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의 오늘]<6>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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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오늘]<6>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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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얼른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에 갔다.

차에서 내려 막 들어가려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 주머니를 만져보니 휴대폰이 없어진 걸 알았다. 처음엔 내가 휴대폰을 집에다 놔두고 나왔을 거로 생각하다가 문득 걸어 다니다가 길가에 떨어뜨린 것을 모르고 그냥 지나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치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주머니를 손으로 만지면서 다시 한번 더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그런데 내가 택시를 타고 오면서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고, 답장을 하다가 목적지 앞에서 멈추자 택시비를 지불하고 얼른 내려 버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어떡하랴. 택시는 이미 내 시야에서 멀리 사라져 버린 한참 뒤였는데...

얼른 안으로 들어가 먼저 와 있는 사람의 핸드폰을 잠시 빌려서 내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내 귓속으로 점점 크게 들려 왔다. “여보세요...”라는 기사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기사분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후우~󰡓하는 안도의 한숨 소리가 나왔다.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 했더니 그 기사 분이 “지금 손님을 태우고 멀리 가는 중이어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연락 할게요.” 라는 대답이 휴대폰을 통해 흘러나오자 너무나 기뻤다.
 
잠시뿐이었지만 친구들과 약속을 한 뒤라 휴대폰을 차에 두고 내린 나는 정말 바퀴 없는 자전거처럼 오도 가도 못하고 막막했다.  

지니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그저 평범한 전화기 하나가 있고 없음이 이렇게 사람이 막막해 지다니...

이렇듯 요즘에는 휴대폰 없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모든 사람들의 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무선 호출기 ‘삐삐’만 있어도 공중전화기가 있는 곳에서는 언제든지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무선 호출기도 나오지 않고, 이런 저런 이유로 길가에 세워진 공중전화 부스도 많이 없어졌다.

내가 갓 성인이 되던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휴대폰은 그저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들이나 갖고 다녔고, 무선 호출기조차도 몇몇 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소지품일 뿐이었다.

휴대폰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그거 무전기냐?”할 정도로 부피가 꽤 크고 무겁기도 하고, 색상도 검은색이 많아서 우스겟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전자통신 기술이 발전하다 보니 점점 부피가 작아지면서 ‘슬림’ 하고 아기자기한 모양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휴대폰 값이 너무 비싸서 한 때는 부의 상징이 되기도 했었지만 요즘에는 휴대폰 없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처음에는 기본음만을 사용했었는데, 이제는 기본음 외에 컴퓨터와 MP3로 다양한 벨소리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어 벨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의 취향이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사람도 있다는 인터넷 기사를 읽고 다시 한 번 놀랐다.

편리함을 무기로 일상에 깊숙이 파고든 핸드폰은 때로는 장소에 따라 벨소리를 진동으로 놓거나 잠시 꺼놔야 되는 경우가 있는데, 공연장이나 장례식장 같은 엄숙한 장소에서는 특히 주의를 해야 한다.

언젠가 지인의 조문을 갔었던 적이 있다. 문상을 하는데, 어떤 분이 헌화를 하고 나서 상주 가족들에게 절을 하는데, 갑자기 󰡒와 이리 좋노~󰡓하는 흥겨운 민요의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절을 하던 상주의 얼굴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벨소리의 주인공은 당황해 하면서 얼굴을 숙인 채 황급히 자리를 빠져 나갔지만 그 빈자리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색함이 잠시 맴돌았다.

휴대폰의 편리함 때문에 생기는 난감한 경우가 또 있다. 휴대폰을 일상의 ‘메모장’처럼 사용하는 사례가 많아져 전화번호의 경우는 아예 휴대폰에 저장하고 다니기 때문에 분실했거나 잠시 갖고 나오지 않았을 때, 급하게 전화번호를 기억해야 할 상황엔 난감하기 짝이 없다.

요즘 신세대들에게는 휴대폰 하나면 만사 OK. 은행 업무는 물론이고 심지어 라디오와 TV시청까지 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은 이런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얼마 지났을까’ 조금 전 그 기사님과 연락이 되어 내가 있는 곳으로 온단다.

지금 내가 소지하고 있는 휴대폰은 동생이 내 생일 선물로 사 준 것이어서 정말 내게는 값지고 소중한 게 아닐 수가 없다.

약간의 사례비를 준비하고 약속장소에 나가 기다렸다. 조금 전 탔던 택시가 보이자 손짓을 하고는 휴대폰을 넘겨받고 “정말 고맙습니다. 얼마 되지 않지만 사례비를 드릴게요.”라고 하자, 그 기사님은 웃으면서 “사례비는 됐고요. 몸도 불편하신데 핸드폰이 없어 많이 불편했겠어요? 제가 좀 멀리 있어서요. 다음부터는 잘 챙기세요.” 하면서 사례비도 안 받고 그냥 가버렸다.

어떤 기사들은 자기들 귀찮으면 우체국이나 편의점에 갖다 줘서 돈을 챙기는데, 참으로 고마우신 분이었다.

휴대폰을 돌려받고 보니 친구들로부터 부재중 수신이 엄청 쌓여있었다. 얼른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급해진다...

이성복씨 그는...
 
이성복님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연대 회원으로, 뇌변병 2급 장애를 딛고 지난 2006년 종합문예지 '대한문학'가을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수필가로 등단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적극적인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이성복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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