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밥통' 공무원이 노조를 왜 만들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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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밥통' 공무원이 노조를 왜 만들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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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공무원노조의 숙명적 탄생 10년, 그리고 과제

공무원노동조합의 숙명적 태동

1998년, 사회적합의안으로 시행된 공무원노조법에 따라 직장협의회를 시작으로 2002년 3월 23일, 공무원노동조합이 결성된 지 10년이 되어가고 있다.

공무원노동조합은 부정부패추방, 근로조건 개선 등 공직사회개혁을 부르짖고 있으며, 나름대로 상당한 기반을 구축한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은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다시 경력직과 특수경력직으로 나뉘며, 무엇보다 근무처가 각각 다르다보니 전국 100만 공무원 중에서 가입대상자만을 볼 때, 70% 이상의 조직가입률을 보이고 있음에도 조직가동률은 그리 높다고 볼 수 없는 특성을 안고 있다. 전국적으로 95개로 흩어져 활동하고 있음이 이를 잘 증명한다.

어쨌든 공무원노동조합의 탄생은 금기시될 것만 같았던 공조직문화의 바람을 상당히 몰고 온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필자가 공직에 입문한 80년대만 하더라도 상사의 구두닦이, 담배, 가계수표 바꿔오기와 같은 자잘한 심부름부터, 여직원은 책상걸레질, 재떨이와 쓰레기통 치우기는 물론, 근무시간 중의 심심찮은 성적수취심도 감내해야 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아득한 이야기의 저자로 단연 공무원노동조합을 손꼽고 있으니 이를 두고 '숙명적으로 탄생되었다'라며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민선시대의 개막, 그러나 또 다른 숙적

95년, 관선의 종지부를 찍고 민선시대를 맞으면서 공직사회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그동안 공직사회는 역동적 조직운용에는 다소 한계가 있었지만 선배의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주며 등을 토닥거려주는, 온정문화가 있었다. 사무관 시험을 치르면서 첫 시험만큼은 후배가 양보한다는 미덕은 이미 알려진 정설이었다.

민선이 시작되면서 지방공직자의 운명은 자치단체장의 손에 갈렸다. 온정은 사라지고 오로지 입신양면만을 위한 조직내부의 보이지 않는 암투가 시작되고, 권력의 끝은 아전투구로 변했다.

A와 B는 공직동기생으로 6급까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서로의 집안 경조사까지를 챙기면서 죽마고우의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5급부터는 그들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단체장은 A를 먼저 승진시켰다. 다음 승진시기에 B가 서야했지만 안타깝게도 지방선거시기를 맞았고, 또 다른 유력단체장 후보자부터 러브 콜을 받아 그들은 운명의 갈림길로 들어섰다.

선거결과는 B가 밀었던 단체장이 승리의 축배를 들면서 드디어 5급이 되었다. 지방에서의 5급은 정책을 입안하는 관리자의 입장에 서면서 그들은 사사건건 부딪혔다. 수평적 저울선은 급기야 수직선으로 변하고, 이에 격분한 A는 차기 지방선거 때를 기다리며 와신상담을 노렸다.

결국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정년을 맞으면서 빈 수레에 몸을 실은 채 조직을 떠났고, 지금은 아무도 없는 쓸쓸한 저 바다에서 홀로 쓴잔을 비우고 있다.

이 좁은 제주 공직사회에서 내 편, 네 편과 같은 편가르기, 오늘도 그들의 답습은 계속 진행형이다.

공무원노동조합에서 선거 줄서기와 같은 부정부패추방은 몇 년이 더 흐른 뒤에나 먼 이야기 속으로 남을지는 안개에 가려져 있다.

공무원노조, 국민들로부터의 따가운 시선의 한계에 대한 도전

일선에 근무하면서 지역단체의 회원들과 막역한 관계를 유지하며 육지부 자매결연지역 견학도 동행했다. 화두 중에 우연히 공무원노동조합이야기가 나왔을 때, 입에 거품을 물며 달려들었다.

"공무원이 하라는 시민 봉사는 뒷전인 채 무슨 노조야?"

"공무원이라면 직장인들을 위해서 휴일 같은 날도 출근해서 증명서를 뗄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발하려는 노력을 해야지, 거꾸로 파업해서 민원실 문 닫으면 나라꼴이 잘도 돌아가겠다."

"이거 이러다가 경찰도, 군인도 노조 만드는 거 아냐?"

'공무원노동조합에게는 파업권(단체행동권)도 없어 언감생심이니 걱정 붙들어 매시라,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어 공조직 내부가 이만큼 투명해졌으며, 이는 곧 시민과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지름길이거든요'라는 항변은 그들의 완강한 목소리에 가려져만 갔다.

