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탄탄대로 걷던 게임 디자이너, '가파도'에 정착한 사연은?
상태바
서울서 탄탄대로 걷던 게임 디자이너, '가파도'에 정착한 사연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용예 작가, 가파도서 해녀에 매료돼..사진 찍다 정착 후 '물질'까지
"해녀에게 바다는 삶과의 사투..강인함 속에서 '공동체'.'생명력' 발견해"
ⓒ헤드라인제주
17일 제주시 애월읍 소재 카페에서 <헤드라인제주>취재진과 만난 유용예 사진작가 ⓒ헤드라인제주

서울에서 탄탄대로의 삶을 살던 게임 아트 디자이너. 그런 '육지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사진기' 하나만 챙겨 대뜸 제주로 떠나왔다.

그런데 하필 제주도 중에서도 섬 속에 섬인 가파도에 정착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주, 그 중에서도 가파도에서 그녀가 마주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람이 살다 보면 위기의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때 찾은 가파도에서 해녀삼춘을 만났어요. 바다와 연결된 정신력과 생명력...섬세하면서도 경이롭고 아름다운 그 어떠한 수식어로도 설명이 안됐어요. 그 분과 함께 바라보던 바다를 통해 어떤 운명의 지점을 찾았던거 같아요."

<헤드라인제주> 취재진은 지난 17일 산발적인 비가 내리던 애월읍의 어느 어느 카페에서 오랜만에 시내로 마실 나온 유용예(42) 작가를 만나 가파도와 제주해녀에 대한 그녀의 각별한 애정, 가파도 해녀들의 뭉클한 인생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유 작가는 현재 가파도에서 사진으로 해녀의 삶을 담고 있다. 해녀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도 있다. 체계적인 작업을 위해 사진관도 차렸다. 그들의 삶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바다에 나가 직접 '물질'도 하다가 지금은 가파도어촌계장 책무까지 맡았다.

유 작가는 "가파도와 해녀삼춘들은 나의 삶이 됐다. 이제는 그들 없이 나를 설명할 수 없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울 잘나가는 게임아트 디자이너, 어느날 몸과 마음이 주저앉기 시작했다

충청도 산골짜기 어느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숲과 동물 등 자연과 친숙하게 지내며 자란 그녀는 성인이 되고 학업을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학업을 마치고 게임회사에 취업한 그녀는 "기괴하고 말도 안되는 상상하는 걸 어렸을 때부터 즐겼다. 그래서 머릿속의 판타지를 3D 공간 안에 시각화시키는 게임아트 일이 너무 잘 맞았다"며 "일을 너무 많이 해 '크레이지 워크상'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게임업계의 특성상 타 직업군보다 개인 생활이 자유롭기도 했다"며 "미친 듯이 한 두 달 일하고 보름 이상 해외여행을 가거나 문화생활을 즐겼다"고 했다.

유 작가는 쉬는 날에는 국내와 해외 곳곳을 누볐다. 그때마다 그녀가 항상 챙겼던 물건은 바로 '사진기'. 유년시절 집에는 늘 카메라가 있었고 습관처럼 그것을 갖고 다녔다. 유 작가에게 사진은 취미라기 보단 삶이었다.

지난 2018년 가파도에서 열린 유 대표의 제주해녀 사진전 '섬섬' ⓒ헤드라인제주
2018년 가파도에서 열린 유 작가의 제주해녀 사진전 '섬섬'. 자신의 작품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헤드라인제주

안정적인 직장이 보장되고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삶.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생활을 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우울함이 차올랐다.

유 작가는 "경쟁의 나날들 속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마주했다. 건강에 심각한 문제도 생겼고 안 좋은 일들도 한꺼번에 겹쳤다. 모든 감각과 생각이 약해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제주도를 찾았다. "사람보다 자연에서 더 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지난 2004년 4월. 제주도를 걸어서 일주할 때 마라도 가는 길에 우연히 가파도를 본 것이 화두였다. 유 작가는 "바다 위에 초록 이끼가 잔뜩 덮힌 그곳이 가파도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초록 이끼를 가진 섬이라니. 아직도 그 순간이 잊히질 않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녀는 "그래서 마라도는 발도 안 디디고 그대로 돌아와 가파도 가는 배편을 찾았다"며 "그때부터 마음이 힘들 때마다 몰래 가파도를 오갔다"고 말했다.

