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수의 꽁트] (13) 내 탓이 아니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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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수의 꽁트] (13) 내 탓이 아니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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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람들은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중등학교 교사로서 일생을 바칠 결심으로 있는 나로서는 이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물어볼 때가 많은데, 그 때마다 학교선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일치된 사회통념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교직이 화려하거나 끗발 좋은 직업은 아니지만, 교사들이 우리 사회에서 상당한 존경의 대상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교사를 존경하는 세상사람들의 마음에는,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누구는  학교선생인데 어떻게 그런 언어폭력을 쓸 수 있겠느냐, 어떤 사람이 이런 식의 말을 했다면, 그에게는 교사들의 품행과 습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학교선생은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이것 때문에 나는 요즘 심한 고민에 빠져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일 때문이다. 우리 집과 울담 하나 건넌 이웃집은 아주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로 지내온 사이인데, 그 집의 둘째 아들,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학생이 가출사고를 낸 것이 꼭 내가 관련된 돌발 사건 때문이라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30대 후반의 미혼 남자인 나는 자유로운 몸이어서 극장구경도 자주 가는 편이다. 한 달쯤 전에 18금 성인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바로 그 이웃집 고등학생을 극장 로비에서 만났는데, 그 조그만 사건이 얼마 후 그 학생의 가출사고를 촉발하는 계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 이웃집 가족들에게 비쳐진 나의 이미지가 불미스러운 데가 없을 것은 오랜 세월을 사이좋고 원만한 이웃사촌으로 지내온 것으로 미루어 짐작이 된다. 점잖은 학교선생으로서의 나의 이미지가 그 집안 사람들 모두에게 번져갔다고 한다면, 문제의 그 가출 학생이 받은 충격은 작은 것이 아닐 것 같다.

우리가 본 영화는 자유연애를 찬미하고 프리섹스를 즐긴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 학생은 인터넷 사이트나 요즘 흔하다는 은밀한 경로를 통하여 야한 동영상에 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할 학교선생이 버젓이 공개된 장소에서 학생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 그런 성인영화를 관람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같은 학교의 사제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날 극장 로비에서 만났을 때에도 가볍게 고개만 까딱하고 지나쳤지만, 어쩌면 그 학생은 그 돌발 사건을 당하고는 점잖은 학교선생이라는 나의 이미지를 파기하고 무단가출의 용기를 발동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관람한 영화는 자유연애의 모험을 멋스럽게 즐기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야한 영화를 본 가출학생은 내가 말로만 들었던 미성년자 남녀혼숙 같은 비행으로까지 갈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되기도 했다.

내가 이웃집 고등학생의 가출사건에 대해 필요 이상의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나름대로 그럴만한 과거의 비화(秘話)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관련된 조그만 사건이 한 여자의 삶의 궤도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는 오래 전의 기억을 돌이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벌써 10년이나 지난 과거의 일이다. 내가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한 첫 학교는 가톨릭 재단의 어떤 여자고등학교였는데, 그 당시 한 여선생하고 나 사이에 일어난 조그만 사건이 아직도 나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상대는 머리를 하얀 베일로 감싸고 다니는 수녀 선생님이었는데, 나하고는 같은 과목을 담당하는 관계로 비교적 가까이 지내는 사이였다. 그 학교에 수녀 선생이 단 한 사람 있던 때여서 우리 교사들 간에는 간단히 수녀님으로 통하고 있었는데, 다른 교사들하고 학사업무 관계로 말을 주고받고 할 때는 많았지만 그 이상의 대화, 사생활의 면면을 드러내는 말들은 거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근무했던 고등학교는 농구단의 눈부신 활약이 매스컴 보도로 잘 알려진 학교였다.

