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항변 "해군기지,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습니다"
18일 오후 제주국제공항 1번 게이트 앞, 어딘지 모르게 낯 익은 얼굴이 눈에 띈다.
주인공은 연극배우이자 영화배우인 권병길씨(65).
연극 <오장군의 발톱>, <그대를 속일지라도>에 출연하는 등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영화 <체포왕>, <내 머리속의 지우개>, <공공의 적> 등의 작품에서 감초같은 역할을 맡아왔다. <체포왕>에서는 경찰청장 역을 맡았다.
이 같은 활동으로 지난해 열린 '제30회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예술가상 시상식'에서는 '올해의 최우수예술가 연극부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런 그가 먼 제주땅에서 피켓을 들고 굳은 얼굴로 1인 시위에 나섰다. 무슨 사연일까.
# 4년만에 찾아 온 제주도..."해군기지는 전국적인 문제"
권씨의 사연은 4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4년전 제주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고 했을때 영화인들과 같이 제주도를 내려왔어요. 이 아름다운 제주땅에 해군기지는 말도 안된다고 항의하기 위해서요."
지난 2008년 8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을 만든 임순례 감독과 제주출신 영화배우 김부선씨 등의 영화인들은 제주도를 찾아와 제주 해군기지 반대 투쟁에 나선 바 있다.
당시 영화인들은 "우리들은 태어난 곳과 삶터는 각각 달라도 제주는 누구에게나 영혼의 휴식처고 생명의 고향"이라며 해군기지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과 함께 동참했던 권씨는 이 후에도 제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군기지 문제와 관련해 꾸준히 귀를 기울여 왔다고 한다. 당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으로 동행했던 양윤모 선생과의 친분도 이어오고 있었다.
4년만에 제주를 방문한 권씨는 이번에는 영화인 신분이 아니라 서울 향린교회의 '얼쑤' 합창단원으로 제주에 발을 들였다.
지난 17일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해안에서 열린 '힘내라 강정! 지키자 평화!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해군기지는 제주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입니다. 강정마을 내부적으로 해결될 문제였는데 그렇지 못해서 전국적으로 퍼진 거에요."
# "안보 위한다며 오히려 국토를 파괴하는 이유가 뭐죠?"
이날 양윤모 선생의 병문안을 다녀왔다는 권씨. 병실에서 만난 양 선생이 공항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자 선뜻 자기가 대신 나서겠다고 자원했다.
내일 항공편으로 돌아가지만 하루 만이라도 의지를 보여야겠다는 뜻에서다. 별다른 말을 주고받지도 않은 채 앞선 이의 피켓을 조용히 짊어졌다.
"자연은 한번 파괴하면 돌이킬 수가 없다는 점에서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해쳐도 되는 자연이 있기도 하겠지만, 강정바다는 태고의 신비를 지닌 절대 훼손되서는 안되는 바다에요."
너무 쉽게 훼손되는 자연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인류가 사라져도 남아있을 자연을 너무나 쉽게 파괴하고 있어요. 이런 것이 모두 나쁜 선례가 되는 겁니다."
안보를 위해 해군기지를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오히려 적의 타겟이 될 수 있어요. 또 안보라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지키는 것인데 내가 사는 국토를 파괴하면서 무엇을 지키겠다는 것이죠?"
"저도 처음에는 너무 먼 지역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듯이 제주도가 처한 상황도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비가 떨어지는 날씨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킨 권병길씨. 해군기지 문제가 제주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