유 작가의 삶에 가파도가 들어서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무사 혼자 앉장 바당만 봠시니?"

어느날 가파도에서 멍하니 바다를 보고 있는 유 작가 옆에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무사 혼자 앉장 바당만 봠시니?"

젊은 여자가 혼자 바닷가에 앉아 있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던 해녀삼춘이었다. 당시 유 작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어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알아서 가시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옆에 털썩 앉더니 이해도 안가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유 작가는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고 계셨다. 당시 개인적으로 너무 심각한 상황이었던지라 무엇에도 관심이 가지 않았는데 할머니는 끝까지 말을 이어가셨다"고 설명했다.

그 이야기들을 잠자코 들었다. 유 작가는 "그 분이 하셨던 이야기는 대충 자신은 해녀이고 바다는 온통 '생'과 '숨'이고 바다를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헤드라인제주
유 작가가 수중에서 촬영한 물질하는 가파도 해녀. ⓒ헤드라인제주

꽤나 긴 시간이 흘렀다. 유 작가는 "할머니의 말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알 수 없는 감정이 계속 차올랐다"고 했다. "해녀삼춘의 눈을 쳐다봤고 그곳에는 가파도의 검푸른 바다가 가득했다. 강인한 것이 있었는데 동시에 따뜻한 무엇도 함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바다를 끼고 살던 그녀와 바다 앞에 있는 나에 대한 시선과 생각이 교차하는 순간이 있었다"며 "그때부터 해녀라는 사람들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바다에 생이 가득하다는 것, 매번 생과 사를 오가는 삶을 산다면서도 결국 살아진다는 것에 대해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 작가는 가파도에서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이 주는 정체모를 울림이 그녀에게 삶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지를 불어넣고 있었다.

◇"해녀에게 바다는 생계와의 '사투'이자 삶의 '애환'이었다"

유 작가는 지난 2012년부터 가파도에 본격적으로 정착했다. 그리고 사진기를 들고 해녀삼춘들을 졸졸 쫓아다녔다.

그녀는 "처음에 해녀삼춘들이 사진기를 부셔버리겠다고 할 정도로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간이 지나 깨닫게 됐는데, 해녀삼춘들에게 바다속 삶은 자부심 보단 생계와의 사투이자 애환이었다. 지금이야 그들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해녀를 좋은 직업군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또 "작업 후 바다에서 나온 모습을 보면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특히 한 겨울에 물속에서 작업하고 물 밖에서 불을 쬘 때는 해녀들 스스로가 자신을 남루하다 생각해 남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가파도는 다른 곳보다도 고립된 곳이라 더욱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헤드라인제주
유 작가가 수중에서 촬영한 물질하는 가파도 해녀. ⓒ헤드라인제주

유 작가는 해녀들이 자신을 의식하지 않을 때까지 그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사진기는 들고 다니지 않았다. 대신 옆에서 잡일을 돕고 말동무가 됐다. 매몰찼던 시간만 1년. 그 시간이 지나자 해녀삼춘들도, 바다도 조금씩 유 작가를 허락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삼촌들에게 허락을 받고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으로 그들의 무엇을 담아야겠다는 목표나 방향은 없었다. 다만 가파도 해녀를 단순히 그들의 삶으로만 끝내선 안되겠다는 생각만큼은 확실했다. "그들의 눈에서 찰랑거리는 바다를, 그들이 지닌 강인한 정신과 생명력을 꼭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 기록이 아닌 해녀 한명 한명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유 작가는 "나의 생각과 시선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최우선적이었던 것은 해녀의 삶과 역사, 문화가 왜곡되거나 잘못 이해되지 않게끔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파도 해녀들 뒤집힌 날...'여간첩' 소동

유 작가는 해녀삼춘들의 집에서 얹혀 살았다. 가파도 이곳저곳을 떠돌며 어느 해녀삼춘 집에 방이 남으면 그곳에서 잠시 머무르고 다시 옮겨 다니길 반복했다.

