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예술에 대한 존대 : 문화복지살롱 토크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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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예술에 대한 존대 : 문화복지살롱 토크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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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수 /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제주에서 건강한 문화예술운동의 한 축이 시작되었다. 문화복지살롱 모임과 토론, 실천이 그 운동이다. 오늘 날짜로 샘하면 재작년이 되었지만 2022년에 시작한 모임이다. 2023년 12월 26일에는 창립 1주년 기념으로 토크콘서트형식을 빌어 토론식 자축연을 개최했다. 기고문을 쓰는 제가 참석하여 토크콘서트를 이끌었다. 그 내용과 활동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행사는 “가난한 예술에 대한 존대, 도민의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세미나 형태로 진행했다. 각 프레이즈 사이에 피페, 소프라니노 섹소폰, 유포늄, 건반을 반주로하는 노래, 무반주 가곡 등을 연주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첫째, 문화예술복지에는 두 측면이 있다. 예술가의 가난을 생각하는 복지와 문화예술적 약자를 지원해야하는 문화예술복지이다. 복지라는 단어에도 내포되어 있듯이 국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예술가의 가난은 보몰(Baumol)의 비용질병(cost disease) 혹은 Baumol’s Disease라고 불리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만들어져도 예술가들의 예술적 소양은 그 예술가의 시간적 비용에 의존해야하기 때문에 부가가치를 갑자기 높일 수 없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프랑스 앙떼르미땅(intermittents du spectacle)이라는 실업보험제도가 있고, 우리나라도 2020년 12월 10일부터 예술인 고용보험을 시작했다. 이 제도가 현실화되길 바라고 있다. 
  
고객으로서 문화예술적 약자들에 대한 복지도 생각해야 한다. 농촌지역 주민들, 오페라 공연장이 없어서 제대로운 오페라를 즐기기 어려운 지역주민들, 수능준비 때문에 시간내기 어려운 고교생들 등이 약자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예술향유를 위해 배려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논의를 했다. 

둘째, 예술시장은 가난한 상황임에도 독식하는 승자가 있다. 한류상황에서는 이러한 코드를 읽어내고, 예술가들세계에서 위너가 될 수 있도록 키워내야할 필요가 있다. 승자의 독식성(Winer’s economy), 슈퍼스타의 경제학(economics of superstars) 등으로 표현되는 개념이다. 1) 기초투자비용이 크고, 그 다음은 한계 생산비용은 점차 줄어드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가 예술가들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초기 투자비용을 충분히 갖춘 예술가들이 결국은 승자가 되더라는 이야기이다. 2) 길러진 취향(cultivated taste)이라는 개념에 맞게 해당 장르를 지속적으로 노출시켜서 매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3) 국내외 네트워크(network externality)를 잘 갖추고, 그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4) 고객들이 소비하면서도 으시댈 수 있는 지위상품(status goods)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소비를 유도하고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어서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승자가 되기 위한 요소들을 지속적으로 성찰하게 안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셋째, 환경 중 부모의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부르디외(Bourdieu)의 취향과 아비투스(habitus), 그로 인한 구별짓기(La Distinction)라는 개념이 있다. 부모의 학력 혹은 문화예술수준이 아이들의 계급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무서운 이야기이다.  우리 아이들의 문화예술향유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들의 노력과 취향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문화예술 분야의 약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모들의 역할이 중요함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교훈을 주는 논리이다.    

넷째, 예술과 관련한 행복에 대해서는 프로와 아마추어 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누가 더 행복할까?에 대해 고민하면서 예술가들도 행복을 찾아야하고, 고객인 아마츄어들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전문 예술가들은 예술행위에 대해 평가를 받고, 수입과 연결한다. 그래서 힘들 수 있다. 아마츄어이면서 고객들이 하는 예술행위는 평가보다는 칭찬을 받으면서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거기에다가 앤디 메리필드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예술가들이 권력에 고개를 숙이거나 돈을 받고 영혼을 팔아버리는“영혼 없는 전문가”가 되면 비난까지 받게 된다. 반면, 문화예술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우리 고객들은 예술행위를 통해 오히려 더 행복해질 수도 있다는 프레임으로 적극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섯째, 예술가에 대한 보답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디드로(Diderot)는 국가가 예술가들을 도와야한다는 주장을 한다. 예술가의 희극에 대해서는 국가적 유머를 만들라고 부탁한 댓가이니 지원해줘야하고, 비극작가 등에 대해서는 국가적 덕성을 가르치도록 부탁했다는 측면에 대한 보답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근거와 명분을 지속적으로 찾아줄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여섯째, 국가가 항시 지원해야할 경비라는 측면에서도 도와야한다는 주장이 있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교육분야에서 예술과 공중오락에 대한 지원이 국가가 지원해야할 하나의 경비라는 측면이다. 다만 도와주더라도 적당히 간섭하라는 개념이 케인즈(Keynes)의 팔길이의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다. 그래서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은 쉽지 않다. 도와주더라도 영혼에 대한 개입과 간섭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정부도 이러한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공직자들의 예술에 대한 인지정도가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칠 듯 하다. 공직자분들은 또 하나의 고민을 해야 한다. 공직자분들에게 달라붙어서 꿀을 빨아가려는 지대추구행위(rent-seeking)를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와 연결하여 보조금 등을 지속적으로 얻어내려는 행위자들을 막아내 주어야, 백그라운드가 없는 예술가들이 투명하고 객관적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운동장은 기울 수 밖에 없지만, 최대한 기울지 않게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곱째, 예술가도 사회에대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논의되기 시작한 예술가의 시민성에 대한 개념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1) 계몽(enlightenment spirit)의 시민성, 2) 저항(spirit of resistance)의 시민성으로 나누어 고민할 수 있다. 들뢰즈(Deleuze)는 “예술은 저항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것은 곧 과거에 대한 저항. 삶을 힘들게 하는 권력, 어리석고 저속한 것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술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론을 맺으면서 기고자는 문화복지살롱 회원님들이 문화예술의 약자들인 예술가와 일반 고객들을 항상 품어내 주기를 바란다고 말씀드렸다. 봉사의 순수성에 의미를 부여하여, 문화예술복지 측면의 봉사운동에 앞장 설 주체가 되어주길 바란다고 말씀드렸다. 중요한 것은 실천정신과 지속성이라는 측면이라고도 말씀드렸다.  
  
제주를 한류의 성지로 만들고, 모든 도민을 예술의 최고향유자로 만들 문화예술운동의 한 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축이 바로 문화복지살롱이다. <황경수 / 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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