때는 늦가을 스포츠 시즌이었고 그 날은 무슨 여고부 농구시합의 서울시 결승전이 있는 날이었다. 모처럼 2학년 학생 전체를 이 농구시합 응원에 동원한다는 방침이 학생들에게 전달되었고 다른 때와는 달리 우리 수녀님도 다른 교사들과 함께 잠실체육관 농구장으로 응원 출장을 가는 뜻밖의 적극성을 보임으로써 우리 남자선생들에게 즐거운 화제를 만들어주었다. 농구시합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어느 자리에 앉아있었는지 모르던 수녀님이 대망의 결승전이 우리 학교의 우승으로 통쾌하게 끝나고 난 다음에야 그 하얀 베일에 싸인 얼굴에 살짝 웃는 모습을 보이면서 나의 면전에 불쑥 나타났다. 나도 마침 어디에 어정거리느라 혼자 남아있던 참이어서 우리 두 사람은 본의 아니게 남녀 한쌍의 동행인이 되어버렸다. 그 날 우리 수녀님이 나의 자가용차에 동승할 것을 제안한 것까지는 나의 상식적인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운전석 오른 쪽 좌석에 몸을 실은 다음에 느닷없이 어디 한강둔치 공원에라도 구경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 온 것은 정말로 천만뜻밖의 일이었다.

나는 유쾌한 기분으로 차를 몰아 한강변으로 향하였다. 차창 밖에는 시원한 강변도로 저편으로 질펀한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차창을 조금 열고 시원한 강바람을 얼굴에 맞으면서 수녀님은 옛날 생각이 나는가 보았다. 왕년에 자기도 농구선수가 될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노라는 자기고백까지 털어놓았다. 자기 제자들이 땀 흘리며 신나게 도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농구공을 힘 차게 던져올리는 자기 모습을 그려보았을 것 같았다. 생기발랄한 몸 동작을 펼치는 선수들의 경기 모습, 탱탱하게 부풀은 선수학생들의 몸매, 자유롭고 열광적인 몸짓으로 젊음을 발산하는 응원단 모습, 수녀님 머릿속에는 이런 장면에서부터 얻었던 얼얼한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늦가을 해도 어지간히 남아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한강 둔치공원 중에서도 널찍한 광나루 강변 시민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나의 선택은 옳았다. 꽤 서늘한 날씨여서인지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잘 자란 잔디밭이 넓게 퍼져있었고, 군데군데 크고작은 나무들도 적당히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잔디밭 한켠의 벤치에 앉아 하늘에 구름을 쳐다보고 나무와 새들을 바라보면서 두서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노래 몇 곡을 부르다가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해가 서쪽 하늘에 기울어질 무렵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강물이 흐르는 옆으로 바짝 다가가서 걸어보기로 하였다. 가볍게 출렁이는 강물 속으로는 벌써 도시의 불빛이 아롱져 비치고 있었는데 우리는 시간이 늦은 것도 잊어버린 양 느릿한 발걸음을 재촉할 줄을 몰랐다. 이 때 우리 수녀님의 본심이 어떤 것이었는지 지금도 아리송하지만, 솔직히 나 자신도 어떤 심보로 그런 어스름 속에서 호젓한 강변 산책을 즐겼는지 모를 일이었다. 얼마 안 가서 우리가 걷는 오른쪽에, 그러니까 물에 젖은 모래밭에서 한 발 정도 떨어진 강물에 고만고만한 바윗덩이들로 징검다리가 놓여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 징검다리에 먼저 발을 디디기 시작한 사람은 수녀님이었다. 수녀님은 징검다리 바윗돌에 먼저 발걸음을 디뎠지만 나는 그 모습이 아무래도 불안하게 느껴졌다. 내가 뒤이어서 징검다리를 밟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수녀님의 한쪽 손을 잡아준 것도 역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얼마 후 강변 시민공원을 떠난 차는 수녀원 가까운 길모퉁이에 이르렀다. 차를 먼저 내린 나는 몇 걸음 돌아가서 인도 위에 섰다. 손을 먼저 내밀어 악수를 청한 것은 뜻밖에도 수녀님이었다. 나는 그 손을 마주 잡고 손바닥에 꼬옥 힘을 주는 정도로만 그쳤으면 좋았을 것을 그 순간 어찌된 마음이었는지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수녀님의 베일에 싸인 얼굴을 꼬옥 감싸쥐고 그 촉촉한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고 말았던 것이다. 얼결에 당하는 입맞춤에 대해 수녀님이 어떤 식으로 반응을 보일 틈새도 없이 나는 금방 그녀에게서부터 손과 입술을 떼었다. 수녀님에게서 한마디 따끔한 말이 나왔던 것은 기억이 된다. 나한테 이러시면 어떡해요, 책임지지도 못할 것을 …. 두 사람 사이에서 더 이상 어떤 말이 오갔는지, 어떤 모습으로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된다. 충동질한 것들은 여럿이었다. 애초에 시민공원 구경 가자고 꼬득인 사람, 어스름에 모래밭을 걷다 말고 강물 속의 징검다리에 발을 먼저 디딘 사람, 헤어질 때 손을 먼저 내민 사람은 수녀님이었고, 그 시간 수녀원 가까운 길모퉁이에 어둠이 짙게 깔렸던 것도 순간적인 분위기 조성에 한 몫을 하였을 것이다. 남성 매력이 신통치 않은 내가 수녀님의 갇혀있던 감각을 일깨워준 데에는 학교선생이라는 나의 신분에 대한 그녀의 신뢰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날 밤 나는 예기치 않았던 그 순간의 소행에 대해 꽤 많은 자기질책의 시간을 가졌다. 책임지지도 못할 것을 …. 이 말 한마디에 담긴 의미를 곱씹는 맛은 그 날 이후 여러 번 바뀌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싫지 않은 맛으로 귀착되었다. 그 날 이후 수녀님은 학교에서 나에게 별다른 내색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허물없이 대해주었던 것 같다. 뜬금없는 나의 소행을 나쁘게 보지 않았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자위해 보기도 했다. 그 다음 해에 수녀님이 교사직을 그만둔 사실이 한동안 나로 하여금 고민 어린 자기심문의 시간을 갖게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직장 학교를 옮긴 다음에는 이 같은 일들의 기억이 차츰 희미해지게 되었다.