해녀삼춘들은 새벽부터 물질을 시작하기 때문에 오후 8시만 되면 잠자리에 들었다. 유 작가에게는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작업 시간이었다.

그녀는 "삼춘들이 잠들기 시작하면 노트북을 키고 그날 찍은 사진을 작업했다. 눈이 밝으신 삼촌들이 그만 잠 좀 자라고 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작업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마을 사람들이 유 작가를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녀를 보며 몰래 수군거리기도 했다.

"솔직허게 고라보라...너이 여간첩 아니냐아?"

순진한 마을사람들에게 유 작가는 아무래도 이상했던 것이다. 젊은 여자가 먹고 놀기만 하는데 돈은 떨어지지 않고, 이곳저곳 사진만 찍다가 남들 다 잘 시간에는 수상한 작업을 하고. 또 섬의 지도를 그리더니 해녀들이 어디서 물질하고 있나,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일일이 기록하고. 그들에게는 간첩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될 일이었다.

유 작가는 "어느날엔 밤에 삼촌이 깰까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조용히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불을 가만히 뒤로 밀며 시선이 느껴지는 방문을 봤는데 삼촌이 눈 하나만 빼꼼 내놓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냥 재밌었다고만 말할 수는 없었다. 순진한 가파도 삼춘들에게는 여전히 4.3의 고통이, 외부인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있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고 설명했다.

한바탕 '가파도 여간첩' 소동이 지나가고 그 사건을 계기로 유 작가와 해녀들은 한층 더 가까워졌다.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해녀들의 '물벗'까지 된 것이다.

◇해녀들의 '물벗'된 유 작가 "경쟁하면서도 숨을 의지하는 관계에 '공동체 정신' 있어"

유 작가와 해녀들의 거리감은 갈수록 좁혀졌지만 끝내 극복할 수 없는 지점이 있었다. 바로 '숨'을 의지하는 사이였다.

해녀들과 더 깊은 유대감을 쌓기 위해서는, 사진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처럼 고무옷을 입고 테왁에 의지하고 한 손에는 골갱이를 들고 바다일을 경험해야만 했다. 유 작가는 여기에 카메라까지 들고 해녀 할망들과 함께 물질을 시작했다.

ⓒ헤드라인제주
유 작가가 촬영한 가파도 해녀. 얼굴과 손에 새겨진 주름에는 바다에서 고된 시간을 보낸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헤드라인제주

유 작가는 "직접 물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더 '그들을 더 지켜줘야겠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가파도 해녀문화를 전승하기 위해 누군가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정말 해녀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녀는 정식 수순을 밟아 끝내 '물벗'이 됐다. 유 작가는 "'물벗'은 다른 지역 해녀들보다 가파도 해녀들이 특히나 자주 쓰는 말이다. 단순히 '같이 바다일 하는 사이'로 이해하면 안 된다. 그 관계는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 그리고 삶의 시련과 아름다움을 함께 하는...말로 전부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다"고 말했다.