시민과 국민, 어쩌면 노동조합이란 하나의 단체가 아니라 이 시대 전체공무원에게 바라고 있는 것이다. 제발 정신 똑바로 차리고 국민본위에 힘써 달라고 말이다.

예전과는 달리 공직사회는 엄청나게 투명해졌다. 그럼에도 간간히 공직자 도덕불감증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전체 집단이 매도당하는 형국이다. 결국, 공조직에서 단 한 사람의 부정부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무서운 질책인 셈이다.

공직자의 청렴은 신기술도 아니고 트레이드도 아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아주 손쉬운 일임에도, 완전히 뿌리를 뽑지 못하는 것은 환경적 요인과 비리의 개연성을 하루빨리 차단해내려는 시스템 개발이 부족했다고 본다.

공무원노동조합에서 풀지 않으면 안 되는 또 다른 과제이기도 하지만 사정당국과 더불어 네티즌수사대와 같은 국민감독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한 반드시 해결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따라서 시민, 국민은 공무원노동조합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을 하루빨리 바꿔주어야 한다.

민간노동조합의 외침도 살아있는 이 시대의 목소리

작년 하반기, 행정안전부 장관이 제주도를 방문했다. 도지사와 함께 정문에 들어서는데, 입구에서 천막농성이 한창인 것을 보고 장관이 말했다.

"아니, 도지사님! 장관이 온다고 밴드까지 동원해 주셨어요?"

도정브리핑이 끝나고 도의회 도민의 방으로 옮겨 기자회견을 하는 시각만큼은 농성 중인 노조원들이 확성기를 잠시 꺼둔 모양이다. 이에 감명을 받은 장관은 돌아가는 길에 세단에서 내려 일일이 노조원들과 악수를 하며 '페어플레이에 감사드린다.'고 화답했다.

뒤늦게 불고 있는 중동의 민주화 바람, 세계 강국에 이미 우뚝 선 우리나라에서의 저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솔로몬의 지혜로 화답한 장관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월 23일,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한 우근민도지사가 서귀포시를 연두방문한 시각과 때를 맞춰 한 민간노조원들이 서귀포시청 정문에서 시위를 했다. 경찰과 서귀포시청 공무원들이 한때 대치하기까지 했다.

우근민도지사께서도 그 광경을 보면서 누구나 당당히, 자유롭게 외칠 수 있는, 민주주의시대에 살고 있는 외침이라 믿고 갔을지, 귀찮은 존재쯤으로 여겼을지는 미지수로 남는다.

권력의 집중, 그리고 분산. 우리들의 몫

민선 5기가 출범하고 대규모 공직인사를 눈앞에 두면서 공무원노동조합은 도지사 면담을 요청했다. 자식이 아버지를 만나는 셈이지만 그 길은 멀고도 험했다.

그렇게도 가까운 길을 돌고 돈 끝에 20여 분의 면담시간이 주어졌지만 대부분은 도지사의 말씀으로 채워졌다. '공직인사를 투명하게 해 달라'는 건의는 허공에 묻어지고, 만남의 상징만으로 종지부를 찍으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지난 2월 23일, 우근민도지사의 연두방문이 이어졌다. 시민과의 대화 시간 후의 스케줄은 현장근무공직자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순으로 짜여졌다. 그러나 시민과의 대화 시간이 길어지면서 현장을 내팽겨 두고 한 달음에 달려온 많은 현장공직자는 차디차게 식어가는 밥상을 앞에 두고 1시간 이상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어느 1차 산업에 종사하는 한 대표는 도지사를 만나러 3번을 시도한 끝에 만나는 자리라고 하는데, 그래도 시민여러분께 시간을 돌려주어 한다는 무언의 분위기에 눌러갔다. 결국 밥 한 끼 먹고 서둘러 떠나는 도지사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면서, 그간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시름을 털어놓고 싶었을까마는 가슴에 묻은 채 각자 일터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지방대통령'이라 불리는 도지사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고 한다. 최근에는 국회에서 상주하는 모양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도지사에게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된 탓이라고 한다. 그러나 도정은 도지사 혼자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도 있고, 장남장녀도, 차남차녀도 있다. 그들 모두는 도정이란 회사를 이끌어가는 임원들이다.

권력의 집중이니 지방대통령이니 이런 말들은 결국 우리들이 만든 것은 아닌가 싶다. 도지사에게 충언을 서슴지 않는 관리자들이라면 도정의 핵심브레인을 활용하는 것도 방편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야누스의 두 얼굴, 양날의 칼날은 우리 손에 달렸다고 본다.

죽어도 미운 철밥통, 그러나 자식만은 공무원으로

친구 녀석들과 함께 대포 한 잔을 기울이는데 3년 만에 봉급을 올린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게 중에 한 명이 "서민경제는 바닥을 치는데 공무원 월급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아닌가 말이야" 라고 외쳤다.