나는 직장을 옮긴지 오래되지 않아서 수녀 선생님이 결혼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몇 해 전의 일들이 다시 떠올랐지만 추억의 색깔은 훨씬 밝아졌고, 나는 떨떠름한 자기심문 대신에 어느 정도 유쾌하기까지 한 자기 정당화의 근거를 얻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수녀 선생님의 대담한 결심을 불러온 은밀한 수훈은 바로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날 그 시간에 수녀 선생님이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 것을 보면 나의 당돌한 행동이 없었더라도 농구장의 뜨거운 열기가 그녀 자신의 숨었던 욕망에 불을 질렀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수녀 선생님이 결혼을 하고 나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세속적인 사랑과 가족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구차하고 얄궂은 데가 많은 것인지 온몸으로 부딪쳐 겪으면서 후회를 하고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결혼 결행이 정말로 나의 소행 탓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으면 내 마음이 홀가분하겠지만, 혹여 내 탓이었다고 한다면 그녀의 결혼 사실이 불행한 결과를 낳지는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소설가 양영수>

<양영수의 꽁트>는...

소설가 양영수. ⓒ헤드라인제주
소설가 양영수. ⓒ헤드라인제주

바야흐로 영상시대라고 한다. 이야기문학을 감상하는 것도 문자매체보다 영상매체를 통하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영상매체 속에서는 금방금방 장면이 바뀌는 스토리라인을 사람이 따라잡아야하기 때문에 깊이있는 사색과 음미가 잘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 마음이 주체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생체리듬과 심리적인 템포에 따라서 메시지 내용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에는 문자매체를 이용하는 독서가 좋은 방법이다.

꽁트 연재를 통해 필자가 바라는 희망은 많은 사람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양영수 작가 

제주 태생의 소설가.  서울대 문리대 영문학과 졸.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교수 정년퇴임.

그 동안 내놓은 작품들로는 단편집 '마당 넓은 기와집' (2008년), 장편소설 '불 타는 섬' (2014년,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복면의 세월'(2019)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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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 2020-05-19 16:06:02 | 210.***.***.46
어쩌다 들어와서 제목을 보고 기대하면서 글을 읽어 봤는데, 일단 교수 출신 작가라는 분이 글을 너무 못 쓰시는 것 같아요. 솔직히 내용도 재미가 없는데 이를 살려줄 문장력도, 문체도 기대 이하입니다.

욕망 2020-04-20 10:29:08 | 39.***.***.248
수녀님과의 점잖은 일탈인듯 일탈아닌 일탈에 대한 묘사가 너무도 생생해 마치 짧은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드네요. 재미있는 글입니다. 부지불식간의 스쳐가는 만남을 오늘부터 눈여겨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