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의 오늘]<14>추억의 스무번째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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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오늘]<14>추억의 스무번째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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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 때문에 자면서 땀을 많이 흘린 탓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데, 부엌에서 어머니께서 부르신다.

얼른 닦고 부엌에 가 보니 정성스레 차린 밥상에 미역국이 눈에 들어온다.

“웬 미역국이에요?”하고 물으니 “오늘이 너 생일 아니니.”하신다.

그 동안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생일조차도 잊고 지낸 것이다.

어머니께서 정성스레 차려주신 아침을 맛있게 먹고 난 후 내 방에 들어오니 어머니께서 후식으로 얼음이 동동 뜬 수박화채를 가져다주셨다.

그것을 먹으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창문을 열어 보니 더위를 식히는 장대비가 내렸다.

뉴스를 보다 보면 육지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홍수피해가 심각한데 제주도는 비는 커녕 열대야로 두어 달을 밤잠 설치게 만들더니 최근 들어 가끔 내리는 장대 같은 소나기가 반가웠는데, 오늘은 내 생일에 선물이라도 하듯 아침부터 시원하게 내렸다.

가만히 창문너머로 비 내리는 걸 보고 있으니 20대에 갓 접어든 스물 한 살 때의 내 생일이 스쳐 지나간다.

때는 1991년 8월11일. 나에겐 너무나 재밌고 소중한 추억이었다.

내가 막 사회에 첫 발을 들여 장애인 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몇몇 친구들과 친한 누나랑 한 다섯 명 정도 집으로 초대하기로 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초대한 사람 수에 맞춰 간단하게 식사와 약간의 음료와 다과와 술을 준비해 주셨다.

그렇게 조촐한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낮까지 멀쩡하던 날씨가 저녁이 되자,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더니 급기야 장대 같은 폭우로 돌변했다.

“왜 하필 이제야 이렇게 폭우가 내리는 거야?”하며 혼잣말로 투덜대면서 초대한 사람들을 기다리는데, 한 두 명씩 오는데 모두 다 물에 빠진 생쥐 모양을 하고 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친구가 제일 걱정이다.

낮에 장애인협회 청년부 임원진 모임이 있어 조금 늦는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어떻게 올지 막막할 뿐이었다.

친구 끝나는 시간대로 약속은 잡아놓고, 이미 도착한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면서 기다리는데 밖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얼른 나가 보니 대문 밖에는 여덟 명 정도의 청년부 임원들이 비에 흠뻑 젖은 채로 대기하고 있었다. 예정에 없었던 일이라 참 난감할 뿐이었다.

아버지께서 밖에서 기다리던 청년부 임원진들을 얼른 들여보내시곤 있는 수건들을 모두 꺼내 건네 주셨다.

그 친구를 조용히 불러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임원진 회의가 끝나 식사하러 가는데, 친구가 약속이 있어 먼저 간다니까 무슨 약속이냐 물어 내 생일에 초대받아서 간다고 했더니 그런 자리 있으면 우리도 가서 축하해 줘야지 하면서 모두 같이 왔다고 했다.

준비한 음식이 턱없이 모자라서 나는 부모님 눈치를 보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얼른 쌀을 씻어 밥을 지으시고, 아버지께서는 음료와 주류를 사러 그 빗속에 상점을 다녀오시는 것을 보니 너무 고마웠다.

어느 정도 자리가 정리 되어 생일파티가 시작되었고, 케잌의 촛불을 끄고 나니 청년부장님이 임원을 대표해서 선물을 주었고, 총무님으로부터 난생 처음으로 스무 송이의 장미꽃을 받았다.

또한 청년부장님이 맥주 한 잔 따라 주시며 아버지께 한 말씀 하시라고 하자 “예정에 없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조금은 당황했는데, 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우리 아들 생일 축하해주러 와줘서 너무 고맙고 음식이 좀 적더라도 맛있게 먹고 즐겁게 놀다 갔으면 합니다.”고 하셨다.

순간 내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부모님 감사합니다’하고 마음속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우리는 너무나 즐겁게 놀았고, 그런 모습을 아버지께서는 캠코더와 사진기로 한 장면 한 장면 찍어 주셨다.

그 후로 나도 청년부 임원 활동을 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사회에 적응하게 되었다.

파티가 끝난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 갈 때까지도 여전히 힘찬 빗줄기가 쏟아 붓고 있었다. 한참을 창밖을 보며 그 날을 생각하다 보니 수박화채속의 얼음이 다 녹아 달고 맛있었던 화채가 맹물이 되어 버렸다. 

‘오랜만에 앨범을 꺼내 그때 사진이나 봐야겠다. ’
 

이성복님 그는...
 

이성복님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연대 회원으로, 뇌변병 2급 장애를 딛고 지난 2006년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가을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수필가로 등단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적극적인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이성복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이성복 객원필진/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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