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검속 희생자 가족 제기 손배소 '첫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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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검속 희생자 가족 제기 손배소 '첫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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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법 민사부 "국가는 위자료 등 8천여만원 지급하라"
"국가 불법정도 매우 중해"...예비검속 첫 승소 판결 '주목'

1950년 6.25 발발직후 제주에서 행해진 예비검속 학살사건과 관련해, 국가는 예비검속 희생자 가족에 대해 위자료 등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는 예비검속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추진되고 있는 과정에서 처음 나온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이 판례를 계기로 해 앞으로 희생자 가족들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잇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제주지법 제2민사부(재판장 신숙희 부장판사)는 24일 예비검속 희생자인 고00의 부인과 자녀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원고에게 8천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손해배상금 산정내역을 보면 부인에게는 위자료 2000만원을 비롯해 장례비 128만여원 등 총 2128만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아들과 딸에게는 각 3335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망인에 대한 위자료가 포함된 금액이다.

예비검속 희생자인 고00은 1950년 6월28일 의귀출장소 경찰 등에 예비검속돼 서귀포경찰서로 이송된 다음 절간 고구마 창고에 구금돼 있다가 7월29일 군 트럭에 실려나간 후 현 제주공항인 정뜨르비행장에서 총살됐다.

가족들은 당시 정뜨르비행장에서 총살됐다는 소문을 듣고 그때부터 망인의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는데, 지난해 2월 4.3 유해발굴사업 과정에서 DNA분석을 통해 망인의 신원이 확인되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사실관계에 의하면 소속기관인 경찰 및 군이 적법절차를 무시한 채 망인에게 이 사건 가해행위를 한 다음 사체를 매장했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불법행위로 인해 피해 당사자인 망인 및 그 가족인 원고들이 입은 모든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시효소멸 주장, 재판부 판단은?

이번 심리 과정에서 최대 쟁점은 사건이 발생한지 반세기가 지난 시점에서 '시효 인정' 여부였다.

피고인 국가는 소멸시효가 지나 소송의 권리가 없다고 항변했다.

피고는 사망시점이 1950년7월 하순경이나 원고들이 사망소식을 들은 그해 9월18일로부터 5년이 경과한 점, 또는 원고들이 연좌제의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망인에 대한 허위의 사망신고를 한 1956년 10월1일로부터 3년이 지난 점 등을 들어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의 가해행위는 국가기관의 업무수행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정도의 잘못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그 불법의 정도가 매우 중하다"면서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또 민사재판에서의 입증책임 원칙에 따르면 원고들이 피고들의 불법행위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모든 증거자료를 피고가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고들의 독자적인 노력만으로 입증하기란 매우 불평등했던 점도 들었다.

즉, 소멸시효 내 소송을 제기할 수 없었던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판단이다.

여기에 위법행위를 한 국가가 그 위법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와서 그 위법을 몰랐던 원고들에 대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임무가 있는 국가에게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방어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의 경우 손배소송의 소멸시효는 재심사건의 확정시부터 진행되지만, 이 사건의 경우 유죄의 확정판결 없이 이뤄진 사건이라는 점도 소멸시효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 근거로 제시했다.

결국 이번 재판부의 판결은 사건이 발생한지는 60여년이 흘렀으나, 그 진실의 규명은 최근에야 이뤄진만큼 그 규명의 내용에 따라 국가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갖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는데 의미가 있다.

제주공항 등 예비검속 희생자들의 신원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판결의 사례에 따라 앞으로 많은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연좌제의 불이익이 무서워 차마 드러내 말을 못했던 희생자 가족들이 늦게나마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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