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왔어요. 수박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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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오늘] <34> 수박과 할머니

“자 ~ 왔어요. 수박이 왔어요. 싱싱하고 맛있는 꾸~울 수박이 왔어요.” 라고 외치는 스피커 소리에 우리 동네 가까이에 왔음을 짐작하게 하였다. 그 소리에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총알처럼 대문 밖을 나가신다.

수박을 실은 자그마한 용달차가 우리 집 앞에 멈추어서면 수박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눈으로 보기도 하고, 손으로 노크하듯 두드려 보고 산다.

그러면 그 수박장수는 “목이 마르니 시원한 냉수 한 사발 먹을 수 없을까요?”라고 어머니께 말을 하면, 나는 거실에 있다가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 한잔을 창문 너머로 넘겨주면 숨을 쉬지도 않고 한번에 비우고는 감사의 표시로 자그마한 수박 하나를 덤으로 주기도 하였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어머닌 값이 싸거나 비싸던 간에 수박을 한번에 여러 통을 사서 실컷 먹으라고 하신다. 저녁을 먹고 나서 후식으로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수박을 쟁반에 올려놓고 칼을 갖다대면 마치 바닷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을 일으키듯이 빠알간 속살을 드러내면 나도 모르게 ‘와-’하는 감탄사를 연발할 때도 있었다.
 
심십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내가 국민학교. 아니 이제는 초등학교라고 해야겠구나. 외할머니 댁에서의 일이였다.
 
외할머니 댁이 우리 집이랑 바로 옆이니까 나는 자주 놀러 갔었다. 그때 마침 주인 할머니께서 수박을 칼로 자르고 계셨고, 내가 인사를 드리자, 외할머니는 나를 방으로 들어오라면서 반갑게 맞아 주시며,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주인 할머니가 수박 한통을 다 썰어가지고 들어오셨다. 
 
주인할머니와 외할머니, 그리고 내가 이렇게 빙 둘러앉아 수박을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할머니들은 “많이 먹었다. 배가 불러 못 먹겠으니 너나 많이 먹어라”라며 쟁반을 내 앞으로 밀어 주시는 거였다.

나는 남아 있는 수박을 다 먹어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갔다. 집에 가서는 계속해서 화장실을 들락 거렸던 일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많은 것을 나 혼자서 다 먹었을까 하는 생각에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그 주인 할머니의 소식은 잘 잘 듣지 못한다. 나의 외할머니는 향년 95세로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날아가셨다. 할머닌 외삼촌 댁에 계셨다. 지난 설 명절에 우리 식구들이 세배하러 가서 제일 먼저 할머니에게 세배를 드렸다. 그것이 마지막 세배가 된 셈이다.
 
할머니가 편찮으시기 전에는 우리 집에 오시면 내가 제일 먼저 밥을 차려드리고, 커피를 좋아하셔서 후식으로 끓여 드리면 맛있다며 “우리 손지, 장가가는 것 까지 봐야하는데..” 라는 말을 하시곤 하셨다.
 
입관하기 전 이승에서의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모습을 뵈니까 예전에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빛바랜 영상처럼 흘러가서 많은 친지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 싫어 천장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켰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더 아퍼온다. 마치 내가 아픈 것처럼...
 
“할머니, 이젠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히 계세요. 애인이 생기면 제일 먼저 보여 드릴게요...” <헤드라인제주>

이성복 수필가 그는...
 
   
이성복 객원필진. <헤드라인제주>
이성복님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연대 회원으로, 뇌변병 2급 장애를 딛고 지난 2006년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가을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수필가로 등단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적극적인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성복 객원필진/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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