녀석에게 물었다.

"자네 아들 놈,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진로는 결정했나?"

"으~응, 공무원 하겠다고 도서관에서 씨름 중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근래 공무원시험에 붙으려면 100대1의 경쟁은 기본이다. 갈수록 청년실업이 증가추세에 있은 탓에 일시에 공무원으로 몰리는 현상도 있겠지만, 아무튼 공무원이란 직업은 이 시대 최고의 명품이다.

공무원을 탓하거나 매도하기에 앞서 부모도, 당사자도 한 가지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이 있다.

공조직이란 전방부대와도 같다. 군대보다 더한 엄연한 계급사회이며, 대체적이지만 5급을 기준으로 실무직과 관리직으로 갈린다.

5급 사무관을 달지 못하면 평생 장교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군대로 말하면 원사계급장을 끝으로, 소위계급장을 달고 나타난 자식 같은 후배들에게 등 높은 의자를 물려주어야 하는 철저한 계급사회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계급과 급여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소위 '오래된 짠밥'은 새내기보다 월급의 세 배를 꿰차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모든 것이 그렇듯 공조직 또한, 처음 입소하면 엄청난 시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밖에 있었을 땐, 그저 철밥통의 하소연이라고 치부했겠지만 막상 들어와 보면 단내 쓴 내를 다 마셔야 하는 것이 공조직이다.

영어책 버리고 국어책 펼쳐야

인사업무에 정통한 한 선배는 처음 새내기를 접하고 며칠만 지켜보면 책상머리에 앉아 기획통에 어울릴지, 영원히 일선만 돌면서 쓰레기나 치우는 일이 어울리지 금방 판가름이 난다는 경험담을 털어놨다.

어찌되었든 공직에 입문하는 순간, 영어책은 잠시 접고 국어책을 펼치기를 권한다. 공조직은 '공문에 살고 공문에 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3개 외국에 능통한다고 하여도 맞춤법 하나 틀린 공문서를 받아본 시민은 조직 전체를 폄하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첫 발령지부터 물 좋은 곳으로는 만무하며, 십중팔구 일선에 배치된다. 읍면장이나 지역의 자생단체장 앞에서 길 잃은 외국인이 찾아와 묻는다면 외국어로 척척 안내해 줄 자신이 있겠지만 그런 확률을 기대는 순간, 고양이 한 마리가 차에 치여 내장이 튀어나와 있으니 빨리 치워 달라 전화가 빗발칠 것이다. 환경미화원을 찾기에 앞서 빗자루 들고 직접 달려 나가는 것만이 고가점수를 받는 최선의 지름길이다.

공조직사회는 초등학교처럼 조직의 굴레를 벗어날 때까지 '근무평정'이라는 성적표가 있다. 이 성적표는 승진의 기초자료이므로 싫든 좋든 따라야 한다. 간혹 연줄을 동원해서 뒤엎을 생각이라면 이미 조직에서는 도태되어야 할 무능력자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에 뼈를 묻는 날까지 청렴해야 한다는 심성만큼은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한다. 현행 시스템으로는 그가 공직자로서의 도덕성을 갖추고 있는지 없는지, 시험지로 가려낼 수 없어 이분방정식으로 채점을 매겼을 뿐이다.

공무원노동조합의 손짓, '철밥통'이라는 오명을 벗는 지름길

공무원노동조합은 새내기가 조직에 들어올 때마다 '신규직 환영식'을 개최하지만 가입률은 기대치보다는 밑도는 형국이다.

과거, 출범 당시의 원대한 기대치와 솟구치는 투지가 있었던 기존 선배공직자와 견주는 것은 무리수이겠지만, 앞으로의 공직사회 개혁은 누구의 손도 아닌, 스스로에게 달려 있음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고 보며, 그 길은 공무원노동조합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강문상 전국공무원노조 서귀포시지부장. <헤드라인제주>
작금의 노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핵심간부들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는 또 다른 과제를 안고 있다.

'배고픈 시절에 눈물 젖은 빵으로 인권쟁취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도 옛날이야기이다.

근래 공직에 입문하는 새내기의 면면을 살펴보면 훌륭한 집안환경 속에 올곧게 성장한 공직자가 대부분이다. “내가 왜 노동자입니까?”라며 노동자이기를 자처하기 보다는 스스로 리더이기를 자처하는 것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공무원노동조합 출범 10년, 완전한 공직노사문화를 꽃피는 그날까지 그 수고의 짐을 나눠짊어지고 간다면 역동적인 공직사회가 앞당겨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강문상 / 전국공무원노조 서귀포시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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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2011-03-06 18:57:47 | 220.***.***.73
많은것울 제시해주는 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