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만난 친구의 얼굴은 한결 편해 있었다.
해마다 제주도 고유의 이사철인 신구간만 되면 집 빌릴 걱정, 집세 마련할 걱정으로 근심이 가득했던 친구의 모습에서 이제는 새로운 안정적인 보금자리가 생겨 신구간인 이사철에 이사를 해 밝아진 모습을 보니 나 또한 마음이 편했다.
한 달 전 신년 초에 같이 저녁이나 먹으려고 전화했더니 친구의 목소리는 굉장히 힘없이 우울해 있었다.
“왜그래? 어디 아프냐?”고 물어도 “아니 아픈데는 없어.”
아픈 데는 없다고 하는데 목소리만 들었을 땐 많이 편찮은 듯 느꼈다.
“새해도 되고 했는데 네가 생각나서 저녁이나 같이 할까 하고.”
“그래 얼굴이나 보자.”
시간에 맞춰 약속장소에 나가 보니 친구는 벌써 와 있었다. 항상 웃는 얼굴은 어디 가고 시무룩하게 앉아 있었다. 자초지종은 서서히 듣기로 하고 “뭐 먹을까?”하고 묻자 “밥은 됐고, 술이나 한 잔 하자”며 말문을 열었다.
작년 신구간에 내도에 집을 빌려 사글세로 살고 있었고 새로 지은 국민 임대주택에 선정되어 올 신구간이 되어야 입주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신구간도 되기전 12월 중순이 되자 집주인이 갑자기 막무가내로 집을 비워 달라고 해 사정 해 봤지만 그건 '당신네 사정'이라며 사는 집에다 이삿짐을 막 갖다놓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쫒겨 나다시피 집을 비워주고 입주 전까지 여관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집주인도 제주도 사람이라 신구간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친구의 말을 듣자니 제주도 인심이 이렇게까지 삭막해졌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어이없어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제주도의 이사철인 신구간은 제주도의 전통 풍습 중 하나로, 대한 후 5일째부터 입춘 3일 전까지 7-8일 동안 이어지는 이사 풍습이다.
이시기에 이사를 하는 이유는 이 시기에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들이 임무 교대를 위해 하늘로 올라간다는 속설이 전해져 예부터 제주에서는 이 기간에 집을 고치거나 이사하는 풍습이 있다. 지금은 타 지방 사람들이 많이 내려와 거주하면서 이 풍습이 많이 깨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제주도 토박이들은 이 풍습을 지키는 분들도 많다.
예전에는 신구간이 지나면 집을 구하기가 어려웠고, 요즘에는 경제사정이 어려워 자기 집을 장만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러한 풍습 땜에 애로를 겪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것도 제주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풍습이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제는 하나의 풍습으로만 기억하고 누구나 언제든 자유롭게 집을 빌리거나 이사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릴 적 우리가족도 신구간 철만 되면 해마다 이사를 하기 위해 이삿짐을 싸야만 했었다. 그럴 때면 항상 입버릇처럼 어머니는 “아이고, 두 다리 쭉 뻗고 잠 잘 수 있는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곤 하셨다.
나는 그때 어려서 어머니 말씀을 그냥 흘러가는 소리로 들었었는데 철이 들면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 부모님들은 악착같이 일하시고 돈을 벌어 지금의 집을 장만 하실 수 있었다. 이 집을 장만하시고 이사 오던 날 짐 정리를 다 끝내시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동안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면서 힘들고 서러웠던 아픔들이 한이 되어 어머니의 마음을 적시던 눈물의 의미를 이제는 알 것 같다.
아마 며칠 전 본 친구의 환한 웃음은 이제는 정착할 곳이 생겼다는 의미의 웃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친구야 축하하고 꼭 집들이해라 화장지 많이 사들고 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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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객원필진/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