 아내의 사람됨을 얕잡아 보기만 했으면 문제가 간단했겠지요. 입원중인 모친의 병 수발을 정성껏 하는 것은 누가 보든 장한 일이라 할 것이고, 더구나 자기의 지극정성으로 모친의 병환이 낫기까지 했으니 아들로서 보람있고 떳떳한 일이었지요. 형이나 형수하고도 사이가 원만했다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결과를 놓고 볼 때에, 동현이가 자기 아내의 잔소리나 투정을 다른 누구의 말보다도 더 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지요.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모두 착한 아들임을 인정받고 있는데도 자기 아내에게서 구박을 받은 것 때문에 자기모멸감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는 거니까요. 제가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 그러니까 자신의 떳떳함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만한데 오히려 비참한 자기비하의 심정이 되도록 만든 어떤 요인이 있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아도 자기하고 제일 가까이 있는 한 사람에게서 인정을 받지 못하면 소용이 없었다는 얘기지요. 여기에 또 하나 박동현이를 더욱 가슴 아프게 했던 사실은, 남편에게 매정한 그의 아내가 세상사람들에게 악랄한 여자라는 평은 듣지 않고 살았다는 겁니다. 이런 사실이 박동현의 가슴을 아프게 했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아, 우리 마누라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한데 나한테만 쌀쌀맞게 굴고 있으니 내가 얼마나 못났으면 그러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그 남자의 심정이 어떻겠느냐 하는 겁니다. 이와는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제가 아는 어떤 칠칠치 못한 남자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얕보임을 당하지만 오직 자기 아내에게서 사람대접 받는 재미로 산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저의 가슴이 뭉클해진 경우가 생각나는 겁니다.

저는 최근에 이 집안이 당한 액운을 가만히 보면서 동현의 신혼시절 모습들이 떠오르더군요. 그 당시 이 사람네 부부생활이 얼마나 행복해 보였던지 사람들 간에 소문이 자자했던 거 기억나시지요. 신혼시절에 동현이네 부부는 어디 쇼핑이나 극장 구경 갈 때에도 꼭 붙어서 다녔지요. 한 쪽이 아프면 다른 한쪽도 자연히 아팠다는 것인지, 병원에 갈 때에도 꼭 부부동반해서 갔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고요, 동현이는 무슨 친목회 모임 같은 데에 나갈 때에도 2차 뒷풀이 같은 데에는 참석하지 않고 일찍 귀가했었지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행복했던 시절이 최근의 불행한 일들에 대한 예비단계가 아니었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더란 말입니다. 만약에 처음부터 데면데면하고 냉냉한 관계로 시작된 부부생활이라면 자기 마누라에게서 어떤 냉대를 받아도 별로 실망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지요.

물론 동현이 처라는 사람도 남편에게서 인정받을 만한 구석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 여자가 그렇게 선량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양심은 살아있는 사람이었다고 여겨지는 것이지요. 오죽하면 양심의 가책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습니까. 시어머니가 그렇게 미워하고 저주하는데 세상 살 맛이 있겠습니까만은 그것만 가지고는 자살까지 했겠느냐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동현이 처는 남편의 죽음을 불러온 자신의 경박한 소행을 두고 양심의 가책과 자기혐오감을 이기지 못해서 자살을 했다는 것이 저의 생각인 겁니다. 만약에 이 여자가 양심이 없는 철면피 같은 사람이었다면, 시어머니의 모욕 같은 것은 그냥 무시하고 넘겨버리지 않았겠느냐 하는 겁니다. 남편이나 시부의 장례 때에 얼씬하지 못한 창피 같은 것도 그냥 코웃음 쳐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고, 어디 멀리로 도피해 가지고는 자기 살 길을 새로 찾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동현이 처가 이번 일로해서 세간의 평이 좋지 않게 돌게 되었지만 그전에 주변 사람들에게서는 평판이 괜찮았단 말입니다. 그렇게 무난하다는 평을 듣는 사람에게서 나는 왜 인정을 받지 못할까, 아마도 이런 생각이 동현이 마음을 괴롭히지 않았을까 하는 거지요. 동현이의 순둥이 마음은 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여리기도 했다는 것이지요.

동현이 모친이 며느리에게 너무 가혹한 응징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저의 생각은 그 분의 분노에 대해 이해하고 동정하는 쪽입니다. 자기 아들이 마누라 등쌀에 얼마나 시달리고 사람대접을 얼마나 못 받았으면 그렇게까지 했겠느냐, 이런 생각이 들 때 며느리 미운 마음이 얼마나 치밀어 올랐겠습니까. 더구나 그 아들의 죽음이 자기 남편까지도 죽음으로 몰고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동현이 모친의 분노가 어떠했을까 짐작이 간다는 것이지요. 나쁜 며느리를 저주하고 응징하는 것이 어머니의 분노와 슬픔을 다소나마 경감시키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는 마음이 달라지고 분노가 다소나마 누그러졌을 것입니다. 더구나 남편의 사망으로 말하면, 아들의 죽음이 유일하거나 확실한 원인은 아니었던 모양이니까요.