이어 "물벗이 이제는 나의 모든 이야기가 되고 있다. 서로의 호흡을, 생을 지켜보는 관계에서 나의 새로운 모습이 만들어지고 있다. 사진작업도 더 다채로워지고 있다"며 "해녀의 많은 것을 닮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헤드라인제주
바다에 입수하기 전 수경을 정비하는 유 작가. ⓒ헤드라인제주

지금 그녀는 가파도 어촌계장까지 맡고 있다. 주도적으로 바다일에 나설 뿐만 아니라 해녀들의 기억과는 새로운 '해녀바당밭 지도'도 그리고 있다. 자연환경이 급속도로 변하고 섬 내외에서 여러 가지 개발로 옛날 가파도와는 다른 지형, 생물개체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물에 들어갈 때마다 그날의 바다를 기록한다. 어떤 삼촌이 어떤 포인트를 좋아하는지도 기록한다. 그렇게 쌓인 데이터에 해녀삼춘들의 기억을 보태서 보다 정밀하고 체계적인 가파도바당지도를 설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관 개관부터 다양한 해녀프로젝트까지...유 작가의 꿈 '제주해녀잇기'

지난 2019년 유 작가는 가파도에 사진관을 정식적으로 개관했다. 사진관을 차린 이유는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해녀삼춘들이 언젠가 사진 좀 찍어달라는 얘기를 할 거 같아서"다. 지금은 이곳에서 해녀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사진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유 작가는 "해녀들이 신기한 듯이 자신의 사진을 보곤 했다. 사진전 할 때 어떤 삼춘은 관광객에게 저 사진이 본인이라고 얘기하면서 사진에 대해 자랑스럽게 설명하기도 했다. 미국에 있는 동생에게 사진을 보내주고 싶다고 부탁한 삼촌도 있었다"며 "그때가 가장 감동적이었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유 대표와 가파도 해녀. 바다에 들어가지 않을 때는 장비를 꼼꼼하게 점검한다. ⓒ헤드라인제주
유 작가와 가파도 해녀가 '물소중이(물질 할 때 입는 작업복)' 복원작업을 하고 있다. 유 작가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을 때 해녀 삼춘들로부터 가파도만의 독특한 해녀문화를 전승받는다. ⓒ헤드라인제주

유 작가는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제주 곳곳의 섬들을, 각 지역마다 다른 제주 해녀의 문화들을 연결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지난 2018년부터 2019년도까지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해녀문화 기록 보존과 전승-홈커핑'이다. 가파도 해녀를 다룬 사진전이면서 타 지역 해녀들과의 문화교류전이기도 하다. '제주해녀 잇기'의 기반이 된 프로젝트다.

지금은 '섬사람' 프로젝트, '가파도 해녀바당밭 기록지', '할망바당'과 '물벗' 사진집 출판 등을 기획하고 있다. 가파초 아이들에게 해녀 문화를 전승하고자 가파도 아카이빙 기록집 작업도 하고 있다.

유 작가는 "팬데믹으로 외부적인 활동은 줄었지만 섬의 생활사와 해녀 기록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도 해녀에 대한 모든 사진과 기록 작업은 이 섬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라며 "가파도 해녀에서 시작해 제주 곳곳의 해녀들 간의 연결망을 찾는, 각자의 기억을 공유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작가에게 가파도와 해녀는 여전히 신기하고 아름다운, 동시에 뭉클한 무엇이 있는 존재다. 그녀는 "갈수록 해녀의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들이 많아진다. 사람들은 제주해녀가 냉철하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보면 결단력과 과감함이라고 볼 수 있다"며 "그런 그들의 성격 덕분에 제주의 어촌계가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들의 성격을 닮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해녀들은 중요한 순간에는 꼭 '사람'을 먼저 선택한다. 가파도 뿐만 아니라 제주해녀의 포용력은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부분"이라며 "그들이 한평생 바다에서 살아서 그런지 (바다처럼) 넓고 깊은 마음을 안고 있다. 해녀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하나의 차원을, 세계를 안고 있는 따뜻하고 신비한 존재"라고 말했다. <헤드라인제주> 

ⓒ헤드라인제주
2019년 가파도에서 열린 유 작가의 가파도 해녀프로젝트 '홈커밍' ⓒ헤드라인제주
지난 2018년 가파도에서 열린 유 대표의 제주해녀 사진전 '섬섬'ⓒ헤드라인제주
지난 2018년 가파도에서 열린 유 작가의 제주해녀 사진전 '섬섬' ⓒ헤드라인제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