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의 오늘]<5>양은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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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의 오늘]<5>양은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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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친구들 모임이 있어 간단하게 1차를 끝내고 몇 몇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남아 있는 친구들은 딱 한잔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2차로 시원한 막걸리가 있는 주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늦은 시간인데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 친구가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한번 훑어보더니 ‘도시락 정식’이라는 메뉴를 골라 두개를 주문했다. 조금 있으니까 주문한 도시락 정식이 우리 앞에 놓여졌다. 노란색 양은 도시락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것이라 정겹고 새로웠다.

뚜껑을 열고 반찬을 한입 집어 먹어봤다. 내 옆에 있던 친구가 “이건 이렇게 먹는 거야?”라고 하면서 내 도시락 뚜껑을 닫더니 위아래 왼쪽, 오른쪽으로 마구 흔들어댔다. 자기가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가 된 것처럼...

얼마나 흔들었을까? 뚜껑을 열어보니 반찬과 밥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한 숟가락을 떠먹으니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의 도시락 바로 그 맛이었다.

학창시절, 어떤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시락을 꺼내 먹고서 정작 점심시간에는 빈 도시락을 들고서 교실 한바퀴 돌아다니면서 밥이랑 반찬을 하나 가득 빼앗아 가는 얌체 친구들도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도시락을 여는 순간 어느새 친구들은 내 주위에 젓가락을 들고는 삼삼오오 모여들어 하나씩 집어가 버리면 반찬이 모자라 밥을 남긴 적도 많았다. 그래도 몇몇 친구들은 돌아다니면서 얻어온 반찬을 내게 나눠주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얘기하면 다음날 도시락 밥 밑에는 계란프라이가 깔려 있기도 했다. 그러다 가끔씩 어머니는 여동생이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거나 하는 특별한 날에는 전날 김밥 재료들을 사다놓고 어머니는 아침 일찍 김밥을 쟁반 하나 가득 말고 계셨다. 옆구리가 터지거나, 실패작들은 식구들끼리 앉아서 먹기도 했다.

내 김밥 도시락은 특별히 두개였다. 하나는 내가 먹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친구들에게 나눠줄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도시락을 꺼내기만 하면 미리 내 앞에 서서 기다리기도 한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뚜껑으로 막고, 손으로 막아보지만 소용이 없이 반찬이 사라진다.

그런데, 언제부턴가는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는 친구들이 없고, 수업이 끝나는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먹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정작 점심시간에는 교실에서 뛰어다니고 책상 위를 날아다니다보니 점심 먹기가 쉽지 않아서 나도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먹다가 복도를 지나는 선생님이나 선배들에게 들켜 많이 혼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점심시간에 먹는 것보다 쉬는 시간에 먹는 밥이 더욱 더 맛있던 것 같다.

도시락 반찬을 보면 그 친구의 생활정도를 짐작할 수 있기도 했다. 어떤 친구는 도시락 반찬이 창피하다며 같이 먹기는 꺼리는 경우도 있지만 난 그런 친구에게 더 애착이 가 “내 반찬이 많이 남아서 그래.”하며 나눠주곤 했다.

예나 지금이나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은 가장 즐거워야 하는 점심시간이 오히려 지옥 같은 시간이 되었다.

요즘도 TV에 보면 결식아동이 너무 많다. 사회가 나아지면 결식아동도 줄고, 좀 생활형편이 좋아져야 하는데, 갈수록 빈부의 격차는 커져만 가고 있으니... .

몇 년 전 TV 뉴스를 보고 엄청 화가 난 적이 있다. 정부주관으로 결식아동에게 주는 급식을 위탁받은 업체가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터무니없는 도시락을 주고 있었다.

반찬으로 소량의 방울토마토나, 동물들에게 줘도 먹지 못할 정도의 상한 음식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요즘 학생들은 추억의 도시락을 알까? 모를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학교 급식으로 대체하니까. 그러다보니 많은 양의 반찬과 밥을 하다보니 위생에 소홀해 툭하면 식중독이니 뭐니 하면서 말썽이 많다.

우리 때 싸고 다닌 도시락엔 비록 반찬은 부실하나 새벽같이 일어나 싸주시는 어머니의 정성이 있었다. 그때가 그립다.

어느새 막걸리 한 주전자와 양은 도시락에 섞인 밥이 다 떨어질 무렵 한 숟가락 정도 남은 밥을 얼른 내가 떠서 먹었다. 정말 꿀맛이다.

이런 곳이 있었다니. 또 한번 오고 싶은 곳이었다. 

<헤드라인제주>

 

이성복씨 그는...
 
이성복님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연대 회원으로, 뇌변병 2급 장애를 딛고 지난 2006년 종합문예지 '대한문학'가을호에서 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으면서 당당하게 수필가로 등단하였습니다.

현재 그는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으로 적극적인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 글의 1차적 저작권은 이성복 객원필진에게 있습니다.

 

<이성복 객원필진/ 저작권자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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