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판정옴부즈맨의 6월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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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판정옴부즈맨의 6월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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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손영수 병역판정옴부즈맨 / 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제주병무청 옴부즈맨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이 벌써 팔년 쯤 되는 것 같다. 그 동안 지켜보고, 느낀 점으로 병무행정 특히 징병신체검사 및 신체등위판정과 관련되는 병무행정의 변화와 발전은 우리나라 국가 행정 전체를 통틀어 보아 가장 현저하고, 그 세부적 내용면에 있어서도 가히 타 행정기관들의 모범이 되며, 국가 행정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중요 동인이 되고 있다고 자부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전체 모습은 그리 환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손영수 병역판정옴부즈맨 / 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헤드라인제주>

국민의 4대 의무중 하나인 국방의 의무는 유사시 젊은이들에게 국민의 가장 중대한 기본권인 생명권을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와 무게는 다른 의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하고 크고 무겁다고 본다. 따라서 병역비리와 병무행정 및 국방행정에서의 위법행위는 국가적·사회적으로 가장 중대하게 다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전방 전선에서 총을 맞고 죽어 가며 '빽'하고 절규하였다는 말은 이제는 옛 이야기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사회지도층의 외국국적 취득을 통한 병역면제와 군 수뇌부에서 벌어지는 국방행정상 비리, 그리고 방위산업체 비리 등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주소이다.

우선, 국회의원과 장관 등 우리나라의 중차대한 국사를 책임지고 있는 지도층 인사들의 병역면제가 어째서 그리도 많은 가? 국회의원과 행정부의 수장이라는 자리에서 하는 주요 국사에 관한 업무의 강도와 중요도가 군 복무의 그것보다 훨씬 떨어지는 것이라는 말인지, 얼른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또한, 천안함 장병들의 영전에 군 수뇌부들이 헌화하며 북한을 규탄하던 것을 본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다고, 해군함정의 중요 전투 장비인 초음파 탐지장비의 성능을 검증하지 않은 채로 함정에의 장착을 무감각하게 결정하는 해군의 별들은 과연 어느 나라의 눈부신 스타들인가?

나는 영국 국민들에 대해 두 가지 점에서 존경심을 가진다. 첫째는, 그들이 전통적 인내심을 통해 유지하고 있는 수준 높은 사회예절이다. 둘째는, 사회 지도층이 솔선하여 실천하고 있는 국방에 관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애국심이다.

1440년 헨리 6세에 의해 창설된 영국의 명문 이튼스쿨은 13~18세 남학생을 위한 사립학교로 졸업생 중 3분의 1 가량이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하는 명문 학교로서, 정치인들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많은 유명 인사들이 이튼스쿨 출신이며, 데이비드 캐머런을 비롯해 열여덟 명의 전임 총리가 이튼을 졸업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도, 이튼의 모든 사람들이 가장 큰 자긍심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전체 영국 국민들이 이튼을 영국의 가장 큰 자랑거리로 내세우며 이들 이튼의 졸업생들을 신뢰하고 존경하는 이유는, 사회의 저명한 인사들과 유력한 정치인들을 많이 가장 배출하였다는 점이 아니라, 제1차 및 제2차세계대전에 자원입대하여 전사한 졸업생의 비율이 영국에서 가장 큰 학교라는 역사적 전통의 사실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또 유월이다. 유월이 되면 나에게 현충일과 한국전쟁 기념일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향로봉 진지 전투첨단선의 푸르던 산등성이다. 1979년 4월 초임 군의관으로서 향로봉 대대의 의무지대장에 배치 받았고, 다음해 봄 국군군의학교로 전임될 때까지 초임 일 년 동안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늘 나의 유월과 함께 하고 있다.

아마, 1979년 늦은 여름이나 이른 가을이었던 것 같다. 숲이 짙고 푸르렀었다. 동부 전선 철책선이 뚫리고 북한군 무장공비가 침투하였다는 보고가 올라오고, 전 사단에 비상이 걸리고, 그날 밤 우리 대대 3중대의 한 소대가 향로봉 남단에서 야간매복을 하고 있었다. 새벽 여명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의무대의 전화가 심하게 그리고 불길하게 오래 울렸다.

전화를 받은 선임하사의 전언은 매복 소대장이 총을 맞고 쓰러졌으니 급히 향로봉 진지로 올라와 달라는 긴급 전통이었다. 한소위....... 불빛 한 줄기 없는 새까만 새벽의 위험천만한 좁은 산길을 달려 올라가 마주 한 그의 모습은 평소의 활달한 웃음기가 사라져 버린 핏기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내가 직접 염습을 해 준 한소위의 등으로부터 심장을 관통한 한 발 총알의 흔적은 너무나 작았다.

나는 가끔씩 시간이 나면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들러 본다. 가장 먼저 인제와 원통 지역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묘역을 둘러보고, 그 다음에는 월남 참전용사들의 묘역을 둘러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채명신 장군을 위해 한참동안 묵념을 드리고 온다. 채명신 장군은 유언으로 월남전 참전 장군 묘역이 아닌 월남전 참전 사병 묘역에 묻히기를 소원하였고, 월남전 참전 사병 묘역 가장 앞쪽에서 사병 묘역을 지키고 계신다. 늘 감동을 느낀다. 올 유월에는 그리운 향로봉 전우들과 만나 옛 노래 '삼팔선의 봄'을 함께 불러 보고 싶다. <손영수 제주지방병무청 병역판정옴부즈맨 / 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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