동현이 부친은 그 전에도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적이 있어서 경미한 충격으로도 재발될 가능성이 있었다는 얘기를 저 자신도 들었던 것입니다. 동현이 모친 입장에서는 며느리에 대한 원한이 워낙 깊이 사무쳤기 때문에 집안의 모든 불행이 며느리 탓이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겠습니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동거중인 다섯 식구들 중에서 세 식구가 한 달 사이에 죽어갔으니, 얼마나 큰 액운이겠습니까.

이젠 그 집안에 어린 손주 아이하고 할머니하고 달랑 두 식구가 남은 것이지요. 다섯 식구가 살다가 세 사람이 죽고 두 사람이 살아남은 엄청난 불행을 생각하면 그런대로 잘 짜여진 가족구성으로 낙착된 셈이지요. 할머니 사랑을 제일 많이 받을 사람은 손주 아이일 것이고, 손주 아이 입장에서도 할머니하고 남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하고 살아남는 것도 좋기는 하겠지만 그 어머니가 살아있었다고 해도 딴 남자 찾아가지 않고 이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는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말입니다.

나 자신이 왜 이 집안의 불행을 놓고 시시콜콜 별 걱정을 다하고 과민 반응을 보이느냐는 말씀이시죠. 저도 그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저도 사실은 그 점을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동현이는 저와는 어릴적부터 막역한 친구였지 않습니까. 이건 말하기가 좀 거북하지만, 동현이는 저를 단순한 친구로만 본 게 아니라 저를 대단한 인물, 그러니까 자기가 결정하지 못하는 일을 알으켜 줄 수 있는 멘토 정도로 생각했다는 거지요.

동현이가 저의 말을 잘 들었던 건 아마도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우등생이었고 학교 선생님들에게서 칭찬을 많이 들었던 것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동현이는 저에게 말버릇처럼, 자네밖에는 내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없네, 뭐 이런 식으로 저에게 자기 문제를 털어놓은 다음에 제가 하는 말을 마음 속에 새겨들었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이 친구가 아내의 잔소리를 성가셔하는 말을 했을 때 제가 그에게 던졌던 말이 생각나는 군요.

‘사람의 인격이나 기운은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옮아간다. 기운 찬 사람 옆에 있으면 기운을 얻게 되고, 착한 사람 가까이에 있으면 착한 심성을 얻게 된다. 진정으로 착한 사람 옆에 있으면서 어떻게 악한 마음을 품게 되겠느냐.’

동현이는 아마도 이런 말을 기억하고 있다가 자신의 경우에 비추어 곱씹고 고뇌하기를 거듭했던 모양입니다. 사람이 얼마나 못났으면, 세상에서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서도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할까 하는 심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말 했던 걸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뒤늦게야 생각이 나서는 제 자신의 말 실수를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지금 돌이켜 보니, 걸핏하면 남을 가르치려드는, 선생 티가 물씬 풍기는 말투이기도 했으니 더 후회스럽습니다. 그 집안의 불행한 사건들의 시발점은 바로 저의 말 실수가 아니었나 하는 것입니다. <양영수 /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양영수의 꽁트>는...

양영수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헤드라인제주
양영수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헤드라인제주

바야흐로 영상시대라고 한다. 이야기문학을 감상하는 것도 문자매체보다 영상매체를 통하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영상매체 속에서는 금방금방 장면이 바뀌는 스토리라인을 사람이 따라잡아야하기 때문에 깊이있는 사색과 음미가 잘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 마음이 주체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생체리듬과 심리적인 템포에 따라서 메시지 내용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에는 문자매체를 이용하는 독서가 좋은 방법이다.

꽁트 연재를 통해 필자가 바라는 희망은 많은 사람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양영수 작가 

제주 태생의 소설가.  서울대 문리대 영문학과 졸.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교수 정년퇴임.

그 동안 내놓은 작품들로는 단편집 '마당 넓은 기와집' (2008년), 장편소설 '불 타는 섬' (2014년,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복면의 세월'(2019)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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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웃 2020-06-17 13:07:14 | 203.***.***.63
교수님, 교수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교수님이 글에서 표현하고 계시는 함께사는 사람들 중 교수님의 이웃도 함께 사는 사람들 중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이웃에게도 좀 더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시면 더 좋을것 같습니다. 50년 지나고 나서도 훌륭한 